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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gonus 아빠토마스 Apr 08. 2021

[음악형식] 술자리

악구를 반복하면서 작곡가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법

"형님, 저... 연애하고 싶습니다..." [R]


술이 살짝 들어간, 지금 이 술자리에서 처음 알게 된 손아랫사람(동생)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툭, 나에게 뱉은 말이다. "네, 그럼요. 좋은 분 만나셔야죠!"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도 말을 섞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까 그 동생은 혼자서 술을 마시며, 열명 이상의 대화가 동시에 이루어진 탓에 조금 시끄러워진 술자리를 이리저리 훑어본다. 시간이 지나서 나는 다시 그 동생과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동생이 다시 말했다. [E1]


"형님, 저... 연애하고 싶습니다..." [R]


"당연히, 좋은 분 만나실 거예요, 자 한잔 받으세요"라고 그 동생에게 한잔 주고 나에게 한잔을 다시 부탁했다. 서로 동시에 술을 들이켜고 기분이 조금 나아진 상태로 안주를 입에 넣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가 또 말한다. [E2]


"형님, 저... 정말!! 연애하고 싶습니다..." [R']


(1시간 전)

20년 지기 친구인 G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특히, 힙합가수들 안에서는 이름 대면 다 아는 가수다. 게다가 그의 동생은 한 때 많은 힙합 꿈나무들에게 우상 그 자체였으며, 가난을 극복한 자수성가형 부자이자 성공한 힙합 가수다. 내 친구 G가 홍대에 친구들이 모여있으니 같이 한잔하자며 나에게 전화했다. 그곳에 모여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앨범 한 장 이상은 발매한 프로 힙합 가수들인데, 이런 모임을 가질 때마다 나는 예전부터 초대를 받고 가끔씩 참여했고, 그들도 내가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던 터라 합석하는데 전혀 부담은 없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음식과 술이 방금 나온 상태였고 나와 친구 G는 여느 때처럼 뜨겁게 안으며 인사했다. 그 자리엔 처음 보는 몇 사람이 보였는데 나는 반갑게 인사했고 그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졌는지 그 동생은 초면이지만 나를 꽤나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E3]


(다시 현재)

"형님, 저... 연애하고 싶습니다..." [R]


이젠, 이 친구가 취해서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대답 또한 특별히 다르지 않을 것이고 이 말이 그에게 와 닿든 닿지 않든 그는 기억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 이 동생과 주고받는 말은 더 이상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독백 같은 말이 될 것도 뻔했다. 나를 전봇대나 벽 정도로... 생각한 것은 아닌지... 하지만 아무리 그의 전두엽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풀려있다고 해도 처음 나에게 받은 그 친절한 '이미지'는 그의 머리에서 그가 지금 나에게 하는 말처럼 반복되어 굳어져 있으리라. [E4]


마지막 그의 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실 나도 살짝 욱해서, '아니, 누가 하지 말래? 해 그러엄!!'이라는 말이 올라와서 혀끝이 간지러웠고 이 자리에 더 있다간 나를 초대해준 친구 G의 흥을 깰 것 같았다.

내일이면 잊을지 모를 반복적이고 강렬한 메시지를 나에게 토로한 그 동생은 결국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CODA]




이처럼 반복의 목적은 강조에 있는데 반복을 하면서 조금씩 메시지의 형태를 바꾸는 방법도 있고, 메시지의 강약을 조절하는 방법도 다. 론도[(It.) Rondo, (Fr.) Rondeau]에서는 전달하려는 악구(메시지) 시간차를 두고  모습 그대로(곡의 흐름상 주제를 살짝 변화하는 경우도 있음) 반복하는 것이 특징이다.  


[R] 표시한 것은 Ritornello(리토르넬로)인데, 반복 혹은 후렴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이며, 리토르넬로가 바로 반복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작곡가의 메시지  자체이다.   


[E1, E2,...] 표시된 에피소드들은 반복될 메시지 [R] 잠시 잊게 해주는 역할 덕분에 리토르넬로의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과 식상함을 덜어주는 역할맡아준다.


[CODA]는 마지막, 꼬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곡의 마무리를 뜻한다. 코다는 곡의 마지막마다 반드시 등장해야 하는 법은 없지만 숨이 턱까지 찰 정도로 쉼 없이 달려온 긴 여정을 단번에 끝내기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곡이 끝나기 전 가쁜 숨을 고르는 긴 날숨의 과정으로, 곡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과정쯤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1A1IY3Wi8Ps

0:00-0:23 [R]

0:24-1:20 [E1]

1:21-1:42 [R]

1:43-2:39 [E2]

2:40-2:58 [R']

2:59-3:49 [E3]

3:50-4:03 [R]

4:04-4:33 [E4]

4:34-4:46 [CODA]


#리토르넬로와 에피소드 사이의 연결구 부분의 분석은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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