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한국밥, 나의 영원히 소중한 밥.

집밥이 그리움이 될 줄을 알았더라면.

by 우나은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날, 무턱대고 한식이 먹고파서 점심시간에 호텔을 빠져나와 제법 거친 바람을 맞으며 걸었었다.
참정말 어찌나 고마운 일이야,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 이리 가까이 있다는 건. 이라고 생각하면서.

주문을 하자 나온 반찬들


혼밥이 어색하지 않은 나.
제대로 된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기분이 되어버렸고, 이 날 너무 먹고파서 머릿속에서 맴맴 돌던 음식을 재빨리 주문했다.


순두부찌개 하나 주세요.


먹음식스럽게 나와준, 배를 따땃하게 채워준 순두부찌개


아빠는 일요일 아침마다 순두부찌개를 끓여주시곤 했었다.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와 소글소글 문틈을 파고들어 코끝에 닿는 구수한 냄새는, 일요일이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이불 속에 옹크려 있고만 싶던 나를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었다.

마지못한 듯 부스스 일어나 차린 상 한켠에 눈비비고 앉아 먹던 그 맛, 아빠의 맛-

그 맛과 아주 같지야 않지만은, 순두부찌개를 먹을 때마다 아빠 생각이 난다, 자동반사적으로. 꽤 간절히.




외국에서 살게되면서 가장 가끔 못견디게 그리운 것이 바로 '맛'이다.
한국의 '맛'. 아빠의 ‘맛’. 엄마의 ‘맛’.

한국에서라면, 쉽게 구하고 맛볼 수 있는 여러가지 음식들이 해외에서는 참 너무나 쉽지 않을 때가 많다. 내 경우, 일년 삼백육십오일 꼬박 한식만 먹어도 잘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위를 가졌지만, 아메리칸 사내와 서로 배려하며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선 우리집 식단이 글로벌해 질 수 밖에 없는 것. 덕분에 새로운 맛들을 알게되고 요리도 많이 늘고 여러가지 전혀 다른 음식들을 즐기게 되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씩은 이, 갓지은 흰 쌀밥에 각종 반찬과 찌개 등이 어우러진 상을 차려 밥을 먹는 그 당연한 풍경이 당연한 것이 아니어진 것이 괜시리 속상해질 때가 있다.

한국의 '맛'이 그리워지는 순간 순간들엔 특히 더.





내나라 생각은, 내 고향 정겨운 맛 생각은 적응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하는거다, 그냥. 숨을 쉬듯이.
이 곳의 공기가 한국의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끔, 내 몸을 감싸고 스치고 지나가는 그 공기가 너무나 한국스러워서 갑자기 들숨을, 그렇게 세상 빨아마시듯이 하고, 그러고 나면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든다.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의 맛이랄까?
외국 사는 사람들 중에 나만 유난인 것은 아니겠지. 적어도 나처럼,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중에서는.




점심을 거하게 먹었으니 저녁은 간단한 한식으로 먹자고, 모처럼 놀러오신 시부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신랑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음식에 가벼운 건 없어요.


그러고 보니 정말이었다. 한국 음식에 가벼운 음식은 없다. 언제나, 정성이 가득 담겨 있고 그 정성 덕분에 진솔한 기운이 가득한 음식이 나온다. 그리고 나는 그 정성이 가득한 집밥을 매일같이 먹던 그 시절에는 세월이 흐른 어느 미래에 그 소소한 풍경들이 얼마나 내게 간절해지게 되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했었다. 부모님이 내게 주시는 정성이 당연한 줄 알던 철없던 시절, 행복하고 아늑한 함께 밥상을 둘러싸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먹던 그 시간들. 나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던 더없이 소중한 나날들.







이제는 내가 나의 가족들을 위해 집밥을 한다.

내 아이가 한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지금 이 풍경들이 아이의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여서 자신의 삶에 정성을 기울이는 아이로 자라가게 되기를 소망한다. 따뜻한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우리의 문화가 아이를 사랑 많고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가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실은 그보다도, 아주 맛있게 먹어주기를 바라고.






집밥을 먹었다.

집밥을 아주 맛있게 먹었었다.

부모님의 정성을, 꼭꼭 씹어 가슴속에 따스하게 쌓였다.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나는 이제 집밥을 한다.

아주 맛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밥을 한다.

내가 담는 정성이, 나의 아이들에게 따스하게 쌓여가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집밥을 한다.


오늘 저녁은

순두부찌개를 끓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