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지교(芝蘭之交), 향기 없는 향기가 가장 오래가듯

꼬마 구름 이야기|엘레오노라 가리가 글, 아나 고메스 그림, 성초림 옮김

by 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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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구름은 혼자 있는 게 아니다. 숨바꼭질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주 잠시라도, 혼자 있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언제나 똑같아.
내가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다른 구름들은 안절부절못하지.
자기들과 같이 있기를, 자기들과 더 닮은 모습이기를 바라는 거야.

내가 바뀌어야 하는 걸까?


보통 어떤 관계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라고 얘기하면 부정적인 상황일 때가 많으므로 상대가 불안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좋아하고 아끼는 상대이니 그런 맘이 들겠지.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상대를 바꾸는 게 옳을까? 이는 또 다른 형태의 강요다. 부정하고 싶지만 의도하지 않은 순간 상대를 바꾸려고 하는 못난 모습은 나한테도 있었다. 때로는 그런 나의 모습 때문에 상처를 주기도 했다. 꼬마 구름과 함께 하루를 흘러가면서 나는 과연 어떤 구름이었을까, 어떤 구름을 친구로 만나고 싶었을까 생각해 보게 됐다.




모두가 끈질기게 끈질기게 설득한다. 바뀌어야 한다고.


천둥 번개 구름은 엄청난 힘과 능력을 과시한다. 멋쟁이 구름은 멋지게 꾸며야 한다고 말한다. 먹구름은 떼로 몰려와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게 최고라고, 서로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함께라서 행복하다고 말이다. 딴생각하는 틈에 떠돌이 구름에 끌려간 꼬마 구름은 누구와 있어야 할지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게 두라고 한다. 좀 더 내키는 대로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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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높이 산 구름은 사람들과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올라가자고 한다. 거기선 비밀도 지킬 수 있고 문제 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다고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굴에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펄펄 눈구름은 사람들이 자기를 눈 빠지게 기다린다고 함께 놀자고 조른다. 비행기구름은 예쁜 구름을 그려가며 좀 더 자유로워지라고 말한다. 꼬마 구름에게도 재능이 있다고 몇 번이나 말하면서 말이다. 마지막, 저녁노을 구름은 분홍빛, 주홍빛으로 물들이며 정신을 쏙 빼놓기도 했다. 아름다운 것은 늘 우리의 정신을 팔리게 한다.




오늘의 나는 떠돌이 구름에 가깝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맘이 내키는 대로'.

복잡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들 때면 더욱 그렇다. '나에 대해 잘 알수록 실수는 줄어든다.'라는 말이 있다. 또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나에 대해 잘 알려면 내가 어떤 친구를 가까이하는지 들여다보면 된다는 말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 때문에 유독 화가 나거나 힘들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결핍이나 문제가 투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사람 보는 눈을 키우고 싶고 알고 싶다면 내가 모르는 나의 영역을 파헤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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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구름은 여러 구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정말 좋았다. 좋은 친구도 많이 만났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다른 모습인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여기 하늘에는 각자의 자리가 다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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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지내고 싶은 친구를 만날 수도 있겠지!
이게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야


그렇다면 나는 어떤 친구를 만나고 싶은 걸까?


'지란지교(芝蘭之交)'

지초와 난초의 교제를 상징하며, 벗 사이의 맑고도 고귀한 사귐을 의미한다.


이 성어는 깊고 진한 우정에 대한 이상적인 표현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믿음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명심보감이라는 책에서 유래된 이 성어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착한 사람과의 교제는 마치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 오래도록 그 냄새를 알지 못하나 곧 더불어 그 향기가 동화된다고 설명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체취를 가지고 있다. 체취 자체가 향기로운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를 가리고 그날 기분에 따라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향수를 쓰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향기뿐 아니라 다양한 특색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왔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했던가? 한동안 심하게 앓아서 그런가? 나는 맑고 투명한, 건강한 것이 좋다. 가뜩이나 살아가기 퍽퍽하고 때 묻은 세상이지만 진정한 친구는 어떤 것에도 변함없을 것이라는 믿음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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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파트리크 쥐스킨스의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2천만 권 이상, 48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20세기 들어 가장 많이 팔린 독일 소설 중의 하나이다. 클래시커 100개 소설 중 유일하게 현대 소설로 등재되었다. 소설의 엄청난 인기 때문에 도리어 저평가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책으로도 영화로도 유명했던 이 이야기는 책을 영화화한 것 중 유일하게 내 상상력을 뛰어넘었다고 말할 정도로 대단했다.


무향인 장그루누이라는 주인공의 특징 때문에 태어나고서부터 모든 사람들은 그를 기피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모든 향을 맡고 상상으로 그 향의 조합을 생각해 낼 수 있었던 천재이다. 25명의 여인들을 살해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향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그 끝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잡아 뜯어먹어 흔적도 남지 않을 만큼 찾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 사랑이었다.


난 여기서 진정으로 오래갈 수 있는 향기를 떠올렸다. 향기에서 시작하지만 이는 모든 관계로 이해가 넓어진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짓밟고 올라서고, 끊임없이 경쟁을 하며 스스로를 증명해 내는 관계는 불편하다. 일찍부터 경쟁이라면 슬며시 자리를 내어주고 말기도 했다. 너무 개성이 강한 성격도 적응하기 힘들다.


무향으로도, 아무것도 증명할 수 있는 게 없더라도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는 관계.

우리 몸은 신경 써서 씻지 않으면 너무나도 쉽게 냄새가 난다. 따라서 무향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거기서 나는 진정한 지란지교(芝蘭之交)의 모습을 그린다. 향기 없는 향기가 가장 오래갈 수 있는 이유는 끊임없는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 오래도록 그 냄새를 알지 못하나 곧 더불어 그 향기가 동화' 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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