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6
한 달 동안 레슨을 쉬면서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었다. 머릿속에서 피클볼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잠시 피치를 올렸던 것이, 자리를 잡았던 자세들이 무너질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던 중 반갑게도 경기모임이 떠서 손을 번쩍 들었다. 원래는 사무실도 가야 했고, 어제 아이 부상도 있어서 병원도 갔어야 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중요하다 여겼던 일들이 다 미뤄지고 어느새 나는 피클볼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비추는 지라 음료 10잔을 사들고 들어가 인사를 드렸다. 먼저 도착한 분들은 이미 코트에서 몸을 풀고 계셨고 흐린 날씨 탓에 밖은 꽤나 쌀쌀했지만 안은 금세 운동 열기로 후끈해졌다. 이제 곧 따뜻한 음료는 빼도 될 것 같다.
게임조 인원 6명이 모였다. 4명 이상이면 보통 코트 2시간을 예약하고 4명씩 짝을 이뤄 돌아가면서 경기를 한다. 오후조는 참여대상별로 대진표까지 짜서 쉴 새 없이 돌아가며 경기를 하지만 오전조는 조금 유연하고 즉흥적으로 이렇게도 짝이 되어 보고 저렇게도 편을 먹기도 하면서 좀 자유롭게 진행을 한다. 심지어 그 사이 본인들 레슨을 참여했다 오기도 하고 잠시 쉬었다 오기도 한다.
경기를 하기로 한 사람은 6명이지만 코트장 주변에 게임인원만 있는 건 아니다. 게임조를 주도적으로 모이게 해 줬지만 컨디션 문제로 쉬고 있는 방장부터 모임이 있다는 걸 알고 잠시 들린 언니분까지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모이면 코트장 주변은 늘 10명이 넘는 인원들로 북적거린다.
전에는 너무 치우치는 실력 탓에 어느 팀에도 민폐가 될까 봐 편을 나눌 때부터 신경이 좀 쓰였다면 지금 이 오전 모임은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기도 했고, 조금 차이가 난다 하더라고 팀을 이루며 크게 편차 없이 중화를 이뤄 전반적으로 비등비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어 부담이 덜했다.
두 시간 동안 다섯 번 게임을 했는데 파트너는 모두 달랐다. 내가 좀 더 주도적으로 진행한 경기도 있고 파트너의 도움을 받은 경기도 있었다. 상대방 습관도 공격패턴도 어느새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예전 같으면 안 되는 공은 그저 당하기만 했다면 이제는 변칙을 쓰거나 반응을 달리하는 등 나름 나만의 요령도 생겼음이 느껴졌다. 그런 탓에 처음으로 레슨장 대표님의 칭찬을 다 받아봤다. 경기를 하고 나올 때마다 이제 피클볼이 쉬워졌냐고 물으시고 어떤 서브랑 리시브를 잘했는지 구체적으로 짚어주시는데, 사실 조금 감격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경기를 하는 동안 또 뒤에 앉아 관전을 하면서 느낀 점은 모두가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을 했다는 점이다. 그게 눈에 보였다. 특히 두 달 전쯤 처음 오신 70대 남성분이 눈에 띄었다. 정말 강력한 파워를 장착해서 혹시 맞기라도 하면 큰일 날 것 같은 볼을 쳐대던 분이었는데 어느새 힘을 빼고 수비 위주의 플레이를 하는 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피클볼을 하면서 단시간에 실력이 느는 것도 어렵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습관을 버리고 운동 특성에 맞춰 나를 바꾼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분의 괄목할만한 성장은 내가 피클볼을 다시 한 번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경기가 끝나고 식사와 티타임을 가지면서 그분께 오늘의 느낀 바를 전달드렸다. 그러자 장난스럽게 농담을 많이 하시던 분이 잠시 웃음기를 거두시고 진지하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의도한 대로 공이 가지 않았을 때 원인을 분석해 보셨고 본인의 강점이 이 운동과 맞지 않음을 인정하시고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했다고 하셨다. 특히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도 성공률이 50퍼센트인 가능성을 대비해서 그리고 테니스와 다른 거리로 인해 짧은 수비패턴을 적용하셨다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그런 유연함과 실행력이 너무 놀라웠고 내공이 느껴졌다. 긍정적이고 열정적이신 어르신은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셨다.
"꿈은 이루어진다. 안 되는 건 없다. 그리고 앞에 반드시를 붙여라. 반드시 꿈은(원하는 건) 이루어진다."
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운동과 관련 없던 앞선 대화에 이미 지쳐 자리를 떴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오늘 그분의 노력과 성취를 인정했고, 그렇게 하자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생각을 하자 세상이 모두 나에게 성공의 말을 전해주는 듯 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 분의 플레이는 한동안 내 눈앞에서 무한반복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