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자기 신뢰' 회복하기

by 재미나

어디를 가나 '웰니스(Wellness)'가 화두다. 유기농 식단과 요가 매트, 그리고 마음 챙김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상품이 쏟아진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든다. 웰니스가 대체 뭐길래 이토록 난리일까. 단순히 아프지 않은 상태를 넘어, 이 유행이 우리에게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기술의 발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내면은 늘 불안하고 조급하다. AI가 답을 대신해 주고 SNS가 타인의 삶을 쉴 새 없이 중계하는 세상에서, 정작 '진짜 나의 삶'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 이제 웰니스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그것은 남들이 정해놓은 건강의 기준을 따라가는 숙제가 아니라, 소음 속에서 나를 지켜내고 내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는 치열한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삶의 정답을 알려줄 초능력자는 세상에 없다. 동시에 의미없는 우연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지금 존재하는 나 자신만큼 확실한 것이 또 있을까? 이제 웰니스라는 유행의 포장지를 벗겨내고, 랄프 왈도 에머슨과 릭 루빈의 통찰을 빌려 그 깊은 내면의 단서를 찾아보려 한다.


1. 웰니스의 본질: 나라는 존재로의 회귀
요즘 도처에서 들려오는 '웰니스'라는 외침은 결국 나 자신과 가까워지기 위한 몸짓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행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함으로써 창조하는 존재들이다. 외부의 소음과 자극을 걷어내고 존재 그 자체의 상태, 즉 본질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에 다가서게 된다. 웰니스는 단순히 몸을 가꾸는 기술이 아니라, 내면의 안테나를 조율하여 가장 나다운 상태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2. 자기 신뢰: 당신 자신을 자기 이외의 곳에서 찾지 말라
우리가 웰니스에 몰두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한 이유는 그 해답을 자꾸만 외부의 권위나 유행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자기 신뢰』를 통해 "당신 자신을 자기 이외의 곳에서 찾지 말라"라고 말한다. 삶의 모든 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타인의 시계에 맞춰 조급해하기보다 내 내면의 목소리를 신뢰하고 나 자신과 밀착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불꽃을 빌려 쓰는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화목난로를 지피는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된다.


심리학자 웨인 다이어의 '오렌지 비유'는 이 진실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오렌지를 짜면 오렌지 주스가 나오듯, 외부의 압박을 받을 때 나오는 것은 결국 자신 안에 있는 본질적인 생각과 감정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화가 난다면 내면에 화가 많은 것이고,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면 내면에 긍정이 있는 것이다. 외부 환경 탓이 아닌, 내면을 다스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타인의 시계에 맞춰 조급해하기보다 내 내면의 목소리를 신뢰하고 나 자신과 밀착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불꽃을 빌려 쓰는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화목난로를 지피는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된다. 이제 행동의 주체성을 명확히 하자. "그냥 한다"는 수동성을 버리고, "내가 끌려서 한다"는 능동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피해야 할 것은 변화 없음 그 자체다. 신중함을 빌미로 뜸을 들이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위험 요소를 기회비용 삼아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3. 사람: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찾는 여정은 혼자만의 고립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세상은 너무나 시끄럽고, 혼자 있으려 해도 손 안의 스마트폰은 잠시의 집중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최근 SNS를 통해 수많은 모임이 유행하는 현상은 홀로 남겨진 시간의 공허함을 SNS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려는 생존 본능일지도 모른다. 홀로 있으면 무방비하게 타인의 삶에 매몰되기 쉽기에, 적당하고 알맞은 교류는 오히려 내 내면을 지키는 활력이 된다. 함께 젖은 장작을 말리고 각자의 존재 방식을 공유하는 건강한 연대는, 나라는 예술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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