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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Jan 14. 2022

연애일기 2. 진짜가 나타났다

과연, 내 촉이 맞을까?

연애일기 2. 진짜가 나타났다

나의 세계에 발을 들일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삶의 한 켠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과 결국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고찰을 지나 혼자의 일상을 다시 일구어가던 무렵, 진짜가 나타났다.


  10년 동안 연애를 참 부지런하게도 했는데, 잠시 곁에 함께할 사람이라도 이제는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서 만나겠다는 다짐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느끼는 설렘과 조바심이 들게 하는 남자를 만났다. 놓치면 안 될 것 같고, 뜻밖의 행운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다. 잘생겨서 그렇냐고? 어느 정도 그런 것도 있다.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근데 나는 잘생긴 친구들은 많이 만나봤거든. 단순히 외향적인 끌림에서 오는 느낌이 아니다. 상대방이 선수라서 말린 것 아니냐고? 일단 나는 숙맥보단 선수가 좋다. 내가 연애 경험이 많고 능숙한데 상대가 그게 아니면 내가 쉽게 질리고 지치거든. 매력 어필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는 '선수'를 보는 일도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사람들이 부정적인 뉘앙스로 말하는 '선수'라는 사람들치고 진짜 연애를 잘하거나 진국인 사람은 없다. 그냥 누군가에게 매력을 효과적으로 어필해서(시쳇말로 '꼬셔서' 혹은 '홀려서') 쉽고 빠르게 만남을 시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정도 스킬과 특징들은 나로서는 쉽게 걸러 넘길 수 있다. 그런 선수들은 많이 접해봤고 만나도 봤거든.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선수 말고, 긍정적인 의미의 '연애 선수' 같은 느낌이다. 잘생긴 외모와 시원시원한 태도, 유머 감각과 배려가 동시에 배어있는 태도를 차치하더라도(그 정도를 갖춘 남자들은 많다.) 뭔가 다르다. 도대체 이 감각의 근거는 무엇일까?

  '이 사람, 찐인 것 같다. 진짜가 나타났다.' 하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촉이 짜릿하게 나를 감싼다. 이런 촉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절대로 그 촉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긍정적인 경우든 부정적인 경우든. 예를 들어 사람을 대할 때 근거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쎄함'이 들어맞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다만 지금 나의 경우 스스로의 촉에 대해 조금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과연 '진짜'인 거 맞을까? 어떻게 알지? 그런데 나의 빅데이터에 기반한 감각이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낸다. 이번에 놓치면 후회할 거라고, 잘 들여다봐야 할 사람이라고.) 이제 이 남자를 앞으로 찬찬히 보면서 나의 촉이 드디어 고장이 나고 말았는지 혹은 그저 찬바람 부는 시즌이라서 정신이 어떻게 된 건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앞선 소개팅 하나는 실패했다. 상대는 나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보였고 나도 만나서 대화를 해보기 전까지는 괜찮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었으나, 막상 만나서 대화를 해보니 상대의 말투나 스타일, 유머감각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상대는 비혼주의자인 나에게 초면에 '결혼'에 대한 열망을 은근히 드러냈다. 주변 친구들과 형들이 다 결혼을 하는 바람에 '심심해졌다'는 매력도 떨어지는 대사까지 함께.(주변 사람들이 결혼했다고 본인이 심심해졌다는 말은 많은 것을 내포한다. 혼자서 잘 놀고 잘 지내는 사람이 연애도 잘한다.) 결국은 내가 '00씨는 결혼을 빨리 하고 싶으신가 봐요. 저는 당장 그리고 향후 몇 년은 결혼 생각이 없고 그냥 즐겁게 연애를 하고 싶거든요.'라고 말하고 상대는 조금 당황하면서 '아, 저도 당장 1,2년은 연애만 해도 괜찮습니다.'라는 애매한 말을 하면서 대화가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가볍게 차를 마시고 헤어지고 나서 카톡으로 온 조심스러운 애프터 신청을 정중하게 거절하며 나는 조금 씁쓸했다.


  신중하게 만나거나 연애를 좀 쉬자고 다짐하고서 왜 소개팅을 했냐고? 연말이 되면서 소개팅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져서인지 다양한 조언과 기회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거 나쁘지 않으니까.


  그런 기분으로 수락한 두 번째 소개팅에, 진짜가 나타났다. 조용한 카페에서 유쾌하게 이어진 두어 시간의 대화 끝에 이 사람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나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온 것 같은데, 무겁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 점도 매력 있었다. 자연스럽고 편하게 대화를 주도하며 나를 웃게 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들뜨고 기분이 좋았던 건 단단해 보이는 그 사람의 어깨너머로 반짝이고 있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의 영롱함이 한몫했을까?


  지금까지는 남자를 만나서 호감을 갖더라도 상대방의 호의와 노력에 기분 좋게 감동하거나 이성적인 끌림, 함께 있는 재미를 느끼는 정도가 다였다. 누군가를 처음 보고 그 사람이 궁금해지고 놓칠까 간절해서 전전긍긍한 적은 오늘이 처음이다. 평일의 짧은 만남이 아쉬움을 서로 가감 없이 표출하고서, 헤어지기 전 그 자리에서 나에게 스케줄을 묻고 바로 다음 약속을 잡은 것도 호감이 커지는 데에 한몫했다. 주차장에서 헤어지기 전에 웃으며 정중히 악수를 청하기에 거부감 없이 손을 맞잡았는데 손이 뜨거울 정도로 따뜻했다. 이 사람은 계속 알아가야겠다는, 그리고 왠지 전망이 좋다는 걱정 반 설렘 반의 기분 좋은 촉이 다시 한번 나를 감쌌다.      

  저녁 내내 한 껏 들뜬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생각해봤다. 나의 '촉'을 믿을 수 있는 걸까?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결론적으로 오늘의 첫 만남에서 이 남성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 성공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남성의 외모, 전반적인 태도와 행동양식, 만난 자리에서 나누었던 모든 말들이 나의 취향을 저격함과 동시에 상성이 잘 맞아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고 딱히 거슬리는 점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특징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단번에 보였다. 또한 나에 대해 크게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직진했다. 물론 상대도 내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이런 사람은 흔치 않다. 헷갈리지 않게 호감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자신감 있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되 상대의 이야기 또한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단 한 번의 신기루인지, 지속될 운명인지는 지켜봐야 알겠다. 그러나 지켜보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 자체로 연애의 시작에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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