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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호 Jan 13. 2021

아버지의 교통사고

아픔은 사라지는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더라.

네이버 블로그는 한의원 홍보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을 주로 쓰고, 이 공간에는 조금은 사적인 이야기들 써볼까 합니다. 또 아나요. 나중에 책이라도 한 권 낼수 있게 될지...


아무튼 오늘은 친한 사람들이 아니면 굳이 잘 얘기하지 않았던 저의 개인적인 일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다 똑같다. 반면 그렇지 못한 가정은 모두 갖가지 이유로 불행하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


당연하게도 불행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평온한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어서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사건. 살면서 그런 일을 겪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좋은 학교 가서, 좋은 직장 얻어서 너는 우리처럼 고생하지 말고 살아라"라는 말씀을 자주하셨던 부모님 밑에서 풍족하진 않지만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다. 인문계 고등학교가 두 개 뿐인 소도시에서 어릴때부터 공부를 곧잘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도 가고, 한의대도 가서 무난하게 졸업하고 한의사가 되었다.


공중보건의 마지막 3년차를 보내고 있던 2013년 11월21일. 날짜도 잊을 수 없는 그 날 밤에 사고가 일어났다. 전날 진탕 마신 술에 하루종일 골골대고 있던 밤에 누나에게 전화를 받았다. 엄마한테 전화를 받았는데,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고가 나서 지금 병원으로 급하게 가는 중이라고. 엄마가 또 보이스피싱에 당한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바로 강원도 화천에서 차를 몰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가는 길에 아버지를 구조했던 구급대원에게 전화를 받았다.


큰 사고가 났는데 머리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응급실에 가서 바로 수술에 들어갔는데 위독한 것 같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많이 나서 운전하기가 힘들정도였다. 그렇게 도착한 병원 수술실. 몇 시간 동안 수술실 밖에서 수술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다. 그렇게 수술이 끝나고,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에게 '뇌와 장기 손상이 너무 크다. 오늘밤이 고비다. 기다려보는 수 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를 들을때도 현실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의 가족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전화벨이 울릴때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봐 가슴이 철렁했다. 잠들 때마다 아침에 눈을 떴을때 1년쯤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지만, 그건 진정한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기다리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시간은 큰 고통이었다.


면회를 가서 이름을 불러도 아무 반응이 없던 아버지는 일주일쯤 되어서 눈을 떴다. 숨은 쉬고 눈은 뜨는데 이름을 부르면 아는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한 식물인간, 반혼수상태. '미만성 축삭손상'이라는 주상병명. CT로 본 아버지의 뇌는 출혈로 가득차 있었다. 큰 충격에 의해 뇌가 흔들리면서 멍이 들고 손상이 생겼다고 했다. 학교 때 배운 것처럼 뇌는 손상되어도 재생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책을 찾아보고 여러 병원에 가서 진료도 받아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기적을 바라는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 뿐이었다.


젊을 때부터 의지력이 엄청난 어머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 몇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병문안을 가서 이름을 부르고, 꼭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셨다. 하지만 알아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촛점이 애매한 눈. '부르면 알아보는 것 같다'는 애써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안타까움과 절망을 가리기 위한 추임새일 뿐이다. 절대 가족이 간병하지 말자는 약속을 깨고 2년 정도는 어머니가 병실에서 함께 먹고 자면서 직접 간병을 하기도 했다.


7년.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처럼 정말 긴 시간이다. "아버지는 좀 어떠시니"라는 친척들의 안부전화에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라는 애써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수히 반복된다. 매일 가던 병문안이 매주로, 매월로 바뀌면서 이런 고통은 점점 익숙해지고 무뎌지며 일상이 된다.


처음에 인용한 톨스토이의 문장처럼 불행은 저마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일상에 젖어든 불행은 어쩔수 없이 그 특유의 어두운 빛을 발한다. 요양병원에 병문안을 갈 때마다 마주하는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 기막힌 사연들.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없는 요양병원의 일상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평온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면회조차 할 수 없는 지금. 무뎌지고 익숙해진 불행은 나에게 그런 불행이 있다는 것조차도 잊게 만든다. 모두가 조금씩 잊어가는 동안에도,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아버지는 매일의 불행을 견디며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손가락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가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살아가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의미가 있을것 같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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