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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고슴도치 Sep 05. 2020

제주에서 전셋집 구하기 프로젝트 #2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자취를 하려는 이유





생돈을 써가며 독립하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수년간 자취를 해봐서 나도 잘 안다. 자취하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도 독립을 준비하는 이유는 구할만한, 구해야하는 상황이니까 집을 구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사람들이 근황을 물으면 이사 하기 괜찮은 동네 추천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하여 독립을 준비하며 집을 구하고 있다고 신이 나서 말했었는데, 이내 점점 입을 다물게 되었다. 돈 모아서 시집가야지 웬 자취냐는 말을 가족도 아닌 누군가에게 들었을 때부터는 대답할 에너지를 아껴서 집 보는 데에 쓰자며 그냥 조용히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 인간이 독립된 개체로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자취라고 생각한다. 홀로 섰을 때 비로소 어떤 인간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자신을 대하는, 돌보는 태도와 능력이 눈앞의 현실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치고 힘들 때일수록 살뜰히 양질의 음식들을 고르고 먹으며 스스로를 돌보는 사람인지, 인스턴트 음식의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몇 달째 버리지도 못하고 산더미처럼 쌓아놓는 사람인지, 한 달에 몇 번이나 가계부 정리와 대청소를 하는지, 가스비나 수도세 납부를 부지런히 하는 사람인지, 병원 좀 가라는 누군가의 잔소리가 없어도 자신의 몸 상태를 스스로 잘 알고 미리 돌보고, 챙길 수 있는지 등등을 알 수 있다.     


사실 내가 어떤 인간인지와 같은 것들은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모르는 게 편하고, 모른다고 살면서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혼자서 모든 걸 해내지 않아도 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내가 독립을 하기로 결심한 진짜 이유는 외부의 자극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지금의 내겐 자극 없음이 간절하다. 맨몸과 맨마음으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어떠한 역할도 의무도 가면도 벗어 둘 수 있는, 정신을 어지럽히는 소음을 차단할 수 있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찬 안전한 나만의 방을 구하고 있다. 동시에 경제적 독립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거비를 최대한 절약할 수 있는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왜 꼭 집에서 헐벗고 돌아다녀야 하고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지금은 내가 그래야 숨을 좀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도망쳤던 고향에서의 정착을 결심한 이유

내가 거쳐온 주거 형태를 떠올려 보면 4인실 기숙사부터 시작하여 고시원, 원룸텔, 빌라 원룸, 빌라 투룸 등이 있었다. 학교 근처 원룸에서 잠깐 혼자 살았던 때 빼고는 공동생활을 하거나 너무 비좁거나 창문이 없거나 하다는 핑계로 집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전함, 안락함을 누릴 줄을 몰랐다. 혼자만의 공간이 잠깐 생기더라도 왠지 모르게 너무 바쁘게 지냈던 때라서 집에 정을 붙일 틈이 없던 것일 수도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살고 있던 집들을 늘 임시거처로 여겼던 탓이 크다. 혼돈의 10대, 20대 시절을 지나오며 편히 마음을 누일 곳이 없다는 느낌에 늘 여차하면 지금 있는 곳을 떠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내 안에서 평안함을 찾지 못했기에, 새로움과 낯섦이 주는 불안한 떨림에라도 의지를 하고 싶었던 걸까. 어디에 있던지 현실에 발붙이고 열심히 사는 것 같긴 한데,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는 늘 떠날 채비를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다른 이들은 도피처로 제주도를 선택하곤 하던데 말이다. 정작 제주 사람인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고향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제주에서 도망쳤다. 그렇게 겨우 도착한 곳에서 두 다리를 좀 피게 되자마자, 또다시 도망치듯 제주로 돌아오고 나서야 건강한 자아의 분리와 성장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러 저러한 포장을 해왔지만 결국 도망쳤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도 시간이 좀 걸렸다. 당연하게도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지만, 그렇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돈도 벌었고, 나름의 재미도 있었으며 원하던 것도 몇 가지 더 찾았으며 무엇보다 여러번 도망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이 한결 단단해졌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외면하고 회피했던 상처 입은 어린 시절 나의 눈동자 너머를 바라보며 안아줄 수 있었다.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도망쳐보는 편이 나은 것 같다.


결국 내가 있던 그 곳, 그 사람들의 곁이 싫어서 도망쳤다기보다는(싫기도 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상처 입었다는 사실을 모른 체하며 피하다 보니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강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건데, 지금의 내가 이렇게나 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들키고 싶지도 않아서 늘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렸다. 어쨌거나 불안은 이제 조금 지겹다. 그렇게 길고 지난한 자기 인정의 과정을 거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지금의 내가 있는 이곳에, 제주도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자연스레 들었다. 정착지가 꼭 제주도여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과거의 내가 태어났던 곳이고, 지금의 내가 있는 곳이고, 앞으로 예상되는 이곳에서의 내 생활이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이곳으로 결정을 했다. 써놓고 보니 이유는 충분했네.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은 떠돌이를 자처하던 내게 큰 변화이다. 이는 세상에 없던 나의 자리를 찾아 헤매던 삶의 한 주기를 마무리한 후 이어지는 자리 잡기이자, 뿌리 내리기를 할 때가 왔다는 신호였다. 제 버릇 남 주지 못하듯 이내 지겨워져서 다른 곳으로 묘목을 옮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이러한 마음이 든다는 사실이 내겐 자리 잡기를 행동으로 옮겨야 할 중요한 이유이다. 이런 마음으로 독립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인지 처음부터 월세는 선택지에 없었다. 학생 때나 막 일하기 시작했던 때까지는 주로 월세 생활을 해왔는데 별로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보증금으로 쓸만한 목돈도 없었을뿐더러 전세 보증금을 은행에서 빌려주는 전세자금 대출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기도 했고 말이다.      




내게 전셋집 구하기란,

월셋집과 연셋집과 전셋집의 느낌은 아주 다르다. 물론 돈이 나가는 주기도, 양도 다르다. 이는 부동산 전문 지식과는 별개의 아주 주관적인 의견이자 느낌이다. 내가 겪어보았던 월셋집은 지금 내가 사는 곳이 내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매달 월세 날마다 자각하게 만들었고, 이는 그 공간이 임시 거처라는 생각을 키우는 데에 크게 일조했었다. 한편으로는 임차인이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그 위험부담 때문에 월세가 비싼 것이라 느껴지기도 했다. 제주도에 독특하게 있는 일 년 치 월세를 일시불하는 연셋집의 개념은 사실 아직까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장 내일의 날씨가 어떨지, 누가 태풍에 날아가고 물에 빠져 죽을지 모르는 등 생존 자체가 어려웠던 제주의 환경 때문이거나, 부동산 투기가 없었던 과거의 문화가 지금껏 내려왔나 싶기도 하고 전세가 없는 아메리칸 스타일인가 싶기도 하다.      


처음 직장생활을 하던 때는 일하고 적응하기에 바빠서 은행이나 경제 관념과 별로 친하지 않았고, 전세는 선택지에 없었지만, 이제는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졌다. 최대한 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을 모색하다보니 국가에서 지원하는 버팀목전세자금대출 중에 하나인 중소기업취업청년전세자금대출이라는 것을 받으면 은행에서 1.2%의 금리로 1억 원까지 전세 보증금을 빌릴 수 있다는 정보도 알게 되었다. 최상의 조건으로 설명하자면 보증금 1억 원 짜리 전셋집을 한 달에 십만 원대 초반의 이자만 내면 살 수 있는 것이다. 보증금의 100%를 대출받을 수 있는 안전하고 깨끗한 매물을 찾는 것이 조금 어렵긴 하지만 어느 정도 타협을 하면 적당한 집에서 좋은 가격에 지낼 수 있으니 주거 취약 계층 청년들에게는 이 얼마나 좋은 복지인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내게 전셋집이란 조금 깊은 우물과도 비슷하다. 묵직한 보증금을 깊숙이 뿌리박아 놓으면 왠지 안정적인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그 보증금 혹은 대출에 대한 신용도는 내가 이제껏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대가이자 씨앗인 것이다. 이젠 그 씨앗을 심고 그를 토대로 나만의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여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싶다. 어떻게 해서든 내 한몸은 내가 챙기고, 책임질 수 있다는 든든한 마음이 생겼기 때문인지 제주에서 특히 귀하다는 전셋집을 구하겠다는 조금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잡아 버렸다. 전세자금대출 제도를 알게 된 지는 조금 되었는데, 드디어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날마다 설레는 기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원하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얻어지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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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전셋집 구하기 프로젝트 #3에서 계속...

독립을 준비하며 만난 이상하고 안 아름다운 집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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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전셋집 구하기 #1

누가 제주에서 전세 소리를 내었는가

https://brunch.co.kr/@newleaf/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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