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도, 사랑도 뜨겁게 왔다

조울증 환자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by 푸린

이 질문엔, 이제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그렇다. 조울증 환자도 사랑할 수 있다.


“너는 사랑이 가능해?”
하지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웃어넘기지 못했다.

자기 감정 하나 통제하지 못하면서, 과연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사랑을 시작할 땐 조울증이 있건 없건,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끝은 늘 같았다.
조울증에는 허락된 시간이 따로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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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은 끝이 났고, 지겹디 지겨운 이별을 반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상처만 남는 사랑이 무서워졌다.

조울증을 앓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 감정의 진심마저 의심받을 자격은 없다고 믿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과연 나는,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조울증. 흔히 양극성 장애라고 불리는 이 병은 감정의 극단을 오간다.
며칠 동안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에 빠졌다가, 어느 날은 바닥보다 깊은 침묵 속에 가라앉는다.
사람들은 ‘기분이 왔다 갔다 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그 사이를 건너는 나는 매일 숨이 찬다.
그리고 그 감정의 진폭을 애써 합리화하곤 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정도는 겪지 않아?”
그건 위안이었고, 동시에 무너져가는 나를 붙드는 마지막 끈이었다.


사랑은 안정과 신뢰 위에 쌓이는 것이라는데, 나는 내 기분조차 신뢰하지 못할 때가 있다.
약을 오래 먹지 않으면 통제되지 않는 감정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럴 땐 누구도 만나지 말라고 말했지만, 나는 너무 외로워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나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말동무가 되어줄 누군가를 바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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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들어간 고민 상담 오픈채팅방.
그곳엔 나처럼 조울증, 우울증, 기분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이스룸에서 목소리를 나누며, 나는 느꼈다.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할 수 있겠구나.
그렇지만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문득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나는 저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이런 내가 과연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그 생각에 또 한없이 가라앉았다.


그러던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보이스룸에서 웃는 타이밍, 말끝을 흐리는 방식, 분노의 온도까지 놀랍도록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1호 팬’이라고 말했고, DJ를 자처하던 내 라디오 방송에 응원을 보내주었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마음을 나누던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처음 마주한 날, 서로의 감정을 조심스레 확인했다.


그는 처음엔 조울증에, 빚에, 불어난 몸까지 가진 나의 현실을 마주하는 것을 망설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며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 따뜻한 손 안에서 차갑던 내 손은 온도를 찾아 갔고, 안정감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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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 사랑의 방향은, 내 조울의 방향은 또다시 길을 잃고 말았다.


이전 연인과의 이별 후, 충분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된 사랑은 끊임없이 흔들렸다.
그 죄책감이 나를 괴롭게 했고, 결국 나는 다시, 너무도 쉽게 그의 손을 놓아버렸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음에도, 나는 한없이 외로웠다. 사랑받고 있음에도, 버림받을 것만 같았다.
그럴 땐 묻고 싶어진다. 이 감정이 진짜 사랑일까, 아니면 병의 한 조각일까?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별을 누구보다 괴로워했다.
사랑이 내게 허락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런 나는, 아무도 만나선 안 돼. 사랑해선 안 돼.”
그런 결론이 입에 맴돌았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사랑을 원했다.

그 모순 속에서 나는 무너졌고, 몸부림쳤다.

결국 나는 그에게 보고싶다는 마지막 문자를 보내고,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겨울밤,
나는 두 시간 넘는 운전을 해 그를 찾아갔다.
그는, 날 보자마자 웃었다.
“정말 미웠는데… 그래도 웃음이 나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인가보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달려간 내 손을 다시 잡아줬다.

나는 생각했다. 이런 위험한 일을 감수하는 것 마저도 증상의 일부일까?

하지만 나는 안다. 사랑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과 아픈 것은 별개라는 것을 말이다.

조울증을 겪는 나는 잘 관리받고 있고, 치료받고 있으며,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는 '조울증 때문이야'라며 병 뒤에 숨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연약한 면은 사랑하는 이에게만큼은 솔직히 드러낸다. 필요할 때는 주저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나의 감정도, 상대방의 감정도 책임지려 노력한다.


며칠 전, 이혼숙려캠프 ‘짜증부부’ 편을 봤다. 아내는 조울증 진단을 받았고, 남편은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아내는 약을 먹지 않으려 했고, 남편은 지쳐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고통 속에 있었지만, 나는 그 장면에서 나 자신을 보았고,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조울증을 앓는 사람과 비조울증인 사람이 사랑을 나누면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오랜만에 의욕이 생겨 청소를 하거나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라도 하면, 상대는 이렇게 묻는다.


“조증, 또 시작이야?”


서로 감정이 단단히 닫혀 있을 땐, 그 말은 의심과 비난처럼 들린다. 조증이든 아니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병의 이름은 때때로 그 모든 감정과 행동을 덮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안다.

조울증은 난치병이 아니다.
약을 잘 챙겨 먹고, 조증기에 함부로 단약하지 않으며, 꾸준히 관리받으면 된다. 실제로 잘 관리하며 살아가는 성공한 사업가, 연예인, 정치인들도 많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감정은 원래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걸까?

또 비조울증인 사람들이라고 늘 일정하고 안정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사랑 안에서는 흔들리고, 불안해지고,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저, 우리는 그 진폭이 조금 더 클 뿐이다. 조금 더 자주 흔들리고, 더 조심스럽게, 그리고 더 정직하게 사랑을 배워야 할 뿐이다.


조울증이 있다고 해서 사랑할 수 없다는 건 거짓이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조금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고, 때로는 분명한 경계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함께하는 사람도 용감해야 한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야말로 모든 사랑이 본래 그래야 하는 모습이다.

그러니 나는 이제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조울증 환자도 사랑할 수 있다.

어쩌면 더 깊고, 더 뜨겁게.
더 솔직하고, 더 인간답게.


나는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을 배우고 있다.

조울증을 앓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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