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7
살다보면 다양한 현상을 마주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내 나름의 가설이 스쳐지나가게 된다. 과학적, 의학적, 사회적 등 다양한 근거를 들어서 이 가설을 강화하면 좋겠지만, 남에게 보일 필요 없이 나만의 생각으로 귀결시켜 버리는 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다. 달리 생각하면, 이런 단상들을 모아서 꾸준하게 집요하게 관련 자료들을 모아 하나의 이론으로 탄생시키는 근면함과 명석함이야말로 우수한 학자들의 자질이 아닐까 싶다. 혹은 분업화하여 생각의 단초들을 던져주는 기관과 이를 재료로 기승전결을 갖춘 완성작으로 만들어주는 기관을 두는 것은 어떠할지? 후자는 최근 자주 거론되는 chat GPT가 해결해줄 수 있는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무튼, 그런 맥락에서 최근 출근길에 들었던 생각은 노화에 대한 아이디어이다. 이제 서른 줄에 들어온 내가 노화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만, 초기 가설을 세우고 평생에 걸쳐 검증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보기로 한다. 내 생각에 인간을 비롯한 지성을 갖춘 생명체들은 '연속적으로' 노화하지 않는다. 평균수명 80년이라는 가정하에, 지금 이 타자를 치고 있는 몇 초 남짓한 순간을 1/n으로 나누어 등속으로 늙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다녀온 놀이동산에서 탄 롤러코스터처럼 특정 구간에 진입해서는 다른 구간보다 더 가속도가 붙어 나이가 든다. 그러면 이 구간의 트리거는 어떻게 발생하는가인데, 인간에 근접한 지능을 갖추었고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나는 '포기하는 순간'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렇게 적어내리고 보니, 어디서 많이 읽어 본 동기부여 토막글의 냄새가 난다. 그러나 그런 결론으로 빠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서' 같은 진취적인 맺음까지는 빼고 싶다.
다시 돌아와서 포기는 다양한 안건에 대해 해당된다. 사람의 생애주기를 생각해보면, 유년기와 청년기에 누구든 꿈을 꾼다. 꿈은 하나가 아니라 많은 영역에 걸쳐 있다. 원하던 직장에 취업 또는 원하던 직업을 성취,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 부모님께 충분히 보답, 짝사랑하던 그녀와의 맺어짐, 또래 집단에서의 인정, 대중의 인지도 등 짧은 단어로 요약하면 물욕, 성취욕, 명예욕 등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축을 달려가면서, 처음에는 이 꿈들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다가, 의구심을 가지다가, 종국에는 대개 포기하고 타협한다. 이 때, 사람은 늙는다. 정신적으로 늙고, 육체적으로 늙는다. 좀 더 완곡하게 얘기하면, 긴장 상황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사소한 부상을 알지 못했듯이, 그동안 달려오면서 입은 자잘한 상처들이 눈에 들어오고 따갑기 시작한다. 그리고 노화는 복합적일 때 더욱 거세게 밀려온다. 예컨대, 내가 들어가지 못한 준거 집단에 에 내가 아는 또래가 들어가는 순간, 내 첫사랑이 결혼하며 청첩장을 보내는 순간, 부모님께서 소천하시면서 영영 보은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진도 높은 지진처럼 마음이 갈라지고 늙는다. 하나 더 보태면, 노화에도 모멘텀이 있다. 롤러코스터론으로 돌아오면, 기구는 내리막에서 점점 속도를 붙여서 빠르게 여러 구간을 주파한다.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오르막길에 진입하지 않으면 이 경향성은 끝도 없이 강화될 것이다. 늙음이 그렇다.
이 현상에 대해 감히 가치판단을 하자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내 '삶'이라는 객체를 인지하는 지성을 지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숙명과 같은 것이다. 애초에 인간은 단구간을 단기간에 완수하는 경주마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노화의, 실망의, 상실의, 슬픔의, 잊음의 장면에서 각자의 자세로 맞이하고 아직 오지 않은 페이지를 자력으로 넘겨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