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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나은 May 10. 2024

엄마, 나 엄마 된대.

Is this really happening?

유독 잠을 설친 어느 밤.

눈을 떠보니 바깥은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그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빠져나와 시계를 봤더니 새벽 네시쯤.. 요즘 들어 유독 새벽에 잠을 깨는 일이 잦아졌다. 다른 것도 아니고,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그러고 보니 부쩍 소화도 잘 안 되는 것이 몸이 묘하게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아프다고 하기까지는 애매할 정도의 불편한 느낌.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어떤 예감 같은 것이 있었는지 이 날 새벽에는 다시 잠자리에 드는 대신에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검색창에 '임신 초기 증상'이라 타이핑을 하고 처음에 보이는 두어 개의 사이트에 들어가서 글을 읽어 내려갔다. 대여섯 가지의 증상들이 소개되어 있었고 나는 읽으면 읽을수록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증상들이 이 사이트에 소개되어 있는 모든 증상들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 내가.. 설마...?





가이드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고 나자, 기대 이상으로 재미가 있어서 앞으로 한국으로 관광 오는 일본인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너네 조상들이 우리 조상들에게 어떤 못된 짓을 했는지-를 알려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관광가이드 시험공부에 매진하는 중이었다. 나의 꿈이 이제 몇 달 후부터 본격적으로 날개를 달아 날아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멋진 가이드가 되어 자연스러운 일본어로 올바른 정보를 관광객들에게 전달하는 나의 모습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붙어도 가지 못한 대학이 한이 되어 죽은 듯이 살던 내게 오랜만에 다시 생긴 꿈이었다. 바로 코 앞에 놓여있는,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그런 꿈.


 아이가 생긴 것을 안 건 아이가 이미 뱃속에서 어느 정도 자란 뒤였다. 물론, 배가 불러올 정도로 자란 것은 아녔다. 조금만 늦게 찾아와 주면 좋았을걸 왜 벌써 왔나. 기쁨보다는 두려움, 설렘보다는 막막함, 전혀 꿔보지 않은 꿈.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지금'은 안되는데..


병원에 갔다. 의사가 임신이라고 진단해도 놀라울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결국 나는 임신이었다. 예상했었기에 담담했다. 이 아이를 낳아야 하나. 낳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두렵다. 무섭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일단 무엇보다, '지금'은 아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축하한다고 전하며 배에 뭔가 끈적하고 시원한 것을 묻힌 기계를 대더니 문지르기 시작했다. 딱히 느낌이 좋진 않았다. 그러다가, 들어버렸다. 두근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 심장 소리.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힘찬 생명, 강하게 자라고 있는 새로운 생명, 내 아이의 아주 선명한 심장 소리. 더 이상, 이 외의 다른 것들은 생각할 수도 없게 하는 그 심장 소리. 내 딸과의 첫 만남.





엄마아빠의 결혼식이 유월이었고 내가 십일월에 태어났으니, 나는 아주 명백한(?) 속도위반의 증거물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배우게 된 후 뭔가 계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내가 엄마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었고, 엄마가 내 탄생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셨었다. 위 조각글은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느끼게 된 마음도 담아서 시점을 바꿔서 적어본 글이다. 엄마가 이런 마음이셨지 않았을까 하며.


 



다음 날, 그와 나는 같이 출근했고,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마트에 들러서 임신 테스트기를 샀다. 집에 도착해 그가 우리 둘이 먹을 샌드위치를 만드는 동안,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서 테스트기를 해 보았고, 일 분도 채 못 기다리고 문을 두드리며 결과가 어떻게 나왔느냐고 묻는 그에게 얼떨떨한 표정으로 화장실에서 나온 내가'임신'이라고 알려주는 테스트기를 건네주었다. 그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흘렸던 것 같기도. 그렇게, 나는 내가 '엄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처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의 기억이 아주 강력하게까지는 남아있지는 않는다. 무척 놀라셨던 걸로, 기뻐함과 동시에 걱정했던 걸로, 그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오히려 강력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건 내 동생의 반응이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동생은 학교로 가던 전철 안에서 나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 동생에게서 나온 첫마디는


"언니, 나 토할 것 같아."

였다. 그러고는 그 다음역에 전철이 멈추자 마자 숨을 토해내듯이 전철에서 내렸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너무 놀랍고 충격적이라서 토할 것 같다면서. 그 반응에 정말 어찌나 웃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가끔씩 이 일로 동생을 놀리곤 한다. 언니 임신했다는데 토나온다는 동생은 너밖에 없을 거야! 라면서.






미국은 임신했다고 바로 산부인과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적어도 8주 이상은 되어야 예약을 잡는 것이 가능하다. 예약 또한 당일에 바로 되는 것이 아니고 며칠, 길게는 몇 주도 걸린다. 그래서 임신 사실을 안 이후로 몇 주가 지나고서야 산부인과에 갈 수 있었고, 그제야 정말로 들어볼 수가 있었다, 내 아이의 심장소리.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벌써 십 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처음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의 그 느낌, 그 공간의 공기와 습도까지 모두모두.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은 것을 정말 온 힘을 다해 참았었다. 그냥 그 순간 그 심장소리 말고 다른 유의미한 소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아이의 심장이 내 몸 안에서 뛰고 있었다. 


병원에서 쓰는 용어, 하는 말들, 진행되는 절차와 시스템 모두 너무너무 낯선 중이었다. 내 이름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의사와 간호사 분들에게-물론, 그들을 비하하거나 나쁘게 보는 것이 결코 아니다- 편하게 나를 영어이름으로 불러도 좋다고 알려주며 그들을 배려하면서도, 병원에 가려면 구불구불한 절벽길을 한시간 가까이 운전해야 하는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도, 이렇게 해야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낯설고 외로워서 서러워지기까지 했다. 영어고 뭐고, 미국이고 나발이고,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복잡하고 불편해서 신경질이 났다.



그리고 그러다가, 갑자기 외롭지가 않았다.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듣고 나자, 나는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것이 너무 분명해져 버렸다.

참깨보다도 작은 심장이 내 안에서 그 무엇보다도 힘차고 우렁차게 뛰고 있었다. 그저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바보처럼 모르고 있었다. 머리로 이해하고 아는 것과 내 두 귀로 직접 듣고 느끼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두근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

내 아가.

임신 중 초음파 한 날에 만났던 아



나에게 미국은 여전히 낯설었다. 

엄마에게 내가 곧 엄마가 된다는 것을 알리고서도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낯설었다.

앞으로 내가 엄마가 된다는 것이 너무나 현실감이 없었지만, 심장 소리를 듣고 나자 정신이 바짝 차려지는 것 같았다. 혹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엄마가 된다, 곧.


임신을 핑계 삼아 원 없이 먹고 싶은 것들이 잔뜩이지만 모든 것이 나에게는 너무 멀리 있었다. 생각나는 음식들은 모두 한식뿐이었다. 먹고 싶은 것을 구하자면 두 시간여를 달려가야 했다. 내가 해 먹기에도 요리 솜씨가 턱없이 부족해서 원하는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생전 처음 해보는 입덧은 차원이 다른 괴로움이었다. 임신 초기 삼 개월간 거의 매일 아침에 회사 화장실 변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심호흡을 해야 했다.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모든 것이 아직도 낯설기만 했는데, 엄마가 되는 일 또한 만만치 않게 낯설게 느껴졌다. 임신 기간 중에 서서히 체형이 바뀌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조차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로서는 가장 직선적인 낯가림이 시작되었다.

세상에 대한, 나에 대한, 미국에 대한, 엄마에 대한.



베이비문으로 떠났던 샌프란시스코 가던 길, PCH에서




행복하고 기쁘고 슬프고 설레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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