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꽃|김영경 지음
살아가다 보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이 더 많은 듯하다. 또한,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난다. 우울하거나 힘이 들면 혼자 있고 싶어지는 것이 우울증의 증상이라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려하고 결과적으로 더 외로워지거나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마음의 벽을 더욱 높고 견고하게 쌓을 때는 오히려 마음의 힘이 무너졌을 때라는 아이러니.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단단할 때는 나의 문제와 외부의 문제의 분리가 쉬워져 오히려 '탓'을 제대로, 잘하게 된다. 마음이 단단한게 아니라 유연해지는 것이다.
혼자 있기 힘들어하고,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한 나로서는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을 하기보다 '내' 탓을 더욱 쉽게 하곤 했다. 사람 좋은 모습만 보여주길 바라는 나만의 견고한 벽은 성격 좋은 사람으로 보이게 했지만 힘들거나 부정적인 면은 다른 사람들에게 쉬쉬하고 숨기게 만들었다. 혼자서만 해결하려고 했다. 당연히 혼자서 감당하지 못할 부분들이 생겨났고 혼자 끙끙 앓다가 곪는 사태가 발생했다. 게다가 문제를 덮으려고만 넘어가려고만 하다 보니 내가 겪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세련된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어했다. 그러니 문제 해결과는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것에 몰입하면 다른 것이 잘 보이지 않고, 한참 뒤에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작가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작가는 우연히 ‘삶의 작은 즐거움을 사랑하라.’는 글귀를 보고 떠오른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성 안에서 살고 있는 이 책의 주인공은 마치 자신의 모습 같기도 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에 집중하다 보면 자아가 점점 강해지게 되기도 하고, 혼자 고립되는 마음이 들게 되기도 한다. 어쩌면 집을 짓는 동안 점점 커지는 파란 아이는 그런 우리의 마음이 자라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 소통하고, 공감하게 되면서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듯, 파란 아이도 빨간 아이를 만나 그런 기회를 갖게 되고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 건 아닐까?
최근에 몇 년간 꽁꽁 싸매오며 힘들어하던 경제적인 문제를 부모님에게 밝혔다. 당연히 걱정도 많이 하시고 질책도 받게 됐지만 급한 불을 끌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나를 옭아매오던 또 하나의 벽을 부술 수 있었다. 내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증상임을 부모님도 나도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다시 치료받고 관리받으면 좋아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했다. 그렇게 신뢰의 벽을 다 부수고 다시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이걸 밝히기까지 혼자서 쌓았던 두려움의 벽,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 건가라고 생각했던 마음의 벽들을 생각한다. 사실 마주하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스스로가 아니었다. 그토록 좋아하고 우선시하던 친구라는 사람. 사람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몸까지 아프자 안면몰수하고 떠나는 것은 물론 긴 병엔 장사 없고, 치료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가족을 버렸다는 글까지 스스럼없이 쓰지 않던가? 처음에는 정말 내가 문제인가 생각을 했고, 실제로 나는 버림받아도 싸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진짜 내 가족은 나를 감쌌고, 진정으로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똘똘 뭉쳤다. 그래도 싸다면서 정신 차리라지 했던 너의 태도와는 다르게 경제적 위기도 잘 벗어났고 건강도 직장도 훌륭하게 복귀했다. 청약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무시하던 너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집 청약에 당첨되는 행운까지 누리게 됐다. 정말 사람 일은 알 수 없다. 내가 겪어온 나만의 경험 안에서 난 최선의 선택을 해왔고, 최선을 다해 발버둥 쳐왔다. 나의 쓸모나 가치를 높고 낮음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이란 말이다. 현재 나의 상황으로 나의 가치를 함부로 단정 짓거나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이다.
* 도움이 되는 것만이 인간의 가치는 아니다.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도움이 된다"라는 말은 행위 그 자체가 지닌 의미가 아니라, 결과에만 초점을 맞춘 표현이 아닐까? 지하철에서 A씨가 노인 B씨와 C씨에게 자리를 양보하려 한다고 해보자. 허리가 아픈 B씨는 기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A씨는 B씨에게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노인으로 취급받고 싶지 않았던 C씨는 불쾌해하며 이를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A씨는 C씨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A씨가 한 행동은 똑같았지만, 상대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가치'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가치라는 개념은 타인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원래 모든 사람은 저마다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좌우되는 개념이 아니다. 우선은 단 몇 초라도 좋으니 '이런 나라도 괜찮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 인간의 가치는 '있다, 없다'로 규정할 수 없다.
가치는 '있다.' '없다.'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라데이션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새하얗거나 새빨간 사람은 아주 드물다. 대부분은 분홍색에 속한다. 색의 진함과 그 가치의 높고 낮음은 전혀 관계가 없다. 옅은 분홍이든 진한 분홍이든 각자의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길 바란다. 자신만의 색이 무엇인지 알고, 그 색에서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을 느끼면 좋겠다.
- 느긋하게 살았더니 내가 더 좋아졌어요, 코세코 노부유키 지음 중에서
그 어떤 날 읽어도 마음을 두드리는 그림책
가끔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에도, 다른 세상은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에도,
나 혼자 세상에서 고립되고 단절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에도,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어느 날처럼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날에 읽으면 잔잔한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 또, 누군가를 바라보게 되는 어떤 날이나 세상 밖으로 나아가고 싶은 날,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날이나, 용기가 필요한 날에는 나를 변화하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하고 말이다.
누구나 혼자일 때가 있다. 그리고 타인과의 소통이 필요할 때도 있다.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스스로 용기를 내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그리고 타인에게 작은 손을 내미는 사람도 있고 말이다. 그 손을 잡는다는 건 관계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리고 관계는 모든 것을 바꾸기에 충분하다.
그 모든 어떤 날에 읽어도 나를 변화하게 하는 힘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관계는 어떻게 시작되는지, 나의 ‘작은 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는 그림책이다.
나만의 성, 나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계기는 또한 사람에게서 시작됐다.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뻗으며 나를 일으켜준 부모님부터 항상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친구들, 어려움을 알고 모른척하거나 떠나가는 이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자주 찾아와 주고 말 그대로 시간을 함께 해준 친구들, 내 탓이 아니라며 가슴께를 쓸어주며 위로해 주는 친구, 더 많이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 친구들까지 돌아보면 작은 꽃 하나하나들이 내 가슴속에 피어 용기가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담을 넘어올 때까지 응원하며 지켜봐 준 사람들 덕분에 나는 더욱더 성숙해졌다. 성숙이란 것은 나에겐 마음의 여유를 의미한다. 쓸모가 있고 없고, 도움이 되고 말고를 떠나서 나는 그 자체로 사랑받을 존재라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다.
사랑은 받은 만큼 줄 수 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나는 어떤 부정적인 경험을 하건 금세 사랑이 가득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받아온 수많은 반짝이는 작은 꽃들을 한가득 모을 것이다. 그리고 이젠 좀 더 많이 베풀고 나눠주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바로 당신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