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중환자실에 있다가 임종면회를 위해 1인실로 옮겨온 당신의 엄마는 몸에 산소포화도와 혈압을 측정하는 기계를 그녀 삶의 무게처럼 무겁게 매달고 누워 있었다.
"산소포화도와 혈압이 낮아지면 경보음이 울려요. 그러면 간호사를 불러주세요."
그 말을 마치고 간호사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경보음이 울렸다. 당신은 그것이 당신 엄마가 세상을 떠나려는 마지막 신호인 줄 알고 크게 놀라 황급히 달려가 간호사를 찾았다. 간호사는 여유 있게 걸어 들어온 뒤 잠시 당신의 엄마를 살펴보고는 기계음을 껐다. 그리고 다시 나갔다.
그 과정이 몇 번 반복되자 당신은 깨닫게 된다. 산소와 혈압은 이렇게 숙제를 하듯 성실히 조금씩 떨어져 가다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고 의료진은 양심 있는 의료인으로서 그 순간을 자의적으로 당기거나 미룰 수 없어 숨이 멎을 때까지 기계음이 울리면 찾아와 끄는 형식적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임을.
당신의 이모와 외삼촌이, 당신 어머니의 친구들이 차례로 들어온다. 당신의 엄마를 보고 쓰러질 듯 오열을 하다가 당신을 격려하고 떠난다. 조금 뒤 장례식장에서 보자는뭔가 이상한 약속과 함께. 당신은 이미 그들이 오기 전에 너무 많이 우는 바람에 눈물이 약간 마른 상태였을 뿐이나 그 와중에도 '우리 엄마가 너무 무정한 딸을 뒀다고 동정받으면 어쩌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걱정이 생기고 '다음 손님부터는 좀 더 슬픈 감상에 젖어봐야지.내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지 보여줘야지.' 바보 같은 다짐을 해본다.
모두가 떠나고 당신은 엄마의 손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슬며시 잡아본다. 손은 깜짝 놀랄 정도로 차고 퉁퉁 붓고 약간 파란빛이 돈다. 갓 태어나 나약하고 물렁한 당신을 조심조심 씻기고 포근히 안았을 그 손. 아침마다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려 찬물로 쌀을 씻었을 그 손. 당신이 아플 때 슬슬 배를 쓸어주던 그 약손. 매일 청소를 하고 속옷을 빨고 바느질을 하고 또 때로는 파리채를 들어 매정히 당신의 종아리를 내리쳤던 그 손을 가만히 주물러 본다. 당신의 엄마가 건강했을 때 따스히 손 한 번 잡아 준 적이 있었나 골똘히 생각해 보지만 기억해 낼 수 없어 또 눈물이 흐른다. 아무래도 눈물이 다 마른 것은 아니었나 보다.
당신의 엄마는 눈은 뜨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콧줄에 의지해 숨을 쉬고 있지만 숨소리는 거칠고 가래가 들끓는다. 당신은 자꾸 간호사를 부르기 미안해져 석션도구를 받아 어설픈 손놀림으로 쉴 새 없이 당신 엄마의 가래를 제거해 준다. 답답함을 느낄 수 있는 상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신의 엄마가 마지막 가는 길에 어떤 작은 것이라도 거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 낯설고 무거웠던 공기가 가족만 남아있는 환경이 수시간째 지속되자 어느 정도 일상성을 회복하고야 만다. 당신은 형제들과 함께 커피와 삼각김밥을 먹으며 수다를 떤다. 간간히 웃기도 한다. 마치 당신의 엄마가 자고 있는 듯이 행동한다. 한 번씩 엄마의 손을 주무르고 머리를 쓸어 넘겨주고 가래를 빼준다. 언제까지고 이 평화가 계속될 것처럼. 우리가 영원히 함께 있을 것처럼.
몇 십 차례 울렸던 경고음이 또 한 번 울린다. 당신은 이제 간호사를 부르기 조금 머쓱한 마음까지 든다. 버튼을 눌러 간호사를 부르는 것이 마치 호프집에서 냅킨 좀 더 달라고 귀찮게 호출벨을 자꾸 누르는 것처럼 느껴져 이번에는 직접 간호사를 부르러 간다.
"저.. 경고음이 또 울리는데."
"네. 가볼게요."
이번에도 흘깃 당신의 엄마를 살펴보고 기계음을 끌 줄 알았던 간호사는 갑자기 분주히 당신의 엄마의 동공을 살피고 목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산소포화도와 혈압 수치를 체크하고 돌아서서 당신에게 말한다.
"환자분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막, 당신의 엄마가 당신의 눈앞에서 숨이 멎었다.
그 순간을 위해서 모두가 모였던 것임을 잊은 것처럼 당신의 가족들은 오열한다. 당신 어머니의 형제들은 동물 같은 괴성을 내며 바닥을 구른다.
당신이 보기에 당신의 엄마는 어제와 한 시간 전과 5분 전이 같은 모습이지만 당신의 엄마는 일생을 성실히 살아낸 사람답게 성실히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엄마는 드디어 삶의 모든 숙제를 마쳤다.
간호사는 당직 의사를 호출하고 의사는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계를 당신 엄마의 가슴살 여기저기에 꽂는다. 그러느라 들춰진 이불 사이로 당신 엄마의 환자복 원피스가 흐트러져 퉁퉁 부은 허벅지가 보인다.
부끄러움도 체면도 없는 시체가 아니라 아직은 당신의 엄마이자 한 여자인 그녀를지켜주고 싶다. 당신은 원피스와 이불을 정리해 조심스레 덮어준다.
"2023년 8월 3일 2시 49분 환자분 사망하셨습니다."
의사의 사망선고가 내려진다. 당신은 마치 당신 엄마의 영혼이 당장 떠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당신의 엄마를 꼭 껴안아 붙잡는다. 사람이 죽으면 제일 늦게 사라지는 게 청각이라는 말을 주문같이 믿고 있는 당신은 엄마의 영혼이꼭 이 말과 함께 가게 해주고 싶어 수십 번 당신의 엄마 귀에 속삭였던 말을 다시 한번 꺼낸다.
"사랑해 엄마.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정말 행복했어. 애들 잘 키울게. 나 잘 살게. 아무 걱정하지 말고 가."
시간이 흐르며 점차 병실 안의 울음이 잦아든다. 누구라도 하루종일 쉬지 않고 내리 울 수는 없는 것이다. 눈물은 반드시 그친다. 언제 다시 흐를지는 시간문제겠지만.
당신은 이제 병원 옆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이제 당신엄마의 이 세상 마지막 잔치인 장례식이 시작된다. 잔치의 주인공은 당신의 엄마지만 총괄은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