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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l 01. 2016

내가 '나'여야 하는 이유

블루 재스민(2013) 2015년 3월 기록


요리강습이 막 시작되려는데 너무 괜찮은 영화가 있다며 상기된 얼굴로 영화 한 편을 추천하신다. 재료 손질도 잊은 채 추천을 하시던 강사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라 꼭 챙겨 봐야지 싶었는데 개봉 막바지라 극장에서는 만날 수가 없어 메모만 해놓고 시간만 보냈다. 결국 ‘블루 재스민’이란 이 영화를 보는데 거의 2년이 걸렸다. 그동안 잊힐 때마다 사이트에 자료를 요청하고 다시 기다리길 반복하면서 꽤 오래 공을 들여 보게 된 영화라 그런가, 그만큼 영화는 참 애처롭고 오묘하게 다가왔다. '블루'라는 색이 주는 이미지 이상으로.      


주인공 '재스민'은 비행기 좌석에서 가족인 듯한 할머니에게 자신이 어떻게 남편을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해주며 짐 찾는 곳까지 이동을 한다. 하지만 그 노인은 가족도 지인도 아닐뿐더러, 오늘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여행객일 뿐이다. 마중 나온 할아버지와 함께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나는 할머니는 저 여자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남긴다.

그렇다. 재스민은 부자 남편을 만나 이름도 바꾸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고급스럽게) 최상류 층에 속해 그에 걸맞은 삶을 누리다 순식간에 말 그대로 ‘땡전 한 푼 없이’ 쫄딱 망해 양동생 집으로 찾아 들어가는 길, 그야말로 미치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갈 곳이 없으니 자신의 거처를 마련해달라며 동생을 찾아온 언니의 조금은 뻔뻔함으로 인해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이야 어찌 됐든 둘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각자 입양되어 성장기를 함께하였을 뿐 서로를 향한 큰 애정은 없었던 둘은 서로에게 위로가 될 리 만무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자신이 누리던 화려함과 제공받던 안락함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재스민의 '철없음'으로 인해 둘은 여러 가지 문제로 사사건건 부딪히게 된.

그 와중에 자신의 처지는 생각지도 못하고 여동생의 남자친구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훈계를 늘어놓고, 치과 보조로 겨우 돈벌이를 하면서도 자신은 어쩌다 이런 상황에 잠시 놓이게 되었을 뿐 언제든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리라 생각하며 현실을 부정한다. 헛된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고문과도 같이 그저 견딜 뿐인 재스민의 모습은 처음부터 부족했던 사람보다 과거 가진 자의 초라함이 더 불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다 재스민의 허영을 충족시켜줄 만한 경제력과 배경을 갖춘 조건 좋은 상대가 나타나고 그 남자와의 관계가 잘 풀릴 듯 하자 그의 애정을 발판 삼아 다시 예전 삶으로 살아갈 희망을 엿본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다하고 발버둥을 쳐도 이런 도약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마지막 기회라는 불안감에 악착같이 포장을 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결혼 얘기까지 오가다 모든 걸 놓치게 된 재스민은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군다.  

    

“어떤 사람에게 과거는 쉽게 안 잊혀요.”   

   

엄청난 사건도 없고 볼거리 화려한 영화가 아니면서도 단지 주인공 재스민이 처한 상황 하나만으로 이렇게 흡입력 있고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 연기를 훌륭하게 해낸 '케이트 블란쳇'에게 완전히 반해버렸다. 

지금 당장은 초라하지만 상류사회에서도 상위 1%로 지내던 시절의 애티튜드나 옷차림에 대한 센스가 남다르다는 설정에 따라 그녀가 입고 나오는 옷들과 신발, 고집스럽게 들고 나오는 백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영화 자체도 좋았지만 케이트 블란쳇이란 명배우를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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