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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고슴도치 Sep 07. 2019

크레페 가게 앞에서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니까.

좋아해서 그랬어.

좋아하잖아.

좋아하면 다냐.

좋은데 왜 그래.

좋아하면서 어떻게 그래.






"정말 좋아해?"


요즘 그가 스스로 자주 묻는 말이다. 온 가슴을 가득 채우는 충만하다는 감정이 점점 흐릿해지는 걸 느끼기 시작해서다. 아니, 사실 그는 애초에 그런 감정을 실제로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가 느낄 수 있는 최대 감정의 한계점 아래로, 아래로 점점 힘없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안팎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시선'은 그의 곁에서 항상 계산기를 시끄럽게 두들기며 그의 마음 깊은 곳이 좋아하는 선택을 하나둘씩 깡그리 지워버렸다. 그는 그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시선'의 계산기 소리는 결국 그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선택만을 자꾸 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운동을 하고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크레페 가게가 있다. 가게 앞을 지나가며 그는 늘 망설인다. 크레페를 사 먹을 적당한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크레페를 먹을 이유는 단순히 크레페를 좋아한다는 것으로 한 가지였지만 먹지 않을 이유는 순식간에 여러개를 생각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크레페를 먹고 싶었으며, 먹고싶지 않은 것이 아니었지만 먹지 못했다.


어느 날 가게 주인은 어김없이 가게 앞에서 멈칫한 그와 눈을 마주치자 '어서 오세요.'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가게 주인이 잠깐 뒤를 돌자 그는 빠른 걸음으로 가게를 지나쳐버렸다. 그날 그는 집에 있던 달콤하고 끈적한 것들을 모두 모아서 입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도 남아있는 허전함을 잠 재우기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 날은 가게가 보이지 않는 길로 돌아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에 자신이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음을 느꼈다. 오늘은 반드시 크레페를 먹겠다고 결심하고는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크레페 가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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