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도 단지 자고 있을 뿐이야

드르렁 드르렁, 아빠는 왜 코를 골지? |앙드레 부샤르 글, 그림

by 푸린



“드르렁 드르렁, 아빠는 코를 왜 골지?”


그림책 속 아이는 밤마다 들려오는 아빠의 코 고는 소리에 혼란스러워한다. 처음엔 무섭고, 시끄럽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왜 저런 소리를 내는지, 언제까지 저럴 건지, 조용해지긴 하는 건지.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탐정놀이를 시작한다. 클라리넷 소리, 자동차 엔진, 따뜻한 곳을 찾아 들어간 고양이, 혹은 굴이 목에 걸린 상황까지, 상상은 자유롭게 흐른다. 혹시 정말 무슨 일이 난 건 아닐까 걱정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새 축구공 이야기로 흘러가더니 이내 축구를 하러 밖으로 나가버린다. 상상이 거기서 멈춘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상상이 실제로 이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비소에 가서 아빠를 분해하거나, 낚싯대를 입에 넣어 꺼내거나 밀어 넣는 상상처럼 행동에 옮겨졌다면, 단지 단잠을 자고 있던 아빠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아빠의 코골이는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이어져온 고단함의 끝이었다.


그림책을 덮고 나자, 문득 내 안에 쌓여 있던 걱정들이 떠올랐다. 그 걱정들도 처음엔 아빠의 코 고는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거슬리고, 무섭고, 나를 잠 못 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대부분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거나, 벌어졌어도 내가 걱정한다고 달라질 수 없었던 일들이었다.


걱정은 나를 지키려다 나를 삼킨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끝났을 때, 나는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혹시 아직 기회가 남아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성급했나?'
'한 번만 더 말 걸어볼까?'

그 걱정들은 마치 안전장치처럼 내 마음을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기의 나는 살아 있는 게 아니라 '멈춰 있었다'.


걱정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고, 관계는 이미 끝났는데도 내가 그 잔상 속에 남아 있게 만들었다.

내가 무언가를 걱정할 때, 그 걱정은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내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것 같고, 내일이 오늘보다 더 안 좋을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실은,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상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았고, 설령 일어났다고 해도 내가 그걸 미리 걱정해서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걱정을 없애려 하지 말고, 조용히 앉혀두기



누군가 말했듯, 걱정은 우리 안의 불안이 만든 허상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걱정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또 다른 걱정을 만든다.


‘왜 나는 이렇게 걱정을 많이 할까?’
‘왜 나는 이렇게 예민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그럴 때, 나는 그림책 속 아이를 떠올린다. 아이도 처음엔 아빠의 코 고는 소리를 싫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소리를 멈추게 하기 위해 아빠를 깨우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 소리의 이유를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이해하게 되었을 때, 그 소리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니게 되었다.


나도 이제는 그렇게 하려 한다. 걱정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이 왜 생겼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들여다본다.


“지금 나는 외롭구나.”
“지금 나, 사랑받고 싶은 거지?”
“혹시나 실패할까 봐 무서운 거지?”


그렇게 걱정에게 말을 걸다 보면, 이상하게도 그 존재감이 줄어든다. 코 고는 소리가 자장가가 되듯,
걱정도 마음의 배경이 되어 조용히 앉아 있게 된다.




관계 속 걱정은 ‘사랑’이 지나치게 자신을 의심할 때 생긴다


나는 관계를 잘 맺으려 애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상대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작은 말 한마디에도 쉽게 흔들리고, 별일 아닌 일에도 깊이 상처받는다. 그럴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저 사람은 지금 나를 싫어하게 된 걸까?’
‘그냥 연락하지 말까? 아예 멀어질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걱정은 ‘진실’처럼 느껴진다. 마치 그 사람이 정말 나를 싫어하게 된 것처럼, 내가 무언가를 망쳐버린 것처럼.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 걱정들은 대부분 해프닝에 그친다.
상대는 바빴거나, 피곤했거나, 혹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공백을 ‘불안’으로 가득 채워버린다.


그때마다 다시 이 문장을 떠올린다.
“걱정의 대부분은 의미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걱정의 대부분은 ‘혼자서 만든 시나리오’다.

상대는 대사도 모른 채 퇴장했는데, 나는 아직도 무대 위에서 다음 장면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걱정에도 ‘의자’를 내어주는 연습


우리는 불안을 ‘치워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림책은 다르게 말한다.
코 고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의미를 이해하면, 함께 누워 잘 수 있다.


걱정도 마찬가지다. 걱정은 어쩌면 나의 일부분이다. 지나치게 상상하고, 준비하고, 예민한 내가
세상을 더 세심하게 관찰하게 만들고, 타인을 더 깊이 배려하게도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걱정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걱정에게 의자 하나를 내어준다.
“그래, 너도 앉아 있어. 다만 너무 앞에 나서진 마.”
“네 말 다 듣진 않겠지만, 네가 왜 그런 말 하는진 알아.”


이런 식으로 걱정과 공존하는 연습을 하면 마음이 조금 더 여유로워진다.
불필요한 걱정이 물러나고 나면, 그 자리에 더 단단한 신뢰와 평온이 자란다.




걱정은 조용히 잠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걱정은 내 옆에 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내가 쓰는 이 문장이 누군가에게 너무 무거운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은 나를 지켜준다.
그리고 그 걱정의 90%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말해준다.
“그래도 괜찮아. 네가 있어도, 나는 잠들 수 있어.”

그림책의 아빠처럼, 나도 오늘의 걱정 위에 이불을 덮고 조용히 누워본다.
드르렁, 드르렁. 걱정도 조용히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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