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만 느낄 수 있는 감정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글·그림 마리야 이바시키나

by 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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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순수 혈통 인디언들은 말을 더듬지 않는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왜 이 사람들이 말을 더듬지 않는지 연구했다. 이들 사이에는 말더듬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실패란 단어가 없는 곳에서는 실패하지 않는다.

- 출처 : 인스타그램, bedford_brklyn


말이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모르는 이가 없다. 이제는 힘든 생각이 드는 순간도 경계해야 한다. 남들한테 하소연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말조심을 해야 한다. 나도 모르게 '힘들다, 포기하고 싶다, 죽고 싶다.'이런 말들을 읊조렸다간 진짜 다 무너져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이제는 힘든데 혼잣말도 할 수 없고 속으로만 삼켜야하나 싶어서 답답했다.


근데 처음부터 이런 단어들이 없었다고 가정하면? 그래도 힘든 순간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를 감정의 단어가 없으니 낑낑대더라도 웃어넘길 수 있지 않을까?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단어 자체가 없어서 말을 더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이라는 그림책은 상당히 독특하다. 세상 모든 언어에는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정확한' 단어가 있다고 한다. 한글로 설명할 순 있지만 정확히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순 없었던 것들을 나라별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어떤 낱말이나 느낌은 익숙하게 다가오겠지만, 어떤 단어가 전하는 감정들은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앞으로 만나게 될 어떤 특별한 순간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지도 모른다. 그 단어와 감정들을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걸 말하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들은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책 상담 수업을 들을 때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감정을 왜 나열해 놓은 거지? 했는데 최근에 도서관에 두 권이 꽂혀있는 것을 보고 다시 주워 들었을 때는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주말이라 아이들로 가득 차 시끄러운 어린이 도서관 구석에 앉아서 하나하나의 감정을 조용히 눈을 감고 느꼈다. 근래 들어 감정들이 폭발하듯 몰아치고 있어서 감정이입이 잘됐다. 감정이 풍부해질 때 가질 수 있는 장점이라 생각한다. 남들보다 감정을 크게 느끼는 것에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만 오롯이 느낀다고 생각하는 이 감정들에 하나씩 이름을 붙인다면 어떨까? 궁금해졌다.


* 영국

- 히라이스 :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
- 쿠리 : 몸을 웅크린 채 구석에 누워 있는 것. 안락하고 따뜻한 느낌


* 독일

- 토아슈루스파니크 : 잃어버린 기회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
- 게보르겐하이트 : 완벽하게 안전한 기분.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믿음과 사랑을 나누는 느낌.
- 발트아인잠카이트 : 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 나무들 사이에 홀로 서 있을 때 지구에 남은 유일한 사람이 된 기분


우울하거나 힘이 들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긍정적 감정들을 이렇게 다시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실 우울할 때는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럴 땐 인디언들의 머릿속에 말더듬이라는 단어가 없었던 것처럼 긍정적인 단어들만 감흥이 없게 지워진다. 부정적인 감정들만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우린 잠시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우울증에 걸렸거나 슬픈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 감사일기를 써보라는 얘길 한다. 놀랍게도 모두가 느낄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 이때 감사일기는 뇌에 긍정적인 감정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 준다.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들부터 말이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 한줄기, 푸르스름한 새벽 축축한 아침 공기와 같은 것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감정들. 이렇게 감정이란, 말로 내뱉거나 쓰는 등 모든 표현을 통해서 실체를 갖고 나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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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 메라키 : 어떤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깊이 녹아들어가 진심과 영혼을 쏟아붓는 상태. 무슨 일이든 메라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사랑을 담아 누군가를 위해서 커피를 내리는 일. 우리는 이런 작은 일상에도 온 정성을 다하곤 한다.
* 이집트

- 타라브 : 음악에 매료된 상태. 좋은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황홀감. 음악은 당신을 낯선 세계로 이끌고 전율을 안겨 주기도 한다. 심지어 바닥에 주저앉은 당신을 일으켜 줄 때도 있다.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이나 일이 있는 것도 중요하다. 메라키, 타라브 모두 내가 항상 느껴왔고, 좋아하던 감정들의 이름이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이 지구상에서도 다들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무형의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실체를 만들려는 노력은 인간이면 다 하게 되는 듯하다. 오늘의 타라브는 바닥, 아니 지하까지 추락해 버린 나를 일으켜 주길 바란다.


오늘 와닿은 곡은 Abel Korzeniowski의 Charms다.

https://www.youtube.com/watch?v=YCc3gkJKo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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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 비라하 : 사랑, 헤어지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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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 셰더 : 무언가를 떠나보내거나 가만히 내버려 둘 준비.
- 우웨이 : 어떤 일이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간섭하지 않고 두는 것. 구름은 언제 비를 뿌릴지 정하지 않는다. 그저 물로 가득 채워질 때를 기다릴 뿐이다.
* 포르투갈

- 사우다드 : 깊이 사랑했지만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렸거나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찬란한 슬픔.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장소나 사물일 수도 있다. 사우다드는 슬픔으로부터 달아나게 하기보다 감정을 더욱 생생하고 날카롭게 만든다. 슬픔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슬픔은 삶의 기본값이다. 스쳐 지나갔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쪽은 슬픔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이다.


너무 진심이거나 애쓰는 것들은 오히려 나에게서 멀어진다. 모래를 꽉 쥘수록 손 사이로 알알이 다 흩어지듯. 좋았던 추억마저 퇴색되어 버리는 걸 알면서도 멈추질 못했다. 이럴까 봐 덮어놓고 보지 않으려 했는데 말이다. 나답지 않은 내 모습에 스스로도 놀라고 말았다.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들 해결될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시간들을 멱살 잡아서 어디다가 숨겨 놓고 싶다. 잘라서 없애 버리던지.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생각은 손오공과 같아서 천리, 만리길을 단숨에 내달아가지만 나는 삼장법사다. 한 걸음, 한 걸음 다 오롯이 겪어내야만 천리에 달할 수 있다. 지금 겪고 있는 이 괴로운 감정들도 충분히 앓고 나면 지나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사우다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생생하고 날카로운 슬픔이 행복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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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 시수 :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단력과 회복력을 보여 주는 것. 어떤 도전에도 대처할 수 있는 내적 능력.
* 일본
- 아운 : 가까운 친구끼리 아무 말 없이도 서로 이해하는 것.


시수는 예전부터 내 마음에 꽂혔던 단어다. 회복탄력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문제들에 우리는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게 자립심이고 자존감으로 연결된다. 인생은 혼자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이런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도 한다.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혼자 서 있지만 같이 서 있을 줄도 알아야 한다. 서로의 공간을 배려하기 위해 나무들도 겹치지 않게 자라곤 한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에는 존중에 대한 생각도 많다. 나는 상대를 충분히 존중한다고 생각했지만 반대로 받아들인 경우도 있었다. 이해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무시했다. 그리곤 나를 이해해 달라고만 요구했다. 나만 옳다고 밀어붙이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후회가 됐다.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아운, 가까운 친구끼리 아무 말 없이도 서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이런 관계를 추구하기도 했으나 사실 나는 말을 해야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단정하게 정리해서 해야 한다. 수많은 말들에 가로막혀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의 감정 이름들을 접하고 나니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마음이 드디어 고요해지기 시작한다. 구름이 걷히고 그 사이로 해가 드는 장면을 상상한다.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오롯이 나만 느끼는 이 수많은 감정들을 단정하고 세련되게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가끔은 새로운 단어로 감정 이름을 붙여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순간을 놓치지 않는 너무나 매력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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