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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고슴도치 Nov 17. 2019

뛰다가 날다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달걀이랑 토마토를 익혀서 아침으로 먹다가 문득 '비행'을 하고 싶다고 느꼈다. 그것은 어떤 일탈을 은유한 '비행'이 아니라 정말로 수증기 구름이 떠있는 맑은 하늘을 나는 것이었다. 


단양으로 가는 왕복 기차 편이 있는지 알아보고 통잔 잔고를 확인한 후 마지막으로 패러글라이딩 업체에 당일 예약이 되는지 전화해본 후 서둘러 씻었다.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가는 내내 뜀박질을 했다. 자꾸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 독특한 웃음은 내가 기억하기에 처음이었다. 붕 뜬 표정으로 자꾸만 신이 나서 기차 출발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도 심장소리에 맞추어 경쾌하게 뛰었다. 시간이 없을 때만 뛸 줄 알았던 심장박동이었다.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서 내릴 때 뒤에서 내 옷을 세게 잡아당기던 꼬마에게도, 길을 물어도 대답을 해주지 않는 아주머니도 조금 과장해서 좋아 보였다. 터미널까지 택시를 같이 타 준 사람과 픽업해준 분, 말없이 비행시간을 늘려주고 사진도 요리조리 잘 찍어준 패러글라이딩 강사님, 일찍 출발할 수 있는 기차 편을 마련해준 역무원분들이 있었기 때문일까. 거대하고 포근한 자연의 마음 앞에서 나의 마르고 오만한 마음이 작아져서일까. 좋을 땐 뭐든 좋고 나쁠 땐 뭐든 나쁘다. 맞아. 그렇기에 유독 기분 나쁜 일이 많이 생길 땐 누군가를 탓하기 이전에 내 마음이 지금 상해있나, 왜 이만큼이나 상했을까. 아니면 여유가 없나. 하고 항상 들여다봐야 했지. 



비행을 시작한 순간 이 기분과 여유로움이 꿈인지 현실인지 몰라서 한동안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 아, 내가 날 수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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