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부 훈련이 시작되고 루틴에 따라 몸을 풀고 나면
보통 추가적인 포지션별 훈련이 있거나
연습경기가 잡히곤 한다.
연습경기에 당연하게 나가는 아이가 있고
연습경기를 당연한 듯 지켜보는 아이가 있다.
우리 아이는 후자 쪽이었다. 늘 벤치나 그물망에 매달려 형들이나
동기들이나 심지어 후배들을 응원하는 일을 했다.
내가 가끔 벤치에서 뭐하는지
벤치에만 있으면 지루하지 않은지 물으면 아이는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엄마, 응원도 중요한 일이야!"
그래 중요하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 속에 조금 더 깊은 마음이 있었다는 걸
정말 우연찮은 기회에 알게 되었다.
2년여간의 벤치생활을 꽉 채우고 마지막 지역대회가 있던 날
기회삼아 나간 타석에서 그라운드 홈런을 치고
전혀 예상치 못한 '홈런상'을 받은 날이었다.
모두가 어리둥절하고
우리를 위해 누군가 준비한 몰래카메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믿기 어려운 그 순간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아이에게 학교 오전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께
상 받으면서 하게 될 수상소감을 연습하자고 했다.
사실 수상소감이라는 건 있지도 않은 일이었고
누군가는 뽀록이라고 놀리는 이 순간을 나도 경쾌한 방식으로 즐기고 싶어
집에 가는 차 안에서 그냥 장난 삼아 해 본 말이었다.
"저는 그동안 벤치에만 있었습니다."
첫 문장에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하지만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안타를 쳐내 그라운드 홈런을 만들었습니다."
"푸하하 뭐야, 너무 진지하잖아!"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담담한 목소리로 소감을 말하는 아이를 보고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너무 귀엽고 웃겨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뭐가 이렇게 진지한 건데?
응원만 해도 된다더니 사실 그 속이 말이 아니었나 보다.
취미로 하는 경기에서도 드릉드릉하는 아이들인데
하물며 엘리트 선수로서 경기에 나가고 싶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겠으며
그 경기에서 잘하고 싶지 않은 선수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간과했던 점은 아이를 그저 내 아들, 아직 어린아이로 볼 뿐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그려보고 있는
한 명의 선수로서는 인정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벤치에 앉아 다른 아이들의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나날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수많은 나날들 속에서 그려본 상황과 변수와 머릿속 시뮬레이션이
지금의 아이를 만들고 지금의 팀을 만들었고 엄마가 더 이상
'야구 그만하자.'라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