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들여 얻어 낸 진리
어떤 일을 실행하는데 어느정도 준비가 된 상태라도 그 일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으면 항상 찜찜하니 뭔가 석연치 않았다. 이 기분은 실제로 일을 진행하면서 상대방에게도 개운하지 않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하나의 음악 작품을 위해 길게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들이는 작가도 있다. 연주자도 이런 작곡가가 남긴 기호와 수수께끼를 그의 의도와 가깝게 풀어내는 데 길게는 평생이 걸린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라 연락해서 물어볼 수도 없거니와 연주를 앞두고 모든 비밀을 풀지 못하고 무대에 올라가 이 일을 수행한다는 오래된 사실을 받아들이는 나는 연주자다. 나에게 이 직업은 매번 불안하다. 정말 의미를 알고 실행하는가? 하지만 힘들게 알아낸 이 결과도 과연 진짜 그가 의도한 것일까? 무대에서 멋지게 연주하고 내려온 몇몇의 연주자들에게 어떻게 그 템포로 결정해서 연주했냐고 물으면 "음반 몇 개를 듣고 그대로 따라 했다"며 나에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들도 열심히 연습하고 연구한 결과물을 열과 성을 다해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많은 연주자들이 여러가지 답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아직도 찾고 공부하고 고민할 것 투성이인 음악 덕분에 시간이 매번 모자란다. 그래서 관객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음악이지만 한 때 나에게 미완성이며 불안함 그 자체였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대에 오르는 느낌, 이를 어느 정도 해결하지 못하면 안된다.
미국 영화에서 주인공이 모험을 떠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내용들,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고 업적을 이루고 귀향하는 전투부대들. 종말을 앞두고 다투었던 가족과의 화해. 나갔다가 돌아오는 모습들을 보며 나는 미국의 야구를 점점 이해하기 시작했다. 왜 그들이 야구를 축구보다, 배구보다 더 좋아하는지를.
국민(Team)의 이윤을 위해 떠난 개척의 모험에서 잠시 동안 머무는 세 개의 기지(Base)들. 모험을 떠나는 곳도 집(Home)이고 시작해서 다시 돌아오는 곳도 집(Home)이다. 집을 떠나는 사람은 기지에 머무르는 사람과 함께 살아 돌아와야 한다. 1,2,3루에 있는 이들은 점수를 내기 위한 주자의 의미 넘어 구출해서 집으로 ‘데려와야 할’ 대상인 것이다.
내 나름의 해석이지만 본능적으로 이것이 맞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뒤로 야구를 보는 이해도가 높아졌다.
만약 내가 야구선수였다면 이를 깨닫는 순간부터 타율이 더 높아졌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나름의 이해에 도달하기까지 몇십 년이 걸렸던가?
하물며 언제 이해하게 될지 모르는 것들을 위해 내 시간을 투자한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하나?
내가 찾아낸 이 하나의 '진리'를 위해서!
하지만 내가 얻어낸 그 가치의 깊이와 밀도는 평생의 살과 피로 내 안에 머문다.
연주자들끼리 험담, 음악계의 각종 루머들을 좋아하는 ‘호사가 연주자들’은 예술 본연의 재미를 잃고 매너리즘에 푹 절여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도 그런 시기가 잠시 있었다. 음악에 대한 재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을 때, 음악을 하고 있음에도 그것이 마치 권위처럼 느껴질 때가 그랬다.
저런 가치를 전혀 몰랐을 때, 나는 그랬다. 시간이 넘쳤고, 맛있는 것과 재미있는 것에 집착했다.
“연주자들은 높은 수준의 음악 작품을 자신의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한다. 자신의 기량과 한계를 극복하며 그 작품이 가진 높은 수준으로 도달하려 하지 않는다.”
가끔 수행하기 버거운 과제가 내 앞에 놓이면 각종 핑계와 타협 거리들이 나를 감쌀 때 내 스승님의 말씀은 이들을 물리치는 쓰라린 소독약 같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작은 비밀들을 하나씩 알아내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공부하는 데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 아니 내 생이 너무 짧다고 끝내 느낀다.
시간이 없다.
당신과 싸울 시간이 없다. 쉬면서 하는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도 필요하겠지만 나는 지금 내 공부와 연구에 몰두하느라 다른 것들이 내 안에 자리하도록 허락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내가 알아낸 이 재미를 당신과 기꺼이 나눌 시간은 있다. 왜냐하면 나는 이것을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