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부모교양 : 공감과 편들기 그리고 진심을 말하기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바로 그 공간 속에 우리가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참된 성장과 자유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빅터 프랭클 : 의미 치료의 창시자)
아이의 행동이라는 자극에 대해 부모는 적절한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부모인 당신은 읽고 있다. 부모의 배움은 그러한 지혜와 힘을 키운다.
일상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부모들은 아이를 공감한다고 하지만 실제 그것이 공감이 아닌 편들기인 경우가 빈번합니다.
우리는 어떤 다른 이의 문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너무도 익숙해져 있는 편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게 해결책 제시하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상황에 대한 공감이라고 생각하는 부모인 당신의 행위는 대부분 편들기 행위입니다.
편들기는 정작 문제 상황에 놓인 당사자들을 이간질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편들기는 실제 그 문제 상황의 당사자이면서도 자신들에게 문제를 토로한 사람을 위해서 하는 행위이지만 결과는 오히려 당사자를 돕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히려 더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에 비해 진정한 공감은 상황에 대한 편들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활동입니다. 공감은 상황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있는 사람을 다룹니다.
설명드렸듯이 일반적 공감은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정도를 생각하지만 좀 더 깊은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바람을 이해하고 (또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바람을 짚어 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감정의 근원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바람의 현실화 여부에 달렸습니다.
만일 가족의 두 자녀가 다투었을 경우 한쪽 편(작은 아이 편을 들었다고 하자)을 든다면 두 아이에게 모두 문제가 됩니다.
편든 반대편 (큰 아이)은 자기편이 아니어 공감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직접적 상처를 받고
편든 아이(작은 아이)는 오히려 자신이 옳거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여 교육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작은 아이가 지닌 행동 문제는 강화됩니다.
분쟁은 대부분 양쪽 모두의 문제와 문제가 만나서 이뤄집니다.
큰 아이의 문제와 작은 아이의 문제가 부딪히고 상호작용하면서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각자의 미숙함이 만나는 지점이 분쟁이라는 곳인 셈이죠.
이처럼 분쟁의 원인은 양측에 모두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때 양측 모두를 공감하여 양측이 각각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결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부모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나아갈 길입니다.
여기서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게 되면 한쪽이 좀 더 잘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부모는 보통 덜 잘못한 아이는 훈계하고 다른 아이는 야단을 칩니다. 때로는 한쪽만 야단치는 경우도 다수입니다. "네가 잘못했네." 또는 "네가 훨씬 잘못했네."라고 하면서 말이죠.
아이가 2명 이상인 집에서는 아이들 간 다툼이 일상적인데 늘 이렇게 잘잘못을 가리면 결국 부모과 자녀의 관계도 번갈아가면서 깨지기 마련입니다. 편들기를 지속적으로 한다면 말입니다.
편들기와 공감은 질적으로 다른 활동입니다. 그리고 질적으로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두 아이가 싸웠을 때,
그럼 양측 모두 공감하고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려면 각자의 속상한 것을 들어줍니다.
먼저 한 아이에게 자신이 속상한 점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도록 합니다.
상황을 정확히 묘사하도록 하고 그때의 감정이 어떠했는지 물어주십시오.
이때 상대 아이는 절대 발언하지 않도록 제한하십시오.
다만 말하고 있는 아이가 말하는 내용이 듣는 입장에서도 사실인지는 확인해주십시오.
한 아이가 말한 사건과 그 사건에서 느낀 감정을 요약해서 부모가 말해주십시오.
그것이 맞는지. 그럼 아이는 부모에게 이해받고 공감받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때 상대 아이는 발끈할 수도 있습니다. 언뜻 보면 상대의 편을 드는 것 같으니까요.
그럴 때는 "너의 이야기도 엄마가 충분히 들을 거야. 잠시만 기다려."라고 단호히 말하고 기다리도록 합니다.
다음으로 상대 아이의 속상한 것을 말해보도록 합니다.
다 듣고 그 속상한 내용을 정리하여 다시 그 아이에게 말해줍니다. 부모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처음 말했던 아이에게 묻습니다.
동생이 속상했던 것을 들으니 어떠니?
먼저 이야기한 아이의 말을 듣습니다.
형이 속상했던 이야기를 들으니 어떠니?
이번엔 동생이 그에 답합니다.
그럼 이제 둘 다 어떤 면에서 속상했는지 엄마는 이해했어.
형인 00 이는? 동생인 **이는 서로의 마음이 이해되니?
그렇다면 이해된 것을 말로 해보자.
서로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해보자.
서로 이야기합니다.
서로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몇 가지 제안해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싸워도 문제를 잘 해결하겠네!
혹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제안하기를 어려워한다면 부모가 몇 가지 해결방법을 이 순간에 제안하는 것은 아이들이 주관식 문제가 객관식 문제로 바뀌니 좀 더 선택하기를 쉬워합니다.
이 방법이 유용한 것은 부모가 제안하는 객관식 선택 문항 하나하나가 오답이 아니라 다른 상황에서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관계 전략을 담아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모는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고 아이들이 서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해나갑니다.
물론 이렇게 늘 성공적일 수는 없어도 부모가 어떤 판단을 내리지 않고서도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는지 아이들의 해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려고 노력해보십시오.
위에 제시한 몇 가지 단계별 질문들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단순히 감정만 이해하고 마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의 과정을 통해 바람을 이해하고 그 바람을 정당한 방법으로 현실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실치료의 핵심적 방법입니다.
위 질문과 대화들은 그 현실치료의 과정을 형제의 분쟁 상황에서 응용하여 적용해 본 것입니다.
상황에 벌어져 문제에 집중하면 부정적 감정이 폭발합니다. 그때 상황이 아닌 사람에게 집중하세요.
이 사례에서는 두 아이에게 집중하여 두 아이의 감정(어떤 부분이 속상했는지), 바람(어떻게 해주기를 바랐는지)을 서로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동안 서로의 말이 들리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이 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주의할 점은 세 명이 이야기하는 동안 형과 동생은 엄마의 허락이 있기까지 서로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엄마하고만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위 질문을 다 한 뒤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라고 하면 됩니다.
결론적으로 형제가 싸웠을 때 편들기는 잘잘못을 가리고 판정을 내리면 자연스럽게 이뤄집니다. 승-패의 상황을 결과적으로 만들게 됩니다.
상황보다는 상황에 처한 각자에게 초점을 둔 공감은 그러한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수용하고 있는지를 부모가 관망하면서 적절하게 바람을 중심으로 대응까지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갈등 상황이 되면 대체로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기보다는 상대에게서 문제를 찾습니다.
상대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자기표현입니다.
자기표현, 즉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에 대부분의 성인들조차도 서툽니다.
자기표현을 잘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표현을 거의 못한다면 아마도 많은 정서적 문제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성인들의 심리적 문제는 자기표현을 적절한 방식으로 적절한 시기에 하지 못해서 생기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것을 역설적으로 자기표현을 잘하게 되면 심리적 문제를 의미 있게 감소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렵지만 배워야 합니다.
적절한 자기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확한 자신의 바람, 즉 'REAL WANT'를 이해하면 됩니다.
그냥 WANT면 WANT이지 'WANT'와 'REAL WANT' 뭐가 다른가요?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진심, REAL WANT를 명확히 전달하여야 자기표현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갈등 상황에서 자신을 상대가 이해를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갈등 상황에서는 나도 상대를 이해하고 있나요?)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가 나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전혀 없는 사례도 있긴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내가 상대가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태도로 표현하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교실 상황을 통해 REAL WANT를 인식하고 정확히 전달하는 예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수업 중 소란스럽게 반복적으로 방해를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보통 학생들은 방해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수업에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주의를 줬는데도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을 교사는 소란스럽게 한다고 생각하며, 실제 수업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저의 초임 시절 5학년 담임을 하면서 생긴 일입니다.
학생 한 명이 계속 이야기를 해서 수업 시간에 3번의 주의를 주었는데도 또 옆 학생과 이야기를 하더군요.
당시 저는 그 학생의 행동만 눈엣 가시처럼 보였습니다.
수업 시간 10분 남았는데 결국 저는 "너 뒤로 나가서 벽보고 서 있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화를 내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벌써 20년 전 일입니다. 요즘 같으면 큰 일 나겠죠?
그런데 그때 그 학생이 뒤로 나가면서 뭔가를 중얼거리더군요.
방과 후에 그 학생을 남겨서 잠시 상담을 했습니다.
다행히 저도 수업을 마친 그때는 마음이 가라앉아서 편히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너 아까 나가면서 뭐라고 했어? (상당히 부드러운 말투로... 아까와는 다르게)
쭈뼛거리며 말하지 않으려는 학생을 몇 번 설득해서 알아냈습니다.
XXX라고 했어요.(저에게 욕설을 했다는 말입니다)
사실 학생인 자신이 잘못해놓고 그랬다니 살짝 화도 나더군요.
그러나 계속 부드럽게 물었습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그런데 왜 그런 욕이 나왔을까?
선생님이 옆에 애도 이야기했는데 나한테만 나가라고 했잖아요.
저는 제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그 아이에게서 들은 것입니다.
수업 시간에 소란해서 뒤로 보낸 것을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했지만, 그 학생은 자신과 같이 이야기한 친구와 처분이 다른 것에 분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수업에서 학생들이 집중해서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임하면서 가지는 REAL WANT입니다.
그런데 반복되는 수업으로 이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원래 가지고 있던 REAL WANT가 왜곡됩니다.
어떤 중학교 선생님은 '애들이 입 좀 닫았으면 좋겠어요.',
어떤 고등학교 선생님은 '애들이 좀 깨어있으면 좋겠어요.'라는 바람이 나올 정도입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조용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은 REAL WANT가 왜곡된 것입니다.
선생님들과 교실에서 학생들과 오래 생활하면서 부정적 상황을 자주 접하다 보니 원래 자신이 가졌을 진심을 스스로도 잊어버린 상태가 되면 이렇게 WANT가 왜곡됩니다.
선생님들의 진짜 진심인 REAL WANT는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업 참여하기"입니다.
하지만 나름의 좌절을 맛본 선생님들의 바람이 왜곡되어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죠.
이혼하려는 부부의 진짜 바람(Real Want) 또한 이혼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정말 두 사람이 사랑하면서 잘 살고 싶은 것이 원래의 REAL WANT, 진짜 바람입니다.
그것이 여러 이유로 현실적으로 어려워지니 이혼이라는 왜곡된 WANT가 생기는 것입니다.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는 학생의 마음도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진짜 바람이 아니라
학교를 즐겁게 다니고 싶은데 그게 안되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공부가 안되거나, 친구관계가 열악하거나....)
다음 학년에도 같은 5학년을 맡았습니다. 그때 다행인지 비슷한 상황이 생겼습니다.
반복해서 소란한 학생이 주의를 줘도 계속 소란행위를 반복했습니다.
수업을 마친 후에 그 학생을 불러서 따로 개인 면담을 가졌습니다.
이때 저는 저의 REAL WANT인 '아이가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기'를 인식하면서 면담에 임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 학생을 야단치는 것이 아니라 수업 중 태도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거야. 스스로에게 내면에서 말을 해봅니다.
[상황 확인하기][
00아, 왜 수업시간에 집중이 안 돼?
네, 집중이 안돼요. 선생님.
[교사의 REAL WANT를 선명하게 전하기]
선생님은 네가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수업하기가 불편해.
그리고 그렇게 수업시간을 보내면 너한테도 정말 손해이거든.
선생님은 네가 수업 중에 많은 것을 잘 배워가면 좋겠어.
[학생의 바람 확인하기]
그러려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거든. 너도 공부를 못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
네, 저도 잘하고 싶어요.
그럼 선생님이 도움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도와줄까?
이때 이 아이가 의외의 제안을 하더군요.
수업할 때 선생님이 제 근처에 와서 수업해주시면 집중할 수 있겠어요.
그래, 그렇게 하자. 그럼 약속! 우리 그럼 이 약속을 계약서로 써볼까?
[서약서 내용]
2주간 수업에 집중하면 선생님이 00 이에게 초코파이를 2개를 지급함!
학생 000 인
담임 *** 인
첫 번째 사례의 학생에게는 저의 진심인 REAL WANT를 말하지 못하고 단순히 현상만 지적을 한 덕분에 실패했습니다.
그림에서 REAL WANT(진심)를 A라고 가정합니다.
저는 A를 그대로 A라고(선생님은 네가 수업에 집중해서 잘 배우면 좋겠어) 하지 않고
전혀 다른 B라는 메시지, "너 뒤로 나가서 벽보고 서 있어."라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아이는 뒤로 나가면서 욕을 했더랬죠.
마음속으로 '으~ 저 인간은 나만 미워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이렇게 전혀 다른 반응인 C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처음에 제가 의도한 반응이 전혀 아닙니다.)
두 번째 사례는 수업 후 따로 학생에게 저의 진심인 A(REAL WANT_네가 잘 배워서 성장하면 좋겠어)를 정확하게 전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표현입니다. 자기표현은 진심을 전달하는 전달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보인 학생의 반응은 자신이 더 나아질 수 있는 제안을 하더군요.
즉, 제가 보낸 진심 A메시지를 A(네가 잘 배워서 성장하면 좋겠어)라고 정확히 이해한 것이죠.
이때 학생은 제가 정확하고 간결하게 진심을 표현했기 때문에 그렇게 잘 선생님의 의도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자신의 성장을 도우려는 의도에는 또한 방어 행동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 대한민국 어떤 초등학생이 첫 번째 사례에서 제가 내뱉은 "너 뒤로 나가서 벽보고 서 있어."라는 큰 소리를 "아~~ 우리 선생님은 내가 수업시간에 잘 배워서 성장하기를 바라는구나."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불가능하죠. 학생이 교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교사인 제가 학생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죠.
많은 선생님들이 현실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소진되다 보니 이와 같이 진심에서 벗어난 말과 행동을 종종 내뱉고는 합니다. 교사도 학생도 안타까운 상태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나의 진심, A(REAL WANT)를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 이야기를 했지만 부모도 마찬가지로 자기표현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이렇게 진심인 A(REAL WANT)를 전달하지 못하게 왜곡된 메시지는 부모를 통해
아이에게 비난의 형식으로 전달하는 일은 가정에서도 비일비재합니다.
너는 어떻게 된 게 24시간 게임만 하니?
는 엄마의 REAL WANT가 왜곡되어 나타난 비난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보통의 아이는 24시간 게임을 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실이 아닌 발언은 자녀의 분노를 더 자극합니다.
하지만 진짜 엄마의 마음은 이것이죠. 이것이 바로 엄마의 진심, A입니다.
네가 그렇게 오래 게임을 하니까 엄마는 네가 ~~~ 까 봐 정말 걱정된다.
이 말을 한다고 당장 아이가 게임을 멈추지는 않겠지만 첫 번째 대사 "너는 어떻게 된 게 24시간 게임만 하니?"는 바로 그 순간부터 대화를 멈추게 합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이 말이 일종의 감정사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자녀는 엄마의 마음을 모를 수 있습니다. 많은 엄마들이 부모님들이 이렇게 자신의 자식을 위하는 진심을 그래도 표현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에 그런 부모의 마음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도 공감받기를 바라시죠?
공감을 받으려면 공감을 받을 수 있도록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야겠죠?
대한민국 어떤 아이도
너는 어떻게 된 게 24시간 게임만 하니?
라는 엄마의 말에서 게임 때문에 아이가 잘못된 습관이 형성될까 봐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볼 아이는 없습니다.
아들~~~(콧소리 좀 섞어서),
게임 시간이 길어지니 엄마는 걱정되네~~
좀 시간을 줄일 수 없을까?
이 정도면 엄마의 의도를 큰 반동 없이 아들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효과가 있으며, 단기적으로는 아이와의 관계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