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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라 Sep 01. 2023

삶을 포기했던 나를 구원한 한 가지

어쩌면 당신의 삶을 구원할 한 가지도.



    세상은 어릴 적부터 내게 세 개의 검은 꼬리표를 달았다. 우울증, 불면증, 불안 장애. 혼자서 해본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지만, 그나마 학교에 다니는 것만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규칙이었다. 중학교 때는 반에서 1등을 하는 것이, 고등학교 때는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것이 삶의 목표였기에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몇 년을 보냈다. 우울과 불안에 꽤 자주 일상을 포기하고 스스로의 목을 졸랐지만, 신기하게도 죽음과는 거리가 멀어 며칠이 지나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간절한 꿈같은 건 없었다. 그냥 계속 공부하면, 그래서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면 뭐라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어중간한 성적으로 원하던 대학에 운 좋게 합격한 나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대학의 공부는 중고등학교 때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모두가 저마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원하는 사람이 되어 일하기 위해 불길처럼 뜨겁게 노력하고 있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찬란한 반짝임을 마주한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의 삶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것을. 왜 살아가야 하는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틀에 맞춰 살아가던 나는 서서히 모든 것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대입이라는 허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근근이 버텨 온 고등학교 3년, 그리고 시작된 목적 없는 대학 생활. 나는 삶의 균형을 완전히 잃었고, 늘 나의 삶을 익숙한 고통에 시달리게 만든 병들은 마침내 내 인생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내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눈물을 참으며 수업을 들었다. 창가에 자리 잡은 날은 강의를 듣다 말고 문득 창밖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이대로는 정말 죽겠다 싶어 본가에 내려가려고 마음먹은 날, 현관문에 떨리는 손을 얹고 한참을 서 있던 나는 이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날, 병적인 불안은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공포의 대상으로 뒤바꿨고, 세상이 무서웠던 나는 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간신히 응급약을 먹고 온몸을 할퀴며 숨을 떨던 나는 결국 삶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의미 없는 인생을 계속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날 현관 앞에 주저앉아 몇 시간을 흐느끼며 느꼈던 무력함은 아직도 나를 몸서리치게 한다.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었던 네 달 전 이야기를 글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못내 신기하고 기쁘다. 내 삶에 크나큰 변화가 있었음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나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한 그 구원은 바로 독서였다.


    마음의 병이 나를 완전히 집어삼킨 이후 나는 좀처럼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집에 틀어박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바뀔 수 있다면 바뀌고 싶었고, 불행에서 도망칠 수 있다면 간절히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게 시도하게 된 것이 바로 독서였다. 그림자조차 없는 방의 끄트머리에서도 책은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힘이 들 때면 머리를 비우고 전자책 앱을 실행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가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었다. 고작 이 정도 행동으로 변하리라는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그날부터 서서히 내 삶은 바뀌기 시작했다.


    평소 몸을 가누지 못했던 시간 동안 책을 읽으니 게으른 스스로를 자책하던 마음이 점차 사라졌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보였던 강박적인 행동들 대신 독서가 남는 시간을 차지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책을 펼쳤고, 침대에 누워 읽는 책은 나를 포근히 재워주었다. 우울과 불안, 무기력이라는 적들도 예전만큼은 무섭지 않았다. 책을 펼쳐 눈을 가리고 나면 곧 사라질 감정들임을, 그 무엇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명한 책들을 돌려 읽으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밤, '이런 느낌의 책이 읽고 싶다'라는 소망이 둥실 떠올랐다. 한참을 검색한 끝에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추릴 수 있었다. '내일은 이 책 읽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잠에 들려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수개월만에 드디어 내일을, 긴 밤 너머의 아침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불안이 아닌 기대를 두 팔 가득 껴안고 잠에 드는 삶, 그 새로운 삶은 그렇게 나를 찾아와 주었다.


    그날부터 나는 열심히 책을 읽었다. 읽은 내용을 잊지 않으려 블로그를 개설했고, 조금 뒤에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만들었다. 온라인으로나마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고, 각자의 꿈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은 나에게 많은 힘이 되어 주었다. 나도 이들처럼 되고 싶다는, 그리고 될 수 있으리라는 열정이 마음에 싹트기 시작했다.


    고작 독서, 하루 몇 분의 독서가 삶에 대한 욕심을 선물해 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졌다. 몇 개월 전의 아픔이 거짓말같이 느껴질 정도로. 물론 아직도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끔은 이유 없는 우울과 불안이 나를 엄습한다. 여전히 밖에 나가는 게 두렵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공포를 느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는 분명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내가 두 달 남짓 동안 읽은 수십 권의 책이 내게 선물한 희망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재차 선물할 작고 뜨거운 희망.


    내 삶을 구원해 준 한 가지는 바로 독서다. 어쩌면 당신의 삶을 구원할 한 가지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거의 저와 같은 시간 속에서 고통받는 누군가에게 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여전히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도 하루가 당신에게 따뜻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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