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하루를 회복하는 법

별난 아빠의 이상한 집짓기|진우 비들 글, 김지안 그림

by 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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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나쁜 날은 정말로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비가 쏟아지는 오늘처럼.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성으로 다루기엔 너무 무겁고, 너무 끈적하고, 너무 내면 깊숙이 뿌리내려 있다.


그런 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무너진다. 아침에 눈을 뜨고도 다시 눈을 감는다. 창문 밖의 햇살이 따가워서, 아니면 내 안의 공허가 너무 커서.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누구의 연락도 받고 싶지 않다. 오로지 나만 빠져 있는 수조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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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아빠의 이상한 집짓기』에 등장하는 아빠는 화가 날 때마다 집을 지었다. 무작정, 이유 없이. 설계도도 없이 뚝딱뚝딱. 누가 보면 이상하다 말하겠지만, 그건 아빠만의 감정 처리 방식이었다. 감정이 쌓이면 뭔가를 짓고, 감정을 조각조각 쌓아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게 아빠의 집이 제각각인 이유였다. 그리고 아직 다 지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힌트를 얻었다. 감정은 살아가는 동안 계속되고,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완성해 나갈 때 비로소 회복할 수 있다는 점.


나는 어떨까? 기분이 정말 나쁠 때, 나는 그 감정의 바닥을 경험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하지 못하는 상황에 머무른다. 친한 친구들에게 감정에 대해 토로하거나, 고민 상담을 통해 에너지를 일단 채운다. 그 이후에는 다 무너진 나만의 감정의 폐허 위에 다시 토대를 만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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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을 짓는 데 특별한 자격은 필요 없다. 나는 다만 나를 위한 작은 도구들을 꺼낸다. 펜과 노트, 차 한 잔, 조용한 음악.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태도.


나는 감정에게 이름을 붙인다. ‘슬픔’, ‘무력감’, ‘버려진 느낌’, ‘미움’, ‘지침’. 감정이 무얼 원하는지 묻는다. 배고픈지, 쉬고 싶은지,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건지. 그렇게 나의 오늘 하루를 위한 감정 설계도를 그린다.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내 집의 뼈대를 세운다.


1층에는 감정 일기를 둔다. 오늘의 기분을 일기장에 간단히 적는다. 2층은 감각 회복 공간.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거나,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며 몸의 감각을 다시 깨운다. 3층에는 작은 포만감, 따뜻한 국이나 차를 마시며 내 속을 안정시킨다. 그리고 지붕엔 “지금도 잘하고 있어”, “이 감정도 지나간다” 같은 나만의 문장을 붙인다. 그게 이 집의 외벽이고, 방패다.


이 집은 나를 위한 것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멋진 집도 아니고,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치장된 공간도 아니다. 아주 사적이고, 조용하고, 단단한 나의 감정 공간이다. 기분이 나쁠 때마다 나는 이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를 다시 감싸 안는다.


기분이 나쁜 날이라고 해서 무조건 극복하려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분을 잘 살아내기 위한 준비를 한다. 감정을 밀어내지 않고, 그저 나와 함께 앉아 있도록 허락한다. 때로는 그렇게 내 감정과 나란히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감정 집을 조금씩 보수하고, 또 세운다. 무너지면 다시 짓고, 삐걱거리면 기둥을 바꾼다. 『별난 아빠의 이상한 집짓기』 속 아빠가 그랬듯, 나는 내 기분의 폭풍을 견디기 위한 구조물을 만든다. 그 집 안에서 나는 비를 피하고, 바람을 피하고, 때론 스스로를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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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정말 나쁠 때도, 나는 좋아질 수 있다. 그건 갑자기 회복되는 게 아니라, 나를 살려내기 위한 작은 선택들을 반복한 끝에 찾아온다. 나를 이해하려는 태도, 나를 돌보는 루틴, 나만의 다정한 문장들. 그것들이 쌓여 나만의 집이 된다.


기분이 나쁜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의 감정은 집을 짓는 재료다. 기분이 나쁘다는 건, 지금 나에게 무언가 필요한 상태라는 신호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나만의 집을 지어보자. 창을 달고, 문을 만들고, 조명을 켜자. 당신은 그 안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기분은 지나가고, 감정은 흐르고, 삶은 이어진다. 그 안에서 나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조용히 나만의 집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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