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하는데 장비빨이란 게 있을까?

by 유화

연말에 일본에 간다고 하니 대뜸 글러브를 사러 가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맞다, 작년 이맘때쯤 글러브 사러 일본에 간 아빠들이 있었지. 글러브 생각은 하지도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쇼핑 목록에 글러브를 추가할 생각은 없다. 글러브 하나를 사러 일본에 갈 만큼 글러브를 잘 알지도 못하고 그냥 한국에서, 그것도 가까운 곳에서 내가 사줄 수 있는 적정선에서 사주고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는 게 편해서다.


처음 야구부에 들어가 제일 먼저 산 야구용품이 글러브였던 것 같다. 손에 끼는 배팅장갑 하나도 어디서 사는지 몰라 야구용품점도 아니고 데카트론에서 양가죽이면 좋은 거겠지 하면서 구입했던 나였다. 그러니 야구글러브처럼 부피가 크고 가죽이 더 좋아야 할 거 같은 물건은 어느 정도 선에서 사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 글러브를 어떤 거로 사야 하는지, 하는 질문은 잘못된 물음이었는지 모른다. 아이가 어떤 포지션을 맡게 될지 정해지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어떤 포지션을 맡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걸 바로 알려주지도 않고 글러브는 준비해야 하고 조금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보통 잘하는 아이들이 유격을 보고, 내야수 위주로 배정되고 난 뒤 구력이 짧거나 애매하면 외야로 보내는 분위기였던 거 같다.


당연히 아이는 외야로 배정됐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애매한 답변으로 인해 내야까지 두 개를 준비해야 하나 잠시 고민이 됐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부담스럽고 실수도 줄일 겸 고학년 아버님의 조언대로 올라운드 글러브로 사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런 걸 사줬을까 싶은 꽤나 저렴한 제품이었다.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지금은 외야 배정을 두고 그렇게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달리기가 빨라야 하고 수비범위가 넓어야 할 수 있는 자리다. 큰 점수로부터 팀을 지켜내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질문처럼 야구를 하는데 장비빨이라는 게 있을까?

모든 운동이 그럴 것이고 야구도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다. 질이 좋아서, 잘 잡혀서라기보다는 아이들의 마음을 충족시켜 주는 면에서 특히 그렇다.


공부하는 아이들이 경쟁처럼 유명 패딩점퍼를 사 입고 타지 말라는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를 타듯이 야구하는 아이들의 관심사는 어쩔 수 없이 장비에 있다. 형들이 어떤 신발을 신으면 따라사기도 하고 주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글러브를 눈여겨보다 어떤 제품인지 기억해서 오히려 겹치는 제품은 서로 피해 사기도 하고, 새로운 글러브가 오면 같이 캐치볼을 해주며 길들이고 싶어 한다.


중간에 아이 글러브를 새로 사주면서 다른 사람의 장비가 이렇게나 관심을 끄는 일이구나,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장비에 무심해 보이던 아이가 글러브를 기다리고, 그 글러브를 여기저기서 관심 가져하고 또 코치진도 글러브에 대해 한 마디씩 했다는 것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험한 바로는 꼭 장비빨이라고도 할 수도 없는 부분도 존재하기는 하는 것 같다. 글러브는 내야글러브가 있고, 외야글러브가 다르듯이 투수글러브라는 것도 따로 있는데 아들은 투수롤 보게 되면서 새로 사준 투수글러브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외야글러브를 가지고 마운드에 오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아직 쓰임을 잘 모르는 것인지, 손에 익은 것이 좋은 것인지, 장비빨이란 것을 느낄 만큼 좋은 글러브가 아니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아이가 갖춰야 할 용품들을 일일이 너무 과하게 준비해주지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트는 좀 다른 점이 있었다. 나는 공인배트나 사용연한이 지났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만큼 장비 쪽에는 문외한이다. 그냥 우리 팀의 경우만 놓고 보면 배트는 개인 장비를 갖춘 아이들도 있고 보통은 팀 배트를 같이 사용했는데 다른 팀과 교류하면서 접하게 된 배트를 몇 개 구입해 팀배트로 바꾸자 타율이 좋아졌다는 평가가 있어 이에 대해선 어느 정도 동의하는 면이 있다.


야구 장비에 대해선 나도 아이도 아직 적응하는 단계이다. 초등학교생이라 많이 사보지도 않았고 써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앞으로 알아가야 할 것도 많기에 어떤 게 맞다고 장담할 순 없다. 또 진학을 거듭하면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교체해야 할 장비들이 많을 것 같다. 그래서 장비빨 없이도 버틸 수 있는지 장비빨로 아이 어깨를 가볍게 해 줄지는 좀 더 배우는 자세로 주변을 살피고 조언도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