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조문객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 우리 가족은 이곳저곳 흩어져서 각자 무언가를 바쁘게 하고 있었다. "손님 오셨다! 손님!" 누군가의 외침에 빈소 앞으로 우왕좌왕 분주하게 모였다. 주재원에 나가있는 형부는 아직도 비행기 안이었다. 언니는 갓 돌 지난 조카를 아기띠로 안고 있었다. 아빠는 여기서 대체 본인이 뭘 하고 있는 건지 실감하지 못한 듯 남의 장례식 온 것처럼 쭈뼛거렸다.
나이별로 서야하나? 아들이 제일 먼저인가? 서로 자리를 요리조리 바꿔보며 서는 모습이 왠지 시트콤 속 한 장면 같았다. 처음 해보는 일이니 잘 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능숙한유가족이세상에 존재할리가.
몇 번의 어수선한 조문을 마쳤을 때 형부가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언니 시부모님이 오셔서 조카를 받아주시자 알록달록한 조카옷으로 가려져 있던 언니의 시커먼 상복이 드러났다. 아빠는 역시나 그 사이를 못 참고 조문객들과 술을 잔뜩 마신 모양이다.
상복을 갖춰 입은 삼 남매와 두 사위, 만취한 아빠까지 한 줄로 섰다.
'음, 이제야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군.'
손님들이 오기 전 음식을 주문했다. 밥과 국은 한 번에 30인분씩, 고기와 전, 반찬, 떡도 한 번에 몇 킬로씩 배달된다. 음식이 도착해서 맛을 봤는데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정말 맛있었다.
밥 먹으러 장례식장에 오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도 나는 안도했다. 다들 우리 엄마 장례식을 맛없는 밥과 우울하기만 한 분위기로 기억하지 않았으면 했다.
특히 수육이 맛있어서 나는 자꾸 친구들한테 '수육 더 먹어. 기가 막히게 삶아졌어.' 하며 수육을 권하고 돌아다녔다.
친구들은 '얘가 왜 이렇게 해맑지?' 묻지도 못하고 내가 내민 수육을 집어 먹으며 "야 여기 수육 맛집이다." 농담을 받아쳐줬다.
백세시대라는 세상에 아직 부모를 잃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나이였다. 친구들도 이런 자리에 많이 와보지 않았을 테지. 빈소에 서서 불안하게 눈을 굴리며 지들끼리 툭툭 쳐대면서 동선을 맞추는 게 왜 이렇게 웃긴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바닥만 바라보고 절했다.
먼저 부모님이 돌아가신 몇 안 되는 친구들만이 네 맘 안다는 듯 온 얼굴에 따뜻한 공감의 미소를 담고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음식이 부족할 것 같으면 도우미 분들이 말씀해 주셔서 계속 가득가득 음식을 채워 두웠으나 둘째 날 밤이 되자 난감해졌다. 남은 음식은 얼마 되지 않는데 앞으로 몇 명이 더 올지 알 수 없었다. 식당은 9시에 마감을 하기 때문에 마감시간을 놓치면 손님을 대접할 도리가 없었다.
8시 50분쯤 되었을 때 남은 음식은 20인분 정도였다. 손님들의 발걸음은 거의 끊겼다. 나는 그래도 여유 있게 음식을 쌓아두고 싶었다. 우리 엄마 마지막 파티(?)에 단 한 명에게라도 음식이 떨어졌다며 땅콩과 음료수만 내놓기는 싫었다. 이모들은 둘째 날 밤이면 올 사람 다 왔다고 남으면 내다 버릴 음식 아까우니 시키지 말라고 했다.
'아, 그래도.'와 '얘가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의 실랑이 속에 언니와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언니친구가 들어와 섰다.
그 언니가 엄마한테 인사를 하고 우리와 맞절을 하는 중에도 머릿속으로는 앞으로 올 사람과 남은 수육을 계산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고기..! 육개장과 고기만큼은 부족해선 안 돼!!'
그 순간 언니가 내 팔을 확 붙들고 나를 황급히 일으켰다. 웃음을 참으며 귓속말로 '뭐 하는 거야 이 미친 X아' 하길래 '..엉?'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다들 서 있고 나만 언니 친구한테 죽은 사람한테나 한다는 두 번째 절을 하고 있었다.
'앗 죄송해요. 제가 남은 수육 계산하느라고. 지금 수육이 거의 떨어져서.' 당황해서 자꾸 수육수육 거리는 나를 보고 언니 친구는 웃지 않으려고 이를 꽉 깨물면서 사라졌다.
결국 주문 마감 직전이라며 짜증을 내는 식당 이모님께 고개를 조아리며 음식을 넉넉하게 추가했다. 다행히 그 이후에도 꽤 많은 손님이 와서 그 음식은 깨끗이 동이 났다. 아침에 가족들 먹을 만큼도 안 남아서 누룽지를 끓여서 컵라면과 먹었다. 하지만 배고프게 돌아간 손님이 없다는 만족감에 내 포만감은 충분했다.
발인 전에 정산을 하러 올라갔다. 식대는 총 6,326,000원이 나왔다. 방명록과 조의금을 정리해 놓은 장부를 보니 이틀 동안 약 400명 정도의 조문객이 온 것 같다. 이 숫자를 토대로 계산해 보면 장례식장의 1인당 식대는 15,000원-18,000원 정도라고 대략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편의점 사용료는 총 2,008,400원이 나왔다. 편의점에서 뭘 그렇게 많이 사 먹어? 할 수 있으나 장례식장의 모든 장례용품은 편의점에 있다. 당연하게도 국자, 도마, 고무장갑, 부의금 봉투 등 모든 것을 편의점에서 평균 시세보다 비싸게 구입해서 써야 한다. 예를 들면 식도 하나에 12,000원 가위 하나에 10,000원에 사서 쓴 다음, 장례식이 끝나고 나면 다 어디 갔는지도 알 수 없는 시스템이다.
그런 기본 식기들을 집에서 챙겨 오거나 하다못해 쓴 물건들을 챙겨갈 수도 있겠지만 글쎄, 그런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 세세한 것들은 신경 쓰고 싶지 않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199병의 소주와 94캔의 맥주를 소비했다. 우리 엄마 죽음으로 마음 쓰린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거라며 나 좋을 대로 해석했다.
우리는 미리 정해놓은 장지가 없어서 장례 둘째 날에 장례지도사에게 부탁해 장지전문가를 장례식장으로 불렀다. 이미 엄마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삼 남매가 둘러앉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대강 마음의 결정을 하긴 했으나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전문가한테 상의 한 번 하지 않고 결정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실제로 그곳을 방문해 보고 장지 관리자들을 만나본 사람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장지전문가가 오시기 전에 유튜브에 '나는 장지상담사입니다.'라는 채널로 장지를 봤는데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과 설명을 볼 수 있어서 유용했다.)
장지전문가가 오셔서 여러 장지의 팸플릿과 동영상을 보여주셨다. 그분이 보여주신 영상에서도 애초에 우리끼리 결정했던 수목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전문가분은 그 수목장을 관리하시는 분의 성향, 수목장에 남아있는 나무, 이 수목장의 특징 등을 알려주셨다. 우리와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곳으로 결정했다.
결국 처음 마음과 같은 결정을 했지만 이 과정이 있어서 확신을 얻을 수 있었으니 유의미하다고 본다. 따로 비용은 내지 않았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수목장에서 커미션을 받는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발인을 마치고 화장터로 향했다. 화장터는 처음 장례식장을 예약할 때 예약담당자가 남아있는 화장터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예약을 도와주셨다.
화장을 마치면 엄마는 작은 유골함에 담겨 나온다. 이젠 정말 다시는 엄마의 육체를 만날 수 없다. 바로 어제 입관식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엄마를 마지막으로 껴안았다. 그때까지도 엄마는 여전히 엄마의 모습으로 남아있었지만 이제 엄마는 단숨에 가루가 되어 작은 유골함안에 고요히 담겼다.
그리고 곧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나무 앞에 작게 구덩이를 파서 엄마의 유골을 넣고 가족이 한 삽씩 흙을 떠서 묻으며 인사를 했다.
한평생 단단하고 한결같던 나의 엄마.
나의 나무 나의 뿌리.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지내다 좋은 곳으로 훨훨 떠나 엄마.
그리고 우리 가끔 이곳에서 만나자.
안녕 엄마. 안녕.
총 장례비용 내역
수목장 비용 : 수목장 사용료 9,000,000원 (매년 관리비 7만 원 별도)
식대 : 6,326,000원
장례식장 이용료 : 4,929,000원(특실)
편의점 : 2,008,400원
상조회사 : 2,300,000원(50만원 기업할인 가격)
제단 꽃장식 : 1,100,000원
화장터 비용 : 120,000원
입관용품 : 90,000원
영정사진 : 190,000원
<장례비용은 지역이나 진행하는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죽음'과 '돈'이라는 두 이질적인 단어 조합의 불편함 때문인지 장례비용은 어쩐지 쉬쉬하는 경향이 있어 아무리 검색해도 금액에 관한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더군요. 혹여 궁금하거나 필요하신 분이 계실까 제 경험에 한정하여 알려드리는 것이니 참고하는 정도로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