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발함의 늪에 빠져 있다.
아마 내가 인문학에 어두운 탓에 정확한 용어가 이미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생각 이상으로 사람들은 창의성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경향성이 있다. 예컨대,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기존에 경쟁사 혹은 내부적으로 한 번이라도 실행되었던 히스토리가 있는 아이템은 반드시 탄탄한 백업과 근거로 무장해야 비로소 어필된다. 어디서 들어본 가락으로 시작을 하면, 벌써부터 청중의 머릿속에는 본론과 결론까지의 스토리라인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클리셰도 비슷한 개념인데, 아무리 영화에서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호화 캐스팅을 하고 갖은 CG를 갈아 넣어도 총알이 주인공 일행을 모두 피해나가는 식의 스토리적 전형성을 가지면 그 순간부터 평이 한풀 꺾여 버린다. 그에 반해 시작하자마자 엑스트라의 급습에 죽어나가는 동료들과 같이, 만약 쉬이 맛보지 못한 신선함과 이질성이 있다면 구성의 허술함은 일부 눈감아진다. 마치 몬스터의 약한 속성을 골라 타격해서 추가 피해와 상태 이상을 거는 이점을 보는 것과 같은 현상인데, 한 번 무장해제된 청중은 어지간한 실책이 나오지 않는 한 취약해진 컨디션으로 레이스를 완주하게 된다. 예술계에서 한 가지 더 예를 찾자면, 정물화나 인물화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화풍은 그 정도가 극에 달해서 사진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묘사해도 별 이슈가 되지 않는 반면, 죽은 새의 시체를 가져다 놓는다는가 다짜고짜 길가던 사람에게 뺨을 맞는(또는 때리는) 등의 행위 예술은 설사 그 저의가 모호하더라도 찬사를 받기 쉽다. 그런데 과연 인식이 아닌 실체의 차원도 기발함으로 운영될까?
오늘 미팅을 하던 중, 높은 분이 툭 던진 말이 있다. '사업은 상식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귀하의 발표에 가치가 있었다.' 물론 100% 진정성에서 나온 코멘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했듯이, 세상의 일은 상식과 당연함의 법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고, 밥을 굶으면 배가 고프고, 아이들은 쉽게 투정 부리고, 물건을 많이 사면 가격이 오른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굳이 근거를 대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도 당연한 파편들이 모여서 다른 현상으로 이어진다. 주식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들의 리포트는 상식이 보여줄 수 있는 미학의 한 좋은 예이다. 그들은 매크로와 마이크로를 넘나들며 우리도 충분히 접할 수 있는 공개적 사실을 조합해서 의견을 낸다. 촘촘히 논리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구성에서의 불순물, 이른바 앞선 단락에서는 기발함으로 포장되었던 비상식과 급발진이 섞여서 독자의 고개를 한 번이라도 갸웃거리게 한다면 해당 리포트의 가치는 급감한다.
기발함은 대개 수명이 짧다. 그래서 '번뜩이는'이라는 형용사와 잘 붙는 명사이기도 하다. 자연은 연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은 자연에 속하는 일부이기 때문에, 인간이 벌이는 일은 모두 상식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