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졌기에 더 따뜻했던 날들

따뜻이 흘러간 날들|김지원 글·그림

by 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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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 위에 서 있어
어제는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맸는데
오늘은 여러 갈래의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고 있어.


해가 바뀌면서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사실 20대 중반이 됐을 때와 같은 고민을 한다. 이제 나는 사회적으로는 다 큰 어른인데 왜 여전히 모든 게 서툴고, 어린 걸까? 하고 말이다. 30대 중반이 되면 다르겠지 했던 나는 여전히 많은 것이 서툴고, 어리다. 누구나 처음 겪어보는 인생이고, 현재 나이가 처음 겪어보는 나이다. 죽기 전까지 우리는 이 인생의 길 위에 서 있을 것이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맬 것이다. 잘 가다가도 길이 없어지거나 수많은 길들을 마주하게 된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변수는 '반드시' 생길 것이다 정도를 아는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본인이 보고 들은 변수들을 토대로 계속 걸어 나갈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개인마다 겪어야 할 충격적이고도 새로운 변수들을 계속해서 던진다. 그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헤매고, 무너져 내리곤 한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이나 사람이 찾아오기도 한다.

아름다운 면만 바라보자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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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의 경우는 잔잔한 바다의 일몰이 떠오른다. 차분한 것이 좋다.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것이 좋다.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하고, 선과 규율을 중시한다. 그 비율에서 아름다움을 찾곤 한다. 지켜지는 것에서 오는 안정감이 좋다. 안정감은 곧 편안함이다. 불안함을 다루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것들이 나를 지켜준다. 내가 지키는 것들이 나를 지켜준다.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서
가만히 바라보다 힘껏 달려 보기도 하고
나와 비슷한 친구를 만나 함께 걷기도 했지.


점점 까탈스럽고 재고 따지는 게 많아진다. 하지만 가끔은 스스로 찾아낸 삶의 아름다움을 향해 앞뒤 재지 않고 달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타이밍에 같은 것을 바라본 친구와는 함께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색으로 가득했던 길은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흩어졌어
그리고 함께 걷던 친구도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점점 앞서 가게 됐지.


우리는 '끼리끼리 만난다'라는 말을 매 순간 확인하며 살아간다. '사랑에 빠진 자들은 상처가 비슷한 자들'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상처에서 누군가 먼저 벗어나게 되면 헤어진다.'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사랑 자체가 비현실적이라서 그런 것일까? 현실을 바라보면 그 애타는 사랑이 지워진다는 말인 것 같아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다시 혼자 남겨져 헤매게 될까 봐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들을 급히 따라가다 그만 넘어지고 말았어
나는 넘어진 채 엉엉 울어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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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언제 겪어도 새로운 아픔이다. 그 날카롭고 생경한 아픔이 두려워서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기가 두렵다. 영원한 것은 없다면서? 그러면 '당연하게' 헤어지게 될 것인데 왜 아픔을 다시 시작해야 하지? 처음은 설레고 두려운 감정이 함께 따라오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더 어려운 나이가 됐다. 그만큼 내가 겪었던 아픔의 심연은 훨씬 더 깊고 어두웠기 때문이다. 감히 '겪어볼 만했으니까'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넘어지는 것, 실패, 좌절, 이별, 버림받음이 주는 감각은 너무나 외롭고 고독하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혼자'를 배우고 '홀로' 서는 기반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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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건네받은 온기가 불안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아름다웠던 길에서 스며든 빛이 두려움을 밝게 비춰 줄 거야."

"네가 기억한다면 언제든지 너와 함께할 거야"


'우울'이라는 감각은 인간이라는 동물만이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기억'이라는 것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았던 부분만 바라볼 수 있다. 또 기억을 선택할 수 있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무작위지만 어떤 기억을 추억하며 되새길지는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우리는 축복을 받았다. 반복하지 않는 것들은 망각할 축복. 일부분은 잊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도 용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들에게서 받았던 빛과 좋은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영감들은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을 잊게 해 줄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기로 선택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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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작은 목소리가 이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한참을 넘어져 울던 '나'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맑은 하늘을 마주하게 된다. 걷고 있을 때에 보이는 광경은 끝없는 길이다. 물론 길에서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하지만 넘어지고 나서야 보이는 광경도 있다. 비로소 고개가 아래에서 위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파란색이어도 바다를 보는 것과 하늘을 보는 것은 말 그대로 천지차이이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 가소로울 만큼 차가운 심연으로 가라앉았다면 이제는 고개를 들 일만이 남았다. 우리는 곧 짙은 풀내음을 맡으면서, 산들 산들한 바람을 느끼면서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리고 지나온 깊은 바다들도 따뜻하게 품어낼 마음의 여유를 가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 세월을 또 살아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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