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계를 잘 끝맺지 못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끝내야 할 때 끝내지 못한다.
어떤 사람과의 인연이든, 한 번이라도 마음을 준 순간 나는 그 관계를 쉽게 놓을 수 없었다. "언젠가는 다시 괜찮아질지도 몰라", "저 사람도 사정이 있었을 거야", "내가 너무 예민했나?" 같은 생각이 나를 지배하면, 나쁜 기억도 순간 미화된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자신을 내어주고, 또 한 번 무너졌다.
이런 내 모습을 조울증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조울증의 재발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늘 '경고'가 있었다.
너무 무리한 인간관계, 상대의 감정에 나를 맞추느라 눌러버린 내 마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을 놓지 못하고 계속 끌고 가려 한 내 고집. 이 모든 게 결국 내 감정의 저수지를 터뜨리는 댐 역할을 했다.
이 간단한 동사는 사실 조울증 회복에서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조울증은 감정의 과잉 상태에서 생겨나는 병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지나치게' 올라가거나, '지나치게' 가라앉을 때, 병은 재발하고 몸은 무너진다.
그 감정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되돌아보면, 많은 경우 ‘정리하지 못한 관계’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때, ‘끊는 것’은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했다면, 마음을 줬다면, 끝내는 게 무례한 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치료 과정에서 상담 선생님이 내게 처음 건넨 말이 있다.
“○○ 씨는 일이든, 관계든… 모두 끌어안고 놓지 않네요.” ”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그랬다.
나는 무엇 하나 정리하지 못한 채, 모든 걸 걸쳐놓고 있었다. 심지어 상담 치료조차도.
기존에 받던 상담을 정리하지 못한 채, 새로운 선생님과 상담을 병행했다.
사랑도 그랬다. 감정을 완전히 정리하지 않은 채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과거의 감정을 들고 현재를 살아가려 했다.
나는 왜 그렇게 못 끊었을까.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것이 싫었다. 나 때문에 상처받을까 봐 걱정됐다.
하지만 그 애매한 태도는 결국, 나를 병들게 했고, 상대를 더 서운하게 했다. 나는 무리하게 모든 관계를 유지하려다 정작 나 자신을 잃었다. 그 후, 속이 터질 듯 복잡해졌다. 내 안엔 감정과 책임, 미련과 죄책감이 엉켜 있었다. 무엇부터 풀어야 할지 몰랐다. 마치 쓰레기로 가득 찬 방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씩 정리해보기로 했다. 상담 선생님이 짚어주신 것부터.
2년 넘게 친하게 지낸 친구와 손절을 했다. 맞지 않는 지점이 명확했고, 그럼에도 미련을 붙잡고 친구 욕을 하고 있었다. 조용히 듣던 선생님은 이런 답변을 하셨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선택이라면, 저는 응원하고 싶지 않아요. ○○ 씨 자신을 위한 선택이어야 해요.”
신경 쓰지 않고, 내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진짜 복수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두 번째는 가족이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나의 사명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는 침묵하거나 자리를 피했고, 동생은 전화를 피했다. 그래서 나라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술에 취한 엄마의 목소리를 전화로 들으면 나는 본능처럼 긴장했다. 그 이야기는 결국, 내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이제는 듣는 양을 줄이고, "지금은 들을 수 없어"라고 말하려고 연습하고 있다.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현재 연인이 있음에도, 전 연인의 연락을 완전히 끊지는 못했다. 그 사람은 한때 내 유일한 친구였고, 지금도 나를 응원해주는 몇 안 되는 존재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관계는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요즘은 연락 빈도를 줄이고 있다. 처음엔 주 2~3회였던 연락이 이제는 2주에 한 번 정도다.
완전한 단절은 아니지만,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선을 그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끊어내는 연습'을 시작했다.
예전엔 상상조차 못 했던 일들이었다. 누군가와 멀어진다는 것, 관계의 문을 닫는다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거나 먼저 손절할 때만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인간관계의 테두리를 그어나가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하지만 더는 그 애매함 속에서 내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모든 관계를 계속해서 안고 가는 것이 사랑도 아니고, 책임도 아니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를 보호하려는 선택이 때로는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기심이 나를 살리고, 나를 지킨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이 관계가 지금의 나를 돌보는 데 도움이 되는가. 그 물음에 ‘아니요’라는 답이 돌아온다면, 나는 그만 내려놓으려 한다. 그건 내가 나를 병들게 하지 않기로 스스로와 맺은 약속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