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그만둔다고 한 적이 있었다. 4학년 10월, 학교에서 신청받은 영어캠프를 다녀오고 나서였다. 보통 야구부에서는 개인의 외부일정을 위해 훈련을 빼주거나 하지 않는데 학교에서 진행하는 캠프라는 것, 아직 저학년이라는 점을 이유로 경험을 쌓고 오라고 특별히 보내주신 거였다.
그런데 이 캠프가 문제가 되어 아이가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또래 친구들을 보니 다양한 경험을 하며 즐겁게 살고 있는데 자기만 매일 똑같은 훈련을 하며 학교운동장에 갇혀있는 게 너무 괴롭다는 이유였다. 나는 바로 그러라고 했고 일주일간 고민 끝에 다시 복귀하긴 했지만 가끔 생각하면 그때 야구를 그만뒀으면 어땠을까 하고 돌아보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때는 정확히 아이가 힘들어서 관두겠다 했다고 보긴 어렵다. 하기 싫다기 보단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었으니까, 아직 정말 힘든 게 어떤 건지 다 경험하기도 전이었으니까. 그런데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야구를 시키다 보니 정말 고되고 힘든 순간이 많다.
- 원하는 만큼의 실력이 올라오지 않을 때
- 팀 스포츠 특성상 내 잘못이 아닌 외부 요인으로 혼나야 할 때
- 끝나지 않을 듯 지겨운 훈련이 반복될 때
- 말도 안 되는 오심으로 경기가 뒤집힐 때
- 기초체력을 쌓는다고 산을 타야 할 때 등등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그 모든 걸 고스란히 견뎌야 했던 아이는 한계에 다다른 지점이 정말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 아이는 야구를 하면서 언제가 가장 힘들었을까? 많이 생각해 보거나 아님 다 힘들다고 가볍게 얘기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이는 딱 한순간을 정확하게 뽑았다.
"그날, 독고탁."
독고탁은 부천에 있는 야구 경기장 이름이다. 올 2월 추위가 가시기 전 연습경기가 잡힌 날을 나 또한 정확히 기억한다. 아이들 차량지원을 나가 아이와 현장에 함께 있었는데 그날 추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혹독해 진짜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러다 얼어 죽겠다!"
그래도 부모들은 패딩에 방한화에 핫팩에 귀마개까지 하고 있는데 선수들은 유니폼 정복만을 입고 운동장 한복판에서 그 추위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어디 야구 경기시간이 짧기나 한가? 공격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비하느라 대기시간 동안 멍하니 서 있는 선수들이 너무 불쌍했다. 연습경기고 너무 추워서 유니폼 안에 추가 훈련복을 걸치는 것이 허용되고 다들 뒷주머니에 핫팩을 하나씩 갖고는 있었지만 언 손을 녹여주고 온기를 전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그날 경기는 더블헤더였다. 다행히 우리는 무더기 점수를 내주고 일찍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점수를 잃어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날은 인상적일 만큼 힘들긴 했다. 그래도 관계, 역량, 부상 등 다른 요인이 아니라 조금 다행인 건가, 생각이 잠길 때쯤 아들은 엄마를 잘 아는 건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한 건지 내 질문에 독고탁을 말한 뒤 다시 한마디를 덧붙여 정확한 의사를 전했다.
"그래도 힘들었던 거지. 그만두고 싶었던 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