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전 한 닢 같은 학위기
이건 내 친구 이야기이다. 또는 친구 이야기인 척하는 내 이야기이다. 누군가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공부를 하고 싶었다. 박사가 되고 싶었다. 가르치는 것도 재미있고, 남들이 잘 모르는 어떤 분야를 파고들어 알게 되는 것,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사실을 분석해 새롭게 정리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꼈다. 공부는 성격과 맞아야 한다. 그래서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느 날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가 태어나면 무척 바쁘다던데. 엄청 힘들다던데. 마음의 준비를 했다. 마음의 준비는 그야말로 마음의 준비다. 막상 아기가 태어나니 나는 아무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주는 몇 푼의 장학금은 그야말로 숨만 쉴 수 있었다. 아기 기저귀는 뭘로 사지?
원래 대학원생은 숨만 쉬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공부하는데 쓴다. 요새 핫이슈인 주 52시간, 그런 거 없다. 합리적이던 불합리적이던 건강에 좋던 안 좋던. 대학원생은 간단히 말해 책 읽는 눈알과 손가락만 멀쩡하면 나머지 신체기관은 먹고 싸는데만 기여하면 된다. 그런데 이제는 아기를 보고 나머지 시간에 책을 읽어야 했다. 한 달 정도를 해보았다. 그냥 논문에 몇 줄인가 보태는 것도 벅찼다. 마감은 생각도 못한다.
시간만 문제가 아니었다. 논문을 쓰려면 몇 시간을 주야장천 같은 생각을 집중해서 해야 그 실마리가 보일까 말까 한다. 그런데 삼십 분마다 똥을 싸 대는 이 똥 공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을 한 페이지 읽고 나면 기저귀를 갈아야 하고 하루 종일 집에만 둘 수 없으니 산책도 가야 했다.
이해가 안 됐다. 이런 시스템이라면 많은 선후배 동료들은 진작에 종족번식을 포기했어야 한다. 그제야 선배들의 가족과 배우자가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공부를 하는데 아이가 있다면 둘 중 하나는 수입이 괜찮은 직장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면 집안이 넉넉하거나. 남편이 엔지니어이거나 부인이 의사이거나. 그도 아니면 엄마 아빠 형 누나 동생 등 부지런히 돈을 모아 가져다주는 개미들이 주변에 있었다.
한번 더 주변을 둘러보자 높은 비율로 아이 없이 사는 부부들이 눈에 들어왔다. 공부는 하고 싶은데 먹여 살릴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으니 그냥 안 낳는 것이다. 그제야 갑자기 술이 깨는 듯한 기분이다. 공부를 지속하면 공부하는 사람 혼자 먹고 살 수입은 어디선가 찾겠지만 아이를 키울 자신은 없었다.
얼마 전 은퇴한 어느 박사님이 페이스북에 친구 신청을 했다. 나름 업계에서 유명하신 분이고 좋으신 분인데 학교에서 끝까지 교수 자리는 안 내주었다. 공부는 그만두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셨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밤새고 마감에 쫓기고 그럼에도 돈에 쪼들리고 직장이 안 생겨도 공부를 평생 좋아할까? 한 글자에 번역료만큼도 안 나오는 논문을 팔아 월세를 내도 행복할까?
아마도 그냥 책 읽고 남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잘난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교수가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아니 된다고 믿으면 된다고 하던데 나는 아닌 것 같다. 나는 그 정도로 근거 없이 믿음이 강하진 않다.
내가 꼭 하고 싶었다고 믿었던 것이 어느 날 현실을 보면 그게 아니었던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너무 예쁘게만 웃는 아이를 바라보며 공부를 그만두었다.
이제 뭐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