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평생 듣고 싶던 한 마디가

종이 소년|글 니콜라 디가르드, 그림 케라스코에트, 옮김 박재연

by 푸린


책을 펴고 딱 두 번째 장을 넘기면서부터 목놓아 울고 싶은 심정이 됐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감정이 복받치는 일이 많을 줄이야 상상을 못 했다. 체통을 지키지 못하는 나이만 든 애 어른 같으니라고. 엣헴- 그만큼 그림책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마음을 치유하는 것에 방향성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마음속 깊이 작게 구겨져 버려진 종이 조각을 찢지 않고 잘 펴나갈 수 있을까?



다른 아이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내가 종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지.
후, 하고 바람을 불어서 나를 날려 버리려 하고, 나를 찢어 버리겠다고 겁을 주기도 해.
낄낄대며 나를 놀려대지. 나더러 약해 빠졌다고들 해. 세상은 강한 사람만 좋아한다고도 하고.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닌데 화면이 정지 됐다. 숨이 턱 막혔다. 누구나 남들과는 유독 다르다고 생각되는 성격들의 지점이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너무 감정들을 세세하게 느낀다는 점, 그 턱에 같은 자극을 받아도 쉽게 와르르 무너져 내리곤 한다는 점이다. 사실 누구나 종이소년 같은 경험을 한 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그것을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겠지만 말이다. 우울증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온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과거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은 본 적이 없으니, 다들 어느 정도의 우울증은 갖고 있다는 반증이려나?


나의 우울은 사람들의 시선과 말들에서 시작됐다. 처음엔 남들과는 다른 나의 특성을 스스로 원망했다. '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할까?' 하며 채찍질하고 같아지려고, 더 잘해 보이려 애썼다. 그럴수록 내가 원하는 모습과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온 마음을 거기다 쏟으면 내가 점점 없어졌고, 나를 찾으려 애쓰면 모두들 서운해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고 내 문제를 털었다가 약점이 되어 이리저리 찢기기도 수차례. 채 아물지 못한 채 덧난 상처에선 비릿한 피냄새가 났다. 사람들의 시선은 두 개의 동그란 점처럼 이질감이 느껴졌다. 회색빛의 어두침침한 저 모습 딱 그대로였다.



내가 깜빡 잠들면 내 얼굴에 낙서를 하기도 해. 지우려면 몇 날 며칠이 걸리는 낙서들.


종이 소년이 낙서로 가득한 얼굴을 거울로 들여다볼 때는 피눈물을 흘렸던 숱한 날들이 생각났다. 모진 세상에서 풍파를 겪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내려 발버둥 치던 내 모습. 한 가지 다른 점은 내 표정은 조커와 비슷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눈은 우는데 어떻게든 사랑받으려고 입은 웃어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실 웃는 것도 지쳐버렸다. 가만히 있으면서 상대가 필요한 것을 찾는 쪽으로 에너지를 비축한다. 애초에 에너지 용량이 큰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됐으니까 말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잘 아는 것도 상처를 덜 받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어느 날 밤, 엄마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어.
나는 엄마에게 대답했어.

“내가 종이로 만들어져서 다른 아이들이 나를 괴롭혀요.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그냥 평범한 아이가 되고 싶어요.”

엄마가 나를 꼭 안고 말했어.
“우리 아가, 엄마는 네 모습 그대로 널 사랑한단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잘 수 없었어.
이렇게 버림받은 기분이 든 적은 처음이야. 너무 화가 나!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한다고?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을 겪는지 엄마가 어떻게 알아요?
엄만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잖아!
난 종이로 된 아이라고요. 다른 아이들처럼 되고 싶어요!

발이 시커멓게 될까 봐 겁내지 않고 불 위를 뛰어넘고 싶어요!
구깃구깃해지는 대신 푸릇푸릇한 멍이 들고 싶다고요!
빗속에서도 우글쭈글해지지 않고 신나게 놀고 싶어요!
집 문을 쾅 닫고 나와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렸어.
마치 내가 누구인지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처럼......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아.


이 책을 남기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한 포인트였다.


충격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평생 듣고 싶었던 말이 “우리 아가, 엄마는 네 모습 그대로 널 사랑한단다.”였다. 불과 며칠 전에도 엄마가 되어 써보는 편지에다가 같은 내용을 쓰고 펑펑 울었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선 엄마의 이해는 바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매서운 말들을 꽂아대는 엄마를 원망했던 수많은 밤들이 생각났다. 다정한 말들은 바랄 수도 없었는데, 왜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랑 똑같은 모습으로 화를 내고 있는 거야?

너무 복에 겨운 거 아니야?라는 나쁜 생각을 순간 했다. 몇 번을 다시 읽으며 고민해 본 결과 때로는 이런 서툰 위로가 더 상처가 되기도 하는구나 느꼈다.


사실 돌이켜보면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래왔다. 존중과 위로의 경험을 충분히 쌓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말들을 사람들에게 해주고자 했다. 물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가까운 사람에게서 원망 섞인 말을 듣기도 했다.


왜 그랬던 걸까? 상대가 진심 어린 마음을 말하기까지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힘들어하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곤 하지만 사실은 불편한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던 거겠지. 내 마음 편하자고 말이다. 이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더 기다려주려고 노력한다. 어쭙잖은 훈수를 두려고 하는 라떼 이야기도 조금 접어두고 말이다.




또 수없이 많이 접어봐야 할 것들이 있다. 내가 종이라면, 사실 어떤 것이든 될 수 있기에-


늑대가 되어 오감을 느끼고, 강한 힘을 느끼기도 숲의 시작과 끝을 내달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반복하다 보면 나를 어떤 것으로 접어야 정말 빛날지도 알게 될 것이다. 종국에는 용이 되어 그 모두를 놀라게 할 것이니 말이다.




그걸 깨닫고 비로소 새가 되어 날아가는 순간 우린 말할 수 있겠지. 눈물겹게.


그 누가 나를 험담하고 깨부수려고 하고, 낙서를 해도 '상관없다'라고 말이다. 엄마가 진정 나를 위해 해준 말을 이해하겠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집 밖을 뛰쳐나가던 나를 붙잡지 않았던 엄마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겠지. 그리고 비로소 받아들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충분하다는 것을.



그러니 한 번은 꼭, 부디

훨훨 날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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