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지만 살아있음을,

틈만 나면|글·그림 이순옥

by 푸린



살아있음을 느낀다.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못하는 것이다. 매 순간 우리는 '잘' 살아있음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 때문에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잘' 살아있음을 너무나 쉽게 정의 내린다. 운이 좋아 원하는 바를 이루면 '잘' 살아있는 것이고, 아니면 '못'사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야말로 '살아있음'을 잃어버린 '삶'이 아닌가? 왜 우리는 있는 그대로 살아있기 힘든 것일까?



한 줌의 흙과 하늘만 있다면 '어디든' 살아있을 수 있는 풀들.


의식하지 못한 채 무심코 밟고 지나갔을 수 있는 그런 작디작은 풀들에게서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잊고 살아가다 문득 깨닫는다. 여리디 여린 것들. 하지만 살아있는 것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나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생명은 이렇게 생명을 부른다.





주인공이 아니면 어때
나를 위한 자리가 없으면 어때
한 줌의 흙과 하늘만 있다면
나는 꿈을 꿀 수 있어.



때로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몸부림치기도 했다. 내가 주인공일 때 나를 질투하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말이다.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위한 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힐링하겠다면서 야경을 보러 산 등성이 위까지 올라가 놓고도 내 자리, 내 집 하나 없다는 현실을 한탄하기도 했다.


외로움과 공허함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고 한다. 이를 정면으로 대면할 자신이 없던 나는 있는 힘껏 회피하려 애썼다. '거긴 내 자리가 아니야' '역시 난 안돼' '내가 다 해봤는데, 계산해 봤는데 그땐 가망이 없어' 라던지 말이다. 그리곤 쉴 새 없이 무엇인가를 하거나 누군가로 곁을 채워서 잊으려고 했다.


그런 생각들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였던 나는 병들어 버렸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병. just do it! 을 외치면서 항상 'doing' 하려고만 했다.



그저 'Being' 존재하는 것은 도태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적인 것들로부터 찾으려는 노력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건강을 잃고 오랜 기간을 누워만 지내면서는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됐다. 몸이 회복될 때까지 누워 쉬는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오히려 이 기간 동안 더 많은 것들을 잃었고 앓았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길고 긴 외로움도
오랜 기다림도
괜찮아 나는,


나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결국 어디든지 틈은 있다는 것.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다. 내가 움직일 힘만 회복하고 일어설 수 있다면, 나는 곧 일어설 것이고 또 한 번은 넘어갈 것이다. 비록 원하는 바대로 살아 있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더 멋진 모습으로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더 채우려고 하지 말고 비워보자. 애써 무언가를 해내야만, 이 시간들을 채워야만 '무언가가'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가지고서도 꿈을 꿀 수 있다면,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작지만 힘이 있는 나는
여리지만 살아 있는 우리는


지금 좌절과 실패의 순간에 맞닥뜨렸다면 되뇌어보자.

'나는 그럼에도 살아있다.'

'살아남았으니 더 멋진 쓸모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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