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곰한 괴물이 '있는' 도시

세상에서 제일 예의 바른 괴물 봉바르봉|글·그림 큐라이스, 옮김 봉봉

by 푸린



'달곰하다.'
감칠맛이 있게 달다. ‘달콤하다’보다 여린 느낌을 준다.


봉바르봉이라는 괴물은 강렬한 달콤함이라기보다는 순한 맛이다. 괴물이라기보다는 조구만 스튜디오의 공룡처럼 귀여운 느낌이다. 심지어 예의까지 바르다. 봉바르봉를 읽지 않고서도 치명적인 귀여움과 예의에 빠져들도록 해보겠다. 그리고 이 글을 다 읽을 때쯤 읽고 싶어 진다면 밀리의 서재에서 '봉바르봉'을 검색해 보시라! 현재 밀리의 랭킹 어린이/청소년 부문에 3위를 하고 있을 만큼 인기 있기도 한 그림책이다.






출처 : Yes24 '세상에서 제일 예의 바른 괴물, 봉바르봉' 출판서 서평 중


'유치원생을 앉혀놓고도 설명할 수 있다면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비슷하게는 장황하게 흘러가는 대화나 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또, 진부하고 당연하게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들을 다른 표현으로 전혀 새롭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어떤가? 우리는 이처럼 보다 더 잘 설명하기 위해 비유나 은유, 함축적인 언어로 다르게 표현하곤 한다. 그림책, 음악, 시, 영화와 같은 것들. 철저하게 계획된 여백에서 각자 받아들이게 될 의미를 생각한다.


이제는 어떤 이야기든 한 번쯤은 들어본 나이가 됐다. 그러다 보니 선입견, 고정관념 등이 깊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를 뒤엎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리곤 핵심 가치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선 하나의 가지가 자라나는 기분이 든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서는 반대로 감정 기억 속 구슬에서 잔가지들이 자라나 핵심 가치를 만들지만 말이다. 또 이 사람은 정말 천재인가? 하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우리가 수백, 수천 년을 사랑이라는 주제만으로도 수없이 많은 노래를 부르고 들어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도 이어질 핵심 감정이다. 그 감정의 기억들에서 얻는 감정선들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물론 창작의 고통을 겪어야 하지만 말이다. 그만큼 비유나 은유, 그리고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지능이 더 필요하다. 단순히 똑똑하기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유연해야 한다. 열린 마음도 필수다. 이처럼 당연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점에서 봉바르봉의 시장님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사실은 괴물 '없는' 도시의 시장이었던 것이다. 그가 가졌던 고정관념을 깨는 게 다가 아니다. 그가 가졌던 명예는 괴물 '없는' 세상에서의 시민들로부터 얻어졌을 것이므로 도시 전체의 관념을 깨야했다. 물론 괴물이 시민들이 다치지 않게 꼬리를 잡고 도시를 지나는 것은 참으로 예의 바르고 귀엽다. 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 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여기서 우리는 예의라는 단어가 얼마나 중요하고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는지 은근슬쩍 알게 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얘기도 다들 많이 들어보셨을 터. 그만큼 예의를 갖추고 서로를 배려하면 웬만한 것들은 용서가 된다. 이보다 확실하고 이~지(easy)한 처세술이 어디 있는가?


좋아하는 것은 싫어하는 것 제외하고 비교적 전부라고 할 정도다. 그만큼 싫어하는 게 명확하다. 제일 싫어하는 부류는 숨 쉬듯이 무례한 사람들이다. 예의 없는 사람들. 그만큼 나에겐 예의가 중요하다. 꼰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꼰대가 맞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다만 상황에 따라 정도가 달라질 뿐이다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누가 '더' 이기적이냐, '덜' 이기적이냐가 나뉜다.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해 배려가 생겨난다.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갖춰야만 하는 것.







하지만 삐딱한 나는 과연 봉바르봉이 한결같이 예의 '있음' 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하루종일 예의 있'다'는 봉바르봉 때문에 시장님은 쉴 틈 없이 일했다.


늘어지게 잠을 자다가 엄마 괴물이 와서 밥 먹자고 부른 후에야 인사를 하고 봉바르봉은 사라진다. 마지막까지 인사는 참 잘한다. (여러분, 아셨죠? 너무나 당연해서 잊곤 하는 인사. 인사만 잘해도 반은 성공이랍니다.)


시장님은 그제야 참 힘든 하루였다며 커피를 한 잔 들이켠다. 아니 한 입.


근데 여태까지 보다 더 큰 진동이 울린다. 집에 있던 집기들이 다 흔들리고 무너진다. 진동의 주인공은 아빠 괴물! 여전히 예의 '바른' 봉바르봉 가족은 참치를 주고 간다. 아니 근데 아무리 그림책이라고 해도 말이다. 예의에는 눈치도 포함 아니던가? 이 정도면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인사 잘하고 참치 몇 마리 갖다주고 예의가 있다고 말하는 게 맞는가 말이다. 이것으로 괴물 '없는' 도시를 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은가? 정의로운 영웅이 와서 물리치려고 하는 것까지 말리면서 말이다. 매일 이런 식이면 있다가도 다시 없앨 판이다.


여기선 나의 생계, 안위, 편의를 위해 상대에게 보인 예의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것들을 상대에게 제공했더라도 각자의 능력치는 다르다. 진정 원하는 것을 주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모든 유의미한 대인 관계는 동등한 보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가치 있는 보상을 주지 못하는 관계는 무의미한 관계에 불과하다. 진정한 연결고리는 나의 능력을 전제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출처 : 책 당신을 소모시키는 모든 것을 차단하라 중)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라도 이상적으로 가치가 있다면 우리는 그 때문에 반성하고 변화해야 한다. '괴물은 크고 무서우니 없어져야 해!'에서 생겨난 괴물 '없는' 도시. 이처럼 보이는 것으로 쉽게 단정 짓거나 판단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얼마나 귀여울 지, 예의 바른 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또 여태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은 없다는 것. 당연한 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얼마나 많은 이해되지 않는 순간을 '당연한 거 아니야?'로 일축해 버렸던가. 반성하게 된다. 귀여운 봉바르봉 가족 때문에 괴물 '있는' 도시로 만들기로 한 시장님의 새로운 신념처럼 말이다.


단순히 바뀐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 신념(생각)을 지키기 위한 실천(행동)이 꼭 필요하다. 이전의 가치로는 괴물을 쫓아내는 것이 '정의로운' 영웅이었으나 이제는 예의 바른 괴물을 지키기 위해 영웅을 선뜻, 아니 적극적으로 말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진짜 달콤한 맛은 시장님이었던 것이다. 달콤 달곰한 맛은 괴물 '있는' 도시를 더욱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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