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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n 03. 2016

아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시기

엄마 내가 잘 보이나요? (37개월의 기적)


아이를 키우다 보면 세상천지 나만 알기에 너무 아까운 일들이 계속해서 생긴다.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죽도록 힘들기도 하지만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만 같은 순간들이 매일매일 찾아오는 것이다.      


육아서를 읽으며 ‘아, 이래서 이 사람들이 글을 썼구나.’싶은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겪은 일을 나도 그대로 겪고 있으니 생활 그대로를 조금만 정리하고 가다듬으면 책 한 권 나오는 건 금방이겠구나 착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육아일기를 써보기도 하고 재미난 에피소드나 신기한 말들을 기록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웬 걸. 언감생심 책을 내는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고작 몇 날이 걸리지도 않았다. 몇 개 쓰다 내 얘기에 질리고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하찮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그 꾸준함이라는 게 문제였다. 매일매일 조금씩 가랑비에 온 젖듯 그리고 먹고 자고 일어나듯 써야 할 글을 며칠 굶은 듯 우적우적 우겨놓고 이삿짐 싸듯 온 체력을 고갈시켜 버리듯이 써버렸으니 언제나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도 우리 아이가 특별할 것도 없이 너무나 평범하고 보잘 것 없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 얘기를 누가 좋아하나. 궁금해하는 친정엄마한테도 잘 못해주는 이야기를 궁금해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읽히겠다고?      


돌까지는 새롭고 준비할 게 많아서, 두 돌까지는 다양하게 힘들어서 할 말이 많았는데 세 돌이 되니 솔직히 별 감흥이 없어졌다. 그러다 몇 가지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할 수 있게 된 이야기가 만나자 생각지도 못한 글들이 마구 흘러넘쳤다.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글들이 이렇게 샘솟듯 나올 수 있는 건 내 글을 어떻게든 ‘전달’하려는 마음에 우선하기 보단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도 있겠단 생각이 들고부터 인 것 같다.   

   

쉽게 읽히는 글 속에 내가 했던 고민과 시행착오들을 녹인다면 우연이라도 마음에 닿아 하나의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읽고 금세 잊어버린 글 하나가 힘들게 아이를 키우는 와중에 문득 떠올라 혼자 있다는 마음에서 벗어나게 하고 어떤 결정을 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우리 아이가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생각이 바뀐 것도, 내가 글을 더 잘 쓸 수 있게 된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은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써진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아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시기를 누리게 된 나의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반드시 도움으로 닿기를 바랄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된 지금의 시기라는 건 그 전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1) 시간의 여유     


이 시기가 되니 더 이상 종종거리지 않고 급한 마음으로 앞서지 않게 되었다. 항상 앞으로 쏠리다시피, 걷는 건지 뛰는 건지 알 수 없는 발걸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느리게 내디딜 수 있는 발걸음 속에서 나는 생각이라는 걸 더 잘할 수 있었다.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평상시와는 조금 다른 생각들을 하고 그렇게 피어오르는 내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2) 마음의 여유     


그리고 전에는 매 순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모든 걸 다 끌어다 쓰고 싶고 조금만 멀어져도 희미해질까 한 순간이 아쉬웠다. 그러자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내 생각만으로 내가 벅찼다. 이제는 정말 기억하고 싶은 건 알아서 써지겠지 싶어 지는 게 오히려 잊을 줄 알았던 기억까지 되살아날 만큼 마음이 편해졌다.  

    

(3) 의외로 정보가 없는 시기    

 

매달 개월 수에 맞춰 어떤 발달과정을 보이고 얼마나 성장하는지 많은 엄마들이 궁금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 또한 이때쯤이면 멀 놓치지 않고 아이가 할 수 있어야 할까, 그리고 이런 행동을 하는 건 또래에 비해 빠른 걸까 느린 걸까 궁금했다.

     

4개월에 옹알이를 하고 11개월에 걸음을 떼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은 내 아이에게만 의미 있는 숫자일 뿐 누구나 같은 발달을 보이지는 않는다. 더 느릴 수 도 있고 더 빠른 아이들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일부러 알아보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기억하게 된 것들은 두 돌까지는 선명하게 새겨지는 듯하지만 세 돌이 될 무렵부터는 조금씩 흐릿해지고 별스럽지 않아지게 된다.  

    

내가 그런 만큼 다른 엄마들도 그런 건지 가끔 궁금해서 정보를 찾아보면 역시나 이 시기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유독 어떤 질문도, 무수히 쏟아지던 답변도 잘 접할 수가 없었다. 바로 이 애매한 시기에 엄마들은 공통적으로 조금 다른 곳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전보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내가 기록을 남긴다면 다른 누군가는 검색으로 정보를 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4) 그냥 정말 예쁜 시기     


아이는 사실 어릴수록 더 예쁘다. 백일쯤 된 아이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예쁘고, 6개월 된 아이는 안아주기 딱 좋아 예쁘다. 돌 때는 사랑받을 만한 이쁜 짓이 뭔지 알고 해서 이쁘고 두 돌이 되면 보석 같은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해 이쁘다. 그래서 아이가 크는 모습이 아쉬워 절대로 동생을 낳지 않겠다고 하다가도 둘째도 낳고 셋째도 낳는 것이다.      


친정엄마는 내가 대학 때까지도 요맘때 얘기를 가장 많이 했다. 사람들 앞에서 곧잘 춤을 췄다느니, 경기로 네 번이나 뒤집어졌다느니, 말끔하게 씻겨 사진을 찍어주는 게 낙이었다느니. 그런데 몇 번은 좋아도 나이가 들어서까지 반복되자 나는 조금 지겨워졌었다.

      

내가 아이를 낳자 손주를 보며 또 같은 말을 반복하는 엄마에게 엄마는 맨날 그 소리야. 나에 대한 기억이 그거밖에 없지? 볼멘소리를 해댔는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엄마는 그냥 그때가 제일 예뻐서 기억이 나는 것뿐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시간도 주고, 마음의 여유도 주고, 그저 예쁘기만 한 지금의 아이는 어떤 특성과 행동을 보일까?


노래를 몇 개씩 외워 부르고 목소리를 바꿀 줄도 알고 상상 속 상대방과 대화도 하기 시작했다. 잔소리도 할 줄 알고 대화의 패턴도 기억해서 다음 대답이 늦어지면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나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필요한 것을 정확히 요구하고 맘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눈을 흘기기도 한다. 말길을 대부분 알아들어서 설득과 협상도 가능하고, 자동차를 로봇으로 변신하는 법이라는든지 킨조이에서 나온 오토바이를 달리게 하는 방법이라든지 자신이 더 많이 다뤄본 물건은 나에게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무섭다고 울고 엄마가 필요하다고 곁에 있어달라고 한다. 너무 어리기만 한 영아가 아니어서 손을 많이 타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기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은 어린이도 아닌 묘하게 그 둘이 혼재된 매력적인 시기다.


스스로를 아기라고 하며 어리광도 부렸다가 어느 날은 형아라고 대우해주길 바라기도 하는 시기, 먼가 딱 정의하기 힘든 '세돌이 지나가는 37개월쯤 되는 시기'가 아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인 것 같다.


그리고 아이의 개월 수를 따져보다 잠시 생각해본다. 매달의 변화가 의미 있고 놀라움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지난 그 수많은 날들을 매달 의미 있고 새롭게 살아왔다면 우리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까 하고.


아이의 하루만큼 탐색하고 성장하며 어른의 하루를 산다면 정말 남은 여생이 후회 없지 않을까 싶다. 말하는 거 보면 다 컸네 싶다가도 자는 모습 보면 한없이 아기 같기도 한 지금 이 시기를 한 십 년 박제해서 키울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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