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화 Apr 05. 2017

좋은 걸 어떡해 그렇지 않아?

앨범 리뷰 '볼빨간 사춘기' Full Album RED PLANET


휴대폰을 바꿨다. 그래서 음악을 실컷 듣고 있다. 휴대폰의 성능이나 용량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안타깝게도 반강제로 가입하게 된 부가서비스 이용 때문이다. 그래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만 흥얼거리거나 남편이 선별해준 노래 위주로 듣다 오랜만에 나만의 취향대로 음악을 들으니 기분이 꽤나 상콤해진다. 매일 듣던 노래와 내가 듣고 싶은 노래의 간격이 커질 무렵 나는 영화 '라라 랜드'의 앨범도 궁금했었고, 도깨비 O.S.T. 제대로 듣고 싶던 참이었다.  


신세계를 만난 듯한 기분에 즐거운 마음이 샘솟아 돈이 아깝기는커녕 억지로 가입시켜준 통신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을 지경이 될 무렵이었다. 기쁨과 감사가 교차하던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가 나를 멈춰 세웠다. '이 노래 뭐지?' 그리고 나로 하여금 심각하게 부가서비스 연장을 고려해보게 만든 듀엣 '볼빨간 사춘기'를 만났다. 이 두 소녀의 노래가 반갑고 기특해 그들의 노래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읽고 쓰길 좋아하는 사람이 가사를 탐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인 걸까? 아니면 나만 유난스러운 것일까? 노래 가사를 곱씹고 뜯어보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면 가사 속 한 단어에 의미를 부여해 생각이 이리저리 널뛰고, 마음이 찢어졌다가, 순간 인생을 다 알 것 같다가, 그 가사가 나오게 된 흐름과 장면을 나름대로 상상해보며 혼자 몇 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건 일도 아니다.  


가장 먼저 꽂힌 노래 <좋다고 말해> 를 들으며 짝사랑하는 수줍고 소심한 여학생의 시점인 줄로만 알았는데 세상에, 그 남자아이의 고백을 받은 '주인공'이라니 이런 반전을 봤나. 그럼에도 자신감에 들뜨기만 한 게 아니라 남자아이의 인기는 인정하면서도 "너 나한테 그랬잖아"하고 당당한 태도. 그 으쓱함이 너무 순수해서 옆에서 그 사랑을 응원해주고 싶게 만든다. 눈 앞에 짧은 '성장영화' 한 편이 그려지며 이 노래를 계속해서 듣고 싶게 만들었다.


가사도 좋고 멜로디도 좋지만 무엇보다 음색이 너무 좋다. 좋다 보니 무언가 그들에 대해 찾아보고 싶은 생각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러다 '가수 박혜경의 20주년'을 소개하는 글에서 볼빨간 사춘기의 원조라는 문구를 보고 '아 이거였어. 나는 취향이 소나무구나.' 싶었다.  박혜경이 <It's you> 로 활동하던 '더더'때부터 그녀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앨범을 사모으고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던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다시 듣고 싶지 않은 <>이라는 노래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닫아둔 내 기억들이 오랜만에 소환되었다. 아 젊은 날의 첫사랑이여!


처음에는 한 곡 한 곡이 참 좋다 싶었는데 앨범 자체가 듣는 내내 전반적으로 통일감이 느껴지고 무엇보다 사랑이 가득 흐른다. 예쁘고 달콤해서 사랑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진짜 마음을 주었구나, 하고 사랑에 빠진 당시의 고민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메인보컬은 앨범 전반에 걸쳐 곡 작업에 참여했다는데 그 감정을 이해하고 불러주는 마음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X Song>을 들으면 가슴이 저릿하다. 톤을 살짝 묵직하게 잡고 부르는 느낌이 성숙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멈춰버린 사랑~' 이 부분에서는 심지어 80년대 감성이 담겨있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올드한 감성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트렌디한 가사에 과하지 않은 영어 표현도 적절해서 좋다. 그 내용이 모호하고 알듯 말듯한 영어 가사를 반기 않는 편이지만 <좋다고 말해> 반전이 시작되는 부분, last night 이나 you have to know that  처럼 확실한 강조는 그 단어가 거기에 놓이지 않으면 안될 듯한 적절함을 준다.


악기 배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가 듣기에도 <반지>중간중간 들리는 단독 연주 부분은 프로듀싱에 공을 들인 티가 난다 싶다. 가사를 소화해내는 능력 또한 좋다. 노래만으로 가사를 음미하며 듣다 뒤늦게 글로 된 가사를 찾아보는데 <프리지아>  '노오란 꽃이에요'라는 평범한 텍스트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가사를 자기식으로 소화하는, 온전히 그녀만의 능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랙이 마무리 될 즈음 <사랑에 빠졌을 때>라는 노래를 들으며 전체적인 구성이 가볍지 않은 듯 하여 앞으로의 발전이 더 기대가 된다.  


가장 좋은 건 사랑다운 사랑을 해본 경험으로 가득 채워진 앨범이어서이다. <싸운 날> 을 보면 너랑 끝이라고 못된 말만 가득 써서 문자를 보냈다지만 진심이 아닐 거란 믿음을 준다. 사실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니 말이다. 왠지 모르게 맘과 다른 말이 나간 것일 뿐 평상시에는 여리고 예쁜 마음을 지닌 착한 여자친구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YOU>에서 말해주듯 그대를 닮아서 맘이 더 큰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을 자신의 품 안에 안아주겠다는 마음이 있어서일 테다. 남자 친구를 닮고 싶은 존재로 여긴다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발전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일 테니까.


이런 밴드가 어디서 번쩍하고 나타났을까?역시나 싶게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고 하는데 의외다 싶기도 하다. 그래서 오디션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 살아남아 단단히 뿌리내리고 선 나무 한 그루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처음 IU가 노래를 시작할 무렵 저 아이의 음색과 감성을 지켜주는 기획사가 누굴까 궁금했었다. 팔릴까 싶은 고민만이 아니라 개성 있는 음색과 감성을 지켜주는 것이 제대로 된 투자라는 사실을 알고 멀리 내다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볼빨간 사춘기'의 노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애쓴 여러 손길과 마지막까지 이어졌을 누군가의 짙은 고민이 의미있다.


'빨간볼 사춘기'라 잘못 칭해도 틀린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만큼 이 뮤지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것도 아니고 대단한 팬심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같은 라이트 팬들도 그들의 음악에 충분히 공감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만은 그들에게 전달되어 계속되는 창작에 불이 붙길 바래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행복을 기억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