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재발의 가장 큰 원인(2)

by 푸린
photo-1579208570378-8c970854bc23?fm=jpg&q=60&w=3000&ixlib=rb-4.1.0&ixid=M3wxMjA3fDB8MHxzZWFyY2h8Mnx8JUVBJUI0JTgwJUVBJUIzJTg0fGVufDB8fDB8fHww


사실 조울증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던 건 이것일지도 모른다.

“네가 힘들어했던 이유는 너무 민감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야.”


나는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많이 곁에 두지는 않지만, 한 번 곁에 두면 그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만큼, 마음을 다해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일까. 그런 관계에서 상실이 생기면, 그 여파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나에게 조울증 재발의 가장 큰 원인을 꼽으라면,


단연코 '상실'이다.



premium_photo-1690443475241-2da4e318834b?fm=jpg&q=60&w=3000&ixlib=rb-4.1.0&ixid=M3wxMjA3fDB8MHxzZWFyY2h8NDl8fCVFQyU4MyU4MSVFQyU4QiVBNHxlbnwwfHwwfHx8MA%3D%3D


관계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 일부를 도려내는 것과 같았다. 함께했던 기억이 일상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에, 그 사람이 없는 지금은 모든 풍경이 이질적이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세상은 그대로 흘러가는데 나만 멈춘 것 같은 감각. 감정은 자꾸 뒤로 쏠리고, 나는 점점 무너져 내렸다.


사실 지금도 울증기가 완전히 지나간 건 아니다. 감정은 여전히 뭉개진 구름처럼 가라앉아 있고, 무기력함은 자주 고개를 든다. 처음엔 책을 펼쳐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음악도, 그림도, 햇빛조차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았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렇게 깊이 가라앉은 나를 억지로 끌어올릴 수는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번엔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내 회복의 첫 번째 계획으로 삼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실천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햇빛을 얼굴에 쐬는 일, 커피를 내려 마시는 일, 침대에서 소파로 몸을 옮기는 일. 그 소소한 움직임 속에서 조금씩 마음의 결도 달라졌다. “기분이 나아지려면 뭘 해야 하지?”가 아닌 “지금 내가 조금 덜 힘들기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매일 스스로에게 던졌다.



photo-1624811532681-e58a7e25f273?fm=jpg&q=60&w=3000&ixlib=rb-4.1.0&ixid=M3wxMjA3fDB8MHxzZWFyY2h8M3x8JUVEJThDJThDJUVDJTgyJUIwfGVufDB8fDB8fHww


가장 피하고 싶었던 현실도 천천히 마주했다. 8년간 조울증을 겪으며 무너진 소비 패턴은 결국 나를 개인회생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그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는 것이 너무 두려웠지만, 심리 상담을 시작한 뒤 조금씩 용기를 냈다. 어렵게 입을 연 나에게 부모님은 처음엔 많이 놀라셨지만, 내 마음의 고통을 알아보려 노력해주셨다. 그리고 말하셨다. “네가 아플 때 내가 널 모른 척할 리가 없잖니.” 그 말에 마음 한쪽이 무너져 내렸고, 동시에 다시 일어설 힘이 생겼다.


물론 단서도 함께였다. “하지만 두 번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며 소비 습관을 고치기 시작했다. 아직도 지출 내역을 들여다보는 건 쉽지 않지만, ‘똑똑가계부’라는 앱을 사용해 한 주간의 소비를 정리하고, 감정의 흐름을 일기로 남기며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했던 음악도 다시 찾아 듣고, 그 순간의 감정을 기록하면서 내 안의 작은 회복을 쌓아갔다.


그리고 사람을 조금씩 만나기 시작했다. 상실의 아픔 이후 다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을 넘는 간절함이 있었다. 겉도는 대화라도 좋았다. 짧은 안부 한마디라도, 나를 이 삶에 다시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나는 내가 여전히 이 세상에 발 딛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아갔다.


완전한 회복은 단번에 오지 않는다. 그리고 회복이란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나로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가지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감정의 파도 속에 있지만, 이제는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고,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려는 노력을 한다.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조금씩, 조용히 되찾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회복의 길 위에 서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이전 02화조울증, 재발의 가장 큰 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