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일지

20210414

by Logan

서른이 되고 나서 적는 첫 일지이다.



돌이켜보면 무언가를 기록해야겠다고 느꼈던 시점은 늘 공백이 있었던 때였다. 20살 때 동아리에, 사람에, 술자리에 바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서 싸이월드에 비공개 다이어리를 적었고, 23살 군대에서 긴긴 밤을 지새기 위해 다이어리를 한가득 적었었다. 지금 와서 이제 화면을 마주하고 있는 이유도 어딘가가 비어있는 까닭이다.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가지고 정해진 일과와 업무를 하며 틈틈히 취미 생활을 하지만, 20대의 스스로도 방향성을 알 수 없었던 불꽃의 맹렬함은 사그라들고 이제는 잔불만 남아 고개를 까닥이고 있음에, 이 밤 이렇게 일지를 적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 요긴하게 플레이했던 모 게임의 '일지를 적는 자' 특성이 가뜩이나 복잡한 정치적 관계와 국제적 흐름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조용히 개인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에 영감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그래서 오늘의 하루를 돌아보면 코로나 시대인 요즘 흔치 않게 오피스에 출근을 했다. 모니터와 노트북을 연결해서 업무를 보면서, 틈틈히 회사 커피를 축내고 간만에 동기들과 잡담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인간 관계가 단순해지다 보니, 부작용으로 대화 소재 또한 단조롭다. 서로 안부를 묻다가 또 한정된 인적 자원, 각자의 팀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한가로움이야말로 내가 사랑한 가치 중 하나였는데, 잊고 있다가 다시 찾은 느낌이었다. 마냥 늘어지고 한가한 것은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 정중동 동중정 이라고 몸과 마음이 바쁜 와중에 가끔씩 가지는 휴식과 이완이야말로 가치 있는 것이다. 저녁까지 먹고 집에 오는 길은 그러나 멀다. 집돼지는 멧돼지에서 비롯된 것처럼 어느새 실내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비루한 몸이다. 매일 새벽까지 일하고 음주하고 다음날 아침에 출근했던 과거의 내가 먼 이야기 같다. 역시나 그 때의 동력원은 수명을 다한 것인지, 아니면 전기 배터리 마냥 충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하루를 마감하기 전에 이렇게 몇 자를 적는 것에 내심 만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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