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완전히 연소된 진공의 상태.
이 상태는 좋은 기분을 느끼기에 아주 좋아.
다시 감았던 눈을 뜨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순결한 마음의 상태.
그 상태에 이르기까지 아주 실컷,
미워하는 것들을 만들어내고 또 증오한다.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고 울컥울컥 터져 나오는 분노가
슬픔으로 녹아내리고 그렇게 일말의 냄새까지 흘려보낸다.
모두 내 안에 있던 것이고
내가 미워한 것은 오로지 나였음을 받아들인다.
싫은 것을 싫다고 내뱉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싫음을 느끼는 나의 마음 안을 들여다보고 따뜻하게 안아줄 뿐이다.
그것들이 다가오면 그저 흘려보내면 그만이다.
나의 털 끝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 채
드높은 파도에 훅-하고 휩쓸려가거나
파인 곳은 흔적도 없이 메워지길 바란다.
사라지는 속도는 기억할 틈도 없이 아주 빠르다.
기억이 남으면 부수어서 찾을 수 없게 아무 데나 흩뿌린다.
그러면 나는 완전히 연소된 진공의 상태.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