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상태인가, 어떤 과정 속에 놓여있는가.
지금 인생에서 어떤 상태와 과정 중에 놓여있는가?
어느 회사의 과장의 자리,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 두 아이의 엄마, 어느 반려묘의 보호자처럼 우리는 어떤 자격이나 상태에 놓여있다.
과정 중에 놓여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말 그대로 박사학위 과정 중에 있는 사람, 공연 날을 앞두고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 고시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아이를 뱃속에 품고 만나기를 고대하는 엄마, 이들 모두 어떤 결과를 위한 과정 중에 있다. 과정은 어떤 목표점이 있으며 목표점은 곧 결과를 나타낸다.
그 결과는 다시 어느 지점을 향해 발전하거나 또 다른 목표를 위한 어떤 과정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은 시공간 속에서 특정한 방향 없이 입체적으로 진행되는데, 음악의 그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다섯 개의 선이 길게 그어진 지면 위에 음악 기호와 다양한 표시들을 이용해서 작곡가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 기호와 표시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세계를 불러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작곡가는 자신의 세계를 반복해서 쓰고 고친다.
이 세계도 인생과 마찬가지로 상태와 과정의 굴레 속에 있다. 그래서 '창조'한다고 말한 것이다.
오선지 안에서 상태는 바로 정해진 범위를 이야기하는데, 음표 한 개가 지니는 지속 가능한 길이, 세고 여림, 엑센트 같은 것들이다.
악기가 많아질수록 그 음표 수직 아래 위로 음들이 쌓이는데 이렇게 되면 각각의 음이 하는 역할이 정해지고 함께 울렸을 때 어떤 조화로운 소리가 들린다. 음이 동시에 울리는 그 시간 동안 이 시점의 '상태'가 음의 길이나 색깔로 정해진다.
하나의 음이 하나의 박자 안에서 더 세밀하게 나누어지면 '리듬'이 만들어지는데 같은 박자(시간) 안에서 짧은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요소들이 더해지면 어떤 상태라 하더라도 그 '세로축'의 울림이 더욱 풍성해진다.
오선지 안에서 과정이란 하나의 방향을 말하는데 음악이 항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된다.
앞서 말한 하나의 박 안에서 리듬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더 큰 의미에서 박과 박이 리듬이 이뤄지기도 한다. 단 여기서 뜻하는 리듬이란 오른쪽으로의 진행을 돕는 더 강한 운동성을 가진다.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일상들 중에 특별히 반복하고 싶은 부분은 도돌이표를 사용해 한 번 더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은 두 번 이상은 반복해서 살지 못한다. 두 번 이상의 기회를 얻는다고 해서 특별한 변화를 보여주기도 힘들고 듣는 사람을 위한 음악이기 때문에 세 번은 과하다는 게 오래전부터 이 세계의 법칙처럼 여겨졌다. 이런 상태는 속도감이 다르게 표현되더라도 어김없이 오른쪽으로 진행하며 음악의 '가로축'을 맡는다.
우리의 삶이 어떤 상태나 과정 속에 놓여있는
것처럼, 작곡가는 오선 위에 악상 속 주제의 상태(세로)와 과정(가로) 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