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화 Oct 09. 2017

집, 다른 의미로 새겨지다.

내 몸 하나 누일 수 곳이라면


말이 안 될 것 같던 열흘간의 연휴를 말도 안 되게 평범하게 보내고는 '평범하지 않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함께 지내지 못하고 다른 지역에서 다른 분 손에 맡겨 아이를 키우고 있는 우리 부부는 남들 보기에 평범하지 못한 부모인 만큼 누군가 특별하게 보내는 날은 어쩔 수 없이 더 평범해지고 다. 온전히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어쩐지 그런 의무감은 더해져만 갔다.     


9박 10일이란 시간을 구례(아이를 맡긴 곳)에서 이틀 밤, 제주(남편 숙소)에서 닷새, 인천(친정)에서의 마지막 이틀 밤으로 채웠다. 우리 식구가 함께 잠을 청한 곳은 모두가 임시거처일 뿐 완전한 우리만의 공간은 없다. 하지만 전혀 여행이라 부를 수 없는 일상의 모습으로 가득 채워진 일정 속에서 문득 가족의 형태를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채우고 완성해야만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에 열흘, 무려 삼분의 일이나 차지하는 결코 짧지 않은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평소 느끼던 다른 의미를 전보다 더 강하게 느꼈다.      

처음 구례 컨테이너로 지은 집에서는 이불과 베개만 놓고 잠을 자면서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참 소박하다'


좁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제주의 콤팩트 한 집에서 불편할 것 없이 안락하게 지내며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또 들었다. '복닥복닥 행복해'


집을 팔고 잠시 친정에 들어와 지내며 세상 속 편한 나는 내 집이 있었단 사실 자체를 잊고 마침내 초월의 감정이 일었다.

'어떻게든 살아지는구나'


쾌적한 주거지와 안락한 가정을 오랜 시간 소망하던 나는 집 없이 떠돌면서 오히려 지금에서야 순간순간 살아있음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느낀다. 아이와 이곳저곳을 떠돌다 잠시 멈춰 선 곳에서 잠을 청하며 우린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오늘’에 충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소유의, 가족 소유의 정해진 거처가 없는 나는 회사 일을 마치면 평일 저녁 친정에서 겨우 눈만 붙고, 제주와 구례를 번갈아가며 주말을 지낸다. 나도 모르게 점점 그곳이 내 삶의 터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이렇게 이동이 잦고 집에 머물 시간이 없으니 꾸미고 관리해야 할 집이 우선은 필요가 없겠구 여겨졌다. 그리고 다른 곳에 임시 거처를 만들고 이동에 대해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하려면 여유 있게 융통할만한 돈도 필요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평생 집을 소유하며 한 곳에 머물기보다는 살고 싶은 곳을 찾아 세를 돌며 사는 것이 멋지겠다는, 말도 안 되는 망상을 꿈꿨던 나를 조우했다. ‘프리터’를 하며 살고 싶다던 마음만큼이나 무모했지만 한때는 내가 진정으로 꿈꾸던 삶인 건 사실이었다. 그 속에는 내 인생에 ‘안정’보다 나의 즐거움과 재미, 그리고 즉흥적인 감성만이 들끓고 있었지만 결국 나는 그 꿈을 닮고야 말았다. 가정을 이뤄 벌써 결혼 5년 차에 아이까지 둔 내가 이제서야 집도 없이 떠돌며 살아있음을 느끼다니, 어쩐지 조금은 아이러니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꿈꾼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무섭고 강한 기운인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만들어 낸 길로, 시작도 모를 그때부터 나는 한 발씩 딛고 있었을테니까.   

   

하지만 주거에 대해 막연했던 그 무모한 생각은 전혀 근거가 없던 건 아니었다. 대학교 2학년 무렵 뉴질랜드에서 전세도 월세도 아닌 ‘주(week)세'를 살며 지냈던 경험이 주거비용에 대한 내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았으니 말이다. 눈에 보이게 나가는 비용터무니없이 비싸다고 느껴지면서도 책임에서 가볍고 값어치만큼의 만족스러운 충족을 경험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다시 생각해보니 그곳은 외국이었고 내가 처해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곳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집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한 우리는 누군가에게 굉장히 위태해 보이기도 했고 솔직히 나 자신부터도 마음속으로 너무 괜찮지만은 않았다. 집, 집이 있어야겠구나. 살 곳이 아니라 소유해야 하는 '집'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그게 어디든, 어느 위치든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우리 수준에서 앞으로 갚아나갈 수 있는 정도의 빚이라면 빚을 지고서라도 집을 소유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예전 생각과는 다른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고는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아 집을 팔아 버린 것이다. 계약부터 잔금까지 두 달, 그리고 그 후로 또 두 달이 흘렀다. 집을 판지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데 돌이켜보니 하루하루 새로 마주하는 미션을 해결하느라 지쳐갔던 시간이 어쩐지 꽤 오래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래도록 살고 싶었던 그 집을 팔며 난 이상하리만큼 담담했었다. 해야 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라고 묵묵히 주어진 일을 처리할 뿐이었다. 그러다 결국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아이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사실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게 아니었다. 그 사실을 머리가 아닌 마음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 놓아버림으로써 못내 풀어내지 못한 헛헛함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왜 울었던 것일까. 뭔가에 휩쓸리는 듯하고 소용돌이치는 듯한 감정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왜 그렇게 머릿속이 심란하고 복잡해서 한동안 잠들지 못한 채 뒤척였던 것일까.      


엄청난 변화 속에 집이란 것이 뜻밖에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이상하게 겁도 났고 나도 모르게 탐욕이 일었다. 그런 감정들이 뒤엉켜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 좋지 않은 경험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또 한 번 엄마로서, 아내로서, 자식으로서, 어른으로서 원하지 않은 성장을 해버렸다.  

   

그렇게 폭풍 같던 시기가 지나고 고요함이 남았다. 나는 다시 한번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이는 다섯 살, 2년 뒤 7살이 되면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게 된다. 한동안 이런 생활이 지속되는 것을 멈추고 싶지도 않고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마냥 준비 없이 있을 수만은 없어 작은집을 하나 계약했다. 내 마음을 흔들던 돈 될 만한 곳은 아니다. 입지가 좋은 것도, 앞으로의 호재가 기대되는 곳도 아닌 그저 2년 뒤 지어지면 아이와 들어가 초등학교를 보내고 싶은 곳이다.   

일명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단지라고 좋아하며 들어간 새 집에서 난 아이 입학은커녕 학교 운동장도 한번 밟아보지 못하그 집을 나왔다. 집을 정리하며 그토록 없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물건들이 이렇게나 쓰임이 없이 방치되고 있었단 사실에 놀라고 나 자신의 한없는 물욕에 놀랐다. 사는 것도 어렵지만 버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사는 것도 돈이 들지만 버리는 것도 돈이 든다는 것을 너무 비싼 값을 치르고 배웠다. 그러니 오래 살 거라 여기고 2년도 못살고 나온 처음 집처럼 모든 것을 다 갖추고 꾸미며 살지는 않을 생각이다.


한동안 머리도 맘도 꽤나 복잡했다. 집을 팔고 홀가분해진 기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 집을 계약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를 집값에 예전처럼 똑같이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집을 팔며 무지에 대한 한탄과 지적 호기심이 뒤엉켜 한동안 부동산 정책 읽기와 정보를 탐독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지만 그렇게 몇 달간의 시간을 보내며 내가 내린 결론은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였다.     

집을 선택하려니 조건도 안 되고 뽑기 운도 없으면서 결국 남들 안 한다는 향과 타입을 고른 나는 스스로의 결정이 무척 이해가 안 되면서도 자꾸만 강해지는 확신에 또 한 번 내 보폭대로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늘 돌아가는 길, 남들과는 조금 달랐던 선택, 언제나 이런 식이었기에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공동의 재산이다 보니 잠자코 있는 남편을 두고 조금은 마음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모든 게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 듯하다. 그러면서도 그때와는 또 다른 현실과 마주한 나는 다시 집을 소유하기 전까지 여전히 떠돌이, 방랑자처럼 살고 싶다. 편안하고 기분 좋은 삶을 꿈꾸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저 고달픔과 수고로움에 도움이 될 만한 가전 몇 개, 간단한 침구만 두고서 말이다. 아이의 피부와 건강때문에 감행한 큰 결심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마음에 새긴 채 아이와 집 근처 숲길을 자주 거닐며 그렇게 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받고 싶은 대로 해준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