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들은
‘그냥 옆에 있어주는 방법밖에 없더라고요.’
동료와 책 이야기를 하다가 참 오랜만에 칙칙한 나의 이야기를 조금 꺼내게 되었다. 내 말을 가만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분이 지금은 괜찮냐고 물어서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본인의 친구 이야기를 꺼내 주었다. 한 친구가 심한 감정 기복과 우울증으로 힘들어했었는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이야기, 결국은 그냥 곁에 있어주는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더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말을 듣는데 커다란 담요에 감싸 안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내 담요를 덮어주던 몇몇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며 마음을 훑고 가기도 했다.
힘들 때 옆에 ‘그냥’ 있어 주는 것이 얼마나 괜찮은 도움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금껏 도망가지도 않고 손 내밀면 닿을 곳에 내내 있어준 이들에게도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우울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본다. 얼마간 우울이 지속되면 내가 지금 좀 이상한 상태라는 걸 스스로 알게 된다. 내 안의 우울감이 넘치는 바람에 자꾸 흘려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도 안다. 계속 이런 식이면 모두가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워서 자꾸만 혼자 있고 싶어서 밀어낸다. 어떻게 하면 괜찮아지는지 머리로는 대강 알고 있지만 그 좋은 방법들을 쓰는 것조차 힘에 겨워서 잠시 그러고 있는 것이다. 자가 회복의 시간이라고 해두겠다.
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세상의 모든 말과 생각, 행동, 감정 등이 자극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참 별게 다 싫어지기도 한다. 더불어 침묵으로 모든 걸 외면하거나 갑자기 화를 내거나 갑자기 거리를 두고 귀찮다며 밥도 잘 안 먹고 청소도 안 하면서 담금질당하는 쇳덩이처럼 인간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뜨거워졌다가 그런다. 게다가 그런 나를 가장 꼴불견으로 보고 싫어하는 사람이 나일 때면 참 답이 없다.
다행인 것은 한참 동안 마음속 냉탕과 온탕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 보면 제 풀에 지쳐서 차분해지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찾아온다. 어쨋든 내가 살아보려고 이러는구나하는 등의 이성적인 생각이 돌아오며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한다. (다들 살면서 한 번씩은 이러는 거 아닌가..?)
대부분의 주변 자극이 원래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부정적이고 날카롭게 변해서 나의 마음과 머리를 쿡쿡 찌른다. 너어는 상태가 왜 그러냐고 원인을 자꾸 캐묻는 것도, 힘든 상태를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에 온갖 조언을 퍼붓는 것도, 안 괜찮은데 자꾸 괜찮냐고 묻는 것도 한껏 건조해진 마음이기에 필연적으로 상처를 남기고 만다. 최악으로 꼬여버린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느낀다.
도와주려는 의도로 하는 말인 건 안다. 이 녀석의 불안한 눈망울을 보아하니 뭐라도 해주고 싶고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에 그러는 것도 다 안다. 과거의 나 또한 힘든 누군가에게 고작 내 마음 편하자고 말로는 참 쉬운 것들을 위로랍시고 성의껏 쏟아냈으니까.
그렇지만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안다. 직접적으로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모두 자기 몫의 삶의 무게가 있고 스스로 극복해내는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타인의 감정을 내가 해결해 주고 싶고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었다. 결국 우울함이던 어떤 문제이든지 간에 그것의 주인이 스스로 극복해야 할 지점을 잘 넘어선 후에야 도움을 줘도 제대로 받을 수 있던지 한다. 역지사지를 겪어보니 잘 알겠다.
대부분은 얼마간 스스로 토닥이다 보면 괜찮아지곤 한다. 물론 심할 경우엔 전문가의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는 것이 좋다. 이런 상태의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 사람이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가 스스로 회복하리라 믿어주며,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쯤에서 지켜보며, 그저 있는 그대로 놔둔 채로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일 수도 있다. 사실 이것은 말이 쉽지 참 어려운 방법이다. 옆에서 아무리 무어라 말해도 당사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라면 섣부른 위로는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기에, 어려워운 방법일지라도 그래주는 사람이 있다면 참 고마울 일이다. 어느 정도 자가 회복이 되면 자연스레 옆에 있는 이에게 슬그머니 손을 내밀거나 누군가 내민 손을 잡지 말래도 알아서 덥석 잡는다.
그러니까 큰 걱정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