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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고슴도치 Nov 17. 2019

진공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완전히 연소된 진공의 상태.

이 상태는 좋은 기분을 느끼기에 아주 좋아.

다시 감았던 눈을 뜨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순결한 마음의 상태.


그 상태에 이르기까지 아주 실컷,

미워하는 것들을 만들어내고  증오한다.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고 울컥울컥 터져 나오는 분노가

슬픔으로 녹아내리고 그렇게 일말의 냄새까지 흘려보낸다.


모두 내 안에 있던 것이고

내가 미워한 것은 오로지 나였음을 받아들인다.

싫은 것을 싫다고 내뱉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싫음을 느끼는 나의 마음 안을 들여다보고 따뜻하게 안아줄 뿐이다.

그것들이 다가오면 그저 흘려보내면 그만이다.

나의 털 끝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 채

드높은 파도에 훅-하고 휩쓸려가거나

파인 곳은 흔적도 없이 메워지길 바란다.

사라지는 속도는 기억할 틈도 없이 아주 빠르다.

기억이 남으면 부수어서 찾을 수 없게 아무 데나 흩뿌린다.


그러면 나는 완전히 연소된 진공의 상태.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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