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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honeymind May 06. 2020

가스라이팅, 혹시 당신도 당하고 있는지

<부부의 세계> 속 등장하는 이 것은 감정폭력

밑에 본문은 2020년 5월 5일 미주한국일보 오피니언란에 게재되었던 저의 글입니다. 브런치 구독자님들과도 공유해보고자 올립니다.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200504/1309311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상대방이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나 자신을 스스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내 판단력이 흐려지게 만들고 상대방에게 정신적으로 지배당하게 만드는 감정적 학대를 의미한다.


‘가스등’이라는 1944년 영화와 1983년 연극에서 유래했다. 일부러 등을 어둡게 켜놓고는 아내가 “왜 이렇게 어두운 것 같지?”라고 물어보니 “네가 이상하게 예민한 거야”라고 꾸짖는 남편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이 됐다. 모든 걸 아내의 실수와 탓으로 돌리며 남편이 모든 상황을 조종(Manipulative behavior)하려는 모습이 포인트이다.


가스라이팅은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마음 속 ‘어린아이’를 해결하지 못한 자존감 낮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또는 자격지심이 많은 상사가 부하직원들에게 가스라이팅을 하기도 한다. 작년 연말에 나온 영화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 그리고 최근 화제의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도 등장했던 가스라이팅은 연인 혹은 부부 사이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민현서의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르고는 마치 그것이 타당한 듯 이야기한다. “네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내가 때리는 거야.” 드라마에서는 워낙 그의 육체적 폭력이 강조돼 언어폭력이 잘 부각되지 않았지만, 여기서 따라오는 이 한 마디가 바로 상대방의 정신건강을 위태롭게 만드는 감정-정서폭력이다.


혹시 누군가가 당신에게 ‘항상’ 뒤집어씌우는 방식의 언어를 구사하는가? 당신의 인격 혹은 겉모습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비하하는 등 자존감을 낮게 만드는 언어를 ‘끊임없이’ 내뱉는가? 말다툼 중 제 멋대로 대화를 끊고 갑자기 화제를 바꾸는가? 생각의 다름을 인지하지 못하고 당신의 답은 계속 틀렸다고 말하는가?


이것은 심리학 용어로는 ‘후려치기(Devaluation)’라고도 한다. “네가 그러니까 내가 이러는 거야.”라며 몰아가고, 모든 것을 상대방을 탓으로 돌리는 수법이다. 그리고는 “넌 왜 이것밖에 안돼?” 등의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말투와 비난조를 입에 달고 산다. 심한 욕을 하지 않고서도 교묘하게 사람을 반복적으로 깎아내리는 그 수법에, 피해자들은 초반에 자신이 당하고 있는 것이 언어폭력이라는 것을 보통 인지하지 못한다.


내면 깊이 자리 잡은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에서 시작되는 가스라이팅. 남을 깎아내리고 권력(Control)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우월감으로 자신의 비어있는 자존감을 채우려는 그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 받은 상처나 결핍을 자라나는 과정에서 건강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를 띄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기도 한다. 이들은 약물치료를 동반한 오랜 기간의 심리치료를 통해 자기성찰과 자기수용의 과정 속 쓴 뿌리를 잘라내려는 본인의 의지로 조금씩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 결핍된 부모의 사랑을 재양육(Reparenting)하는 심리치료 과정이 필요하다.


가스라이터들의 희생양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뉠 수 있다. 한 부류는 어렸을 적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라 “절대 이런 사람은 싫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부모와 유사한 행동을 하는 상대방의 폭력성을 견뎌내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다.


다른 부류는, 공감능력이 과도하게 뛰어난 초민감자(Empath)들인 경우를 본다. 영화 속 잔인한 장면들을 보고 그 상황 안에 있는 사람인 양 같이 괴로워하는 이들은 공감력이 높아 가스라이터들의 아픔이 어디서 오는지 이해해주려는 성향이 강하다.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는 단어, 가스라이팅. 모두가 감정, 정서 폭력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 ‘보이지 않는 폭력’을 잘 구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을 읽고 누군가 생각난다면, 분별력 있게 잘 생각해보기를. 파트너의 자존감을 끊임없이 갉아먹고 감정쓰레기통 취급하는 사람과 계속 함께하는 것이 괜찮을지, 자신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을지 말이다.




평소에 한국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나는 얼마 전 친구들의 권유로 <부부의 세계>를 시청하게 되었다. 정신분석/심리학 분야에 몸담은 친구들은 나에게 말했다. "윤정아 이 드라마는 막장이 아니야.. 우리가 흔히 정신병동이나 정신재활클리닉에서 일할 때 만났던 성격장애를 지닌 분들, 혹은 어릴 적 깊은 트라우마에서 회복을 거치지 못한 분들이 많이 등장하는 드라마야." 2화까지 보고 난 후 친구의 말에 바로 공감했다. 무섭게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겉으로 자주 드러나지 않을 뿐, 이런 캐릭터들은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 많이 존재한다.   

 

초창기 파트부터 계속되는 '가스라이팅'을 보며, 시청자분들께 이 것을 인지하고 더 이해하게끔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보이지 않는 폭력에 대한 인식을 높이길 바라는 마음에 정의감(항상 차 있는 나의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나는, 갑자기 써 내려간 글을 반년만에 한국일보 논설위원장님께 보내어보았다. 바로 답장이 오셨고, 5월 5일 어린이날에 개제 될 것이라 알려주셨다. 조심스레 의미를 부여해 보자면, ‘어른 아이’를 위한 심볼릭 한 뜻이 담겨있지 않으셨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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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가정폭력을 겪은 피해자들과 일해 본 치료사들은 알 것이다. 희생양들의 조각나버린 멘탈과 어마어마한 양의 외상 후 스트레스(PTSD)가 한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몸에 남는 신체적 폭력이 아니라고 절대로 가볍게 지나갈  있는 것이 아니다. 패턴화되어 있는 정서적-감정 폭력은  사람을 ‘세뇌시켜 자존감을 제멋대로 짓밟아놓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그의 인생의  부분을 파괴적으로 만들어 버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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