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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n 09. 2016

한 구절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불안에서 날 구한 책


글을 읽다  내 마음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글들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너무 공감되고 좋으면서도 한 편으로 울적해졌다. 그런 글들에 부러움을 느끼며 욕심에 조바심은 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가슴이 요동을 쳤다. 샘이 나는 절박함, 이상하게 글을 두고만 느끼는 감정이었다


글을 조금 끄적이고부터는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고 시선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려니 가끔 예민해졌다. 이런 작업은 집중력이 필요했고 그런 몰입이 즐겁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고통스럽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즐기는 시간도 분명 있긴 했으나 맘껏 원하는 만큼 써내지 못하면 강박 관념처럼 나도 모를 불안에 사로잡혔다.

 

작가가 될 것도 아니면서 그걸로 밥벌이할 능력도 안되면서 너는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말에 얽매여 이십 대 초반을 장악했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그리고 계속될 것만 같은 어둠 속에서 나를 끌어올린 건 뜻밖에도 책 속에서 본 한 구절이었다.


정말 기억하고 싶은 건 잊히지 않는다, 지구별 여행자/류시화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내가 기억하는 대로 나는 충분했다. 그 뒤로 글을 쓰지 못한다고 해서,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는다. 지금은 쓸 시기가 아니고 지금 생각나는 건 나중에 더 다듬어져서 생각이 날 거야, 편안하게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다.


서른이 넘어 이직을 했다. 결정된 직장도 없이 퇴사를 하는 것을 두고 누군가는 용기라 했고 누군가는 무모함이라고도 했었다. 용기와 무모함 사이 어디쯤 불안이 없지는 않았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그들보다 내가 더 궁금했다.


종교는 위안이 될 수도 있다, 불안/알랭 드 보통


퇴사하면서 상사로 모시부장님께 영어성경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앞으로 놓지 말고 영어공부를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부탁이 있으셨지만 실제로 어떤 의도신지 알기에 조금 부담이 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하필 그 시기에 나는 '불안'이라는 책을 통해 종교를 가지는 삶에 대해 호기심이 일던 차였다.


그렇게 종교가 궁금하던 시기를 거쳐 불안한 마음은 안정이 되었지만 늦은 나이에 들어온 직장에서 겉돌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나는 그대로였지만 다시 증명해야했고 시간은 많았지만 조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때마침 내 마음속에 들어와 박힌 글 하나가 또 한 번 구원이 되어 주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실행이 답이다/이민규


다른 세부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이 글귀를 책상 위 모니터 옆에 붙여놓고 매일매일 읽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도 읽고 자존감이 떨어질 거 같아도 읽고 앞으로의 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을 때도 읽었다.


년이 지나서야 회사에서 목소리를 내고 원하는 만큼의 인정을 느끼던 순간이 찾아왔고 멀리도 돌아왔다는 생각과 안도감이 동시에 드는 시간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동안 혼자 앉아 준비했던 날들이, 견뎠던 날들이 내 뒤에 버티고 있어 나는 위로받고 보상받을 수 있었다.


적절한 시기에 나에게 와주었던 책, 우린 우연히 접하게 된 한 구절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구에게나 자기를 붙들어주는 말이 있을 것이다. 엄마의 믿음이든 친구의 격려든 책 속의 한 구절이든 언젠가를 꿈꾸게 하는 말을 붙잡아보자. 그로 인해 지금을 희생할 필요도 없지만 붙들어주는 말들이 있어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정말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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