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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n 27. 2016

나가기 싫어 집에만 있을래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


"오늘 모 할 거야?" 질문을 보니 또다시 목요일이다. 목요일 하원 후 부천으로 1박 2일짜리 여행을 떠나는 아들 덕에 우리 부부는 잠시 자유의 몸이 되고,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늘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남편은 변함없이 오늘의 내 일정을 물었다.


가끔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기도 하고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나는 꿀단지 숨겨놓은 사람처럼 곧장 집으로 향하곤 한다. "나? 나 집에 갈 건데?"


그럼 늘 그렇듯 남편은 다시 묻는다. "왜? 처제 만나지. 아님 마사지받던가!" "바쁘대. 안 바빠도 오늘은 집에 갈 거야."


돌아보면 정말 오롯이 내 집을 즐기고 나의 휴식을 위해 우리 집에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집이란 때론 나만을 위한 공간일 수도 있어야 하는데 어느샌가 지인을 초대하여 대접하거나 남편과 아이를 케어하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나는 원체 집을 좋아했다. 아니 집에서 나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예전 원거리 출퇴근을 하던 시절에는 금요일 저녁에 신발 벗고 집에 들어서면 월요일 아침에야 다시 신발을 신고 나오는 날도 허다했다.


게을러서이기도 하고, 잠자는 걸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화장하고 꾸미는 건 평일 이외에 또 하고 싶지도 않고, 멀리 돌아다닐 만큼 에너지도 충만하지 못한 탓이었다. 나의 쉼이란 먹고 또 먹거나 하염없이 TV를 보고 늘어져 있거나 자리 옮겨가며 책을 읽거나 다운로드한 미드를 몇 편이고 연이어 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친정에서 살던 때도 딱히 불편하거나 내가 꾸민 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집을 알아보고 꾸밀 계획을 세우자 내가 어느 순간에, 어떤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집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인 생각에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집에 담고자 했다.   

집이 주는 편안함. 집에서 한 끼 잘 먹고 한숨 푹 자기만 해도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결혼을 앞두고 살 집을 얻으러 다니던 때, 인테리어의 화두는 단연코 '작은집 인테리어''북유럽 인테리어'다. 책을 열 권 정도 구입해 보고 또 봤다. 심지어 우연히 알게 된 파워블로거의 집을 그대로 재현해내어 살고 싶은 헛된 소망으로 같은 평수의 아파트를 보러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잠깐 스치는 생각만으로 집을 선택하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기도 하고 낡은 집을 개조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임을 바로 깨달았기에 분양받고 새 집으로 들어가는, 나에겐 가장 쉬운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가구와 가전 등 집안을 채워야 할 것들의 구매와 정리에 이미 지쳐 배치 이외에 다른 무언가를 더 할 여력도 없었다.  


결국 입주하면서 언제나 늘 그렇듯 나는 쉽게 타협을 했고 몇 가지 원칙만 정했다. 벽지고 조명이고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해 놓은 그대로 들어갈 것, 대신 집의 기본 틀이 되는 블라인드와 가구는 조금 값어치 있는 것으로 구입해 언제 보아도 잘 샀다 싶은 생각이 들도록 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치를 통해 공간을 분할할 것.


여기서 제일 신경을 많이 쓴 것은 '공간분할'이었다. 잠자는 걸 좋아하니 침대방은 분리되어 있었으면 좋겠고, 누군가 TV를 보고 있을 때 나는 보고 싶지 않다면 다른 공간에서 컴퓨터를 하든 책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리고 지인들이 놀러 왔을 때 공간을 따로 안 만들어도 될 만큼 거실 중앙은 여유가 있는 공유의 공간이었으면 하는, 몇 가지 소망들을 담았다.


그래서 방 하나는 '잠만 자는 곳'. 딱 침대만 뒀다. 나중에 책장 하나가 추가되긴 했지만 잠만 자는 곳으로 활용되는 것은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다른 방 하나는 TVTV 다이, 락킹 체어 하나 그리고 헤드 없는 침대가 있다. '미디어방'이라 칭하고 TV를 보거나 남편이 플스를 하는 곳으로 활용된다. 미디어방 침대는 영화 볼 때는 소파처럼 기댈 수 있도록 활용하고 누군가 자고 가야 할 경우엔 손님방으로 둔갑시킬 대비용이었다.


남은 방 하나는 행거, 투명 서랍장 및 거울을 하나 걸고 '옷방'을 만들었다. 철마다 옷이 필요한 나라에서 성인남자와 성인여자 그리고 아이라는 각각의 특성이 모여 존재하다 보니 대단한 패셔니스타들이 아니어도 옷은 차고 넘쳐 공간을 독립시키는 게 깔끔할 듯 싶었다. 그리고 '거실'에는 TV 대신 책장과 커다란 6인용 탁자가 들어서 있다. 거기에 컴퓨터가 있는 책상이 따로, 조그만 아이 책장과 디지털 피아노가 있다.  


나와 남편의 생활패턴을 고려해 위치를 잡고 가구를 들여서 그런지 생활 자체는 머릿속 시뮬레이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나에게 모든 걸 맡겼는데 새집에 입주해 뭔가 이상하면 나를 원망하겠느냐고 물을 만큼 겁이 나기도 했지만 감 하나 믿고 사는 당신을 믿는다는 말에 신나서 꼼꼼하게 치수도 재지 않고 엉성하게 시도했던 도전이었다.


내 맘대로 배치한 집은 다행히 그런대로 괜찮은 공간이 되어 주었다. 앞으로 아이 방에 대한 미련 때문에 구조가 바뀔 수도 있고 생각보다 오래 이 집에서 살지 않게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크게 아쉬움 없이 내가 편하고 내가 나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가 잠시 없다는 사실이 주는 자유로움으로 어딘가 밖으로 나돌아야 할 것 같은 착각과 보상심리의 굴레에 빠지기도 하는 날, 생각해보면 내가 애쓰며 마련해놓은 우리 집을 구석구석 제대로 즐길 시간을 갖지 못했던 나를 위해 다시 집으로 향한다. "집에 있을 거야. 정말 그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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