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시기 3일 전까지도 난 야단을 맞았다. 며칠 있으면 곧 떠나시리라 혼내는 것도 이내 곧 멎으시리라 직감을 했다. 아무렇지 않았다. 엄마이니까. 감정이 흔들리지 않았다. 되려 불쌍하셨지. 이날 아침 꿈에서 “불이야! 불이야! 무서워.” 평소 입으셨던 빨강 스웨터를 입으시고, 팔짝팔짝 뛰시는 꿈이 심상치 않아서 회사에 갔다가 그냥 와버렸다.
예감은 적중했다. 엄마를 안고서 임종을 했다. 엊그제만도 내게 짙은 노래를 불러주시고 복권을 사야겠다더니 눈을 감으셨다.
밖에 나가셨다가 잘못이라도 생길까 봐 내 연락처를 새겨 넣은 은 팔찌를 자랑스럽게 차고 계셨던 내 어머니가 나랑 같이 누워서 있다가 하늘을 바라보셨다. 엄마 아~~
목구멍에 흰 거품이 꾸역꾸역 숨구멍을 막더니만.(2020년 2월 비수기 때)
누구나 태어날 때 배냇 똥을 싸며, 세상과 이별하고 갈 때도 속의 변을 다 쏟아내고 간다. 이모가 엉덩이 받침대로 변을 묻히지 않게 여러 장의 큰 패드를 주셨는데 참말로 아버진 이것도 아끼시냐고 한 장만 덜렁 엄마 엉덩이에 대셨다. 손에 묻고 냄새가 독하고 난리가 났네. 요에도 묻혔으니 “막내야, 패드 좀 더 갖다 줘.” 막내는 “나 여태까지 부모 부양했어. 돈 썼으면 됐지.” 그러더니 자기 방에 쳐들어가서 코빼기를 내밀지 않더라. 아버지, 남동생, 나 이렇게 쏟아내는 변을 받아내며 묻히고 있는데 둘째가 닥쳤다. “엄마” 이래야 응당 아닌가. “태호는 왜 여기 등본에 올렸어! 빼가라 해. 외숙모네는 형제도 많은데 왜 우리 집에다 올려?” 외숙모 아들을 동거인으로 엄마가 올려주셨는데 빼가야 되는 거라며 오자마자 이 소리부터 하네. 그러면서 엄마 변을 닦는데 일조를 했다. 넷이서 엄마의 마지막 체취를 닦으니 둘째가 단박에 그런다. “내가 효도한 거야. 아무도 똥을 못 닦아내는데 내가 닦아냈어. 나는 효도했어. 엄마 빚 갚았어.” 불순물처럼 막말을 했다. 상상외다. 입버릇이 노상 신세 진 게 없단다. 엄마가 어제 불효자가 많이 울 거다 셨는데 모두가 불효이지만 엄마 신세를 지지 않았다는 둘째는 우리가 울 때 얼마나 울었는가 모르겠다.
49재를 지낼 때 둘째는 또 둘째 표시를 냈다. 그 흉한 쫄 스타킹에 양말도 안 신고서 3월 추위를 끌고 왔다. 특별 종교를 갖고 있지 않으며 제부 49재 지내고도 주안에 있는 용화사에 자주 들린 네가 “49재는 요새 안 지내. 왜 하는 건데.” 끝내 절을 하지 않았다. 유진이도 와서는 “이모 때문에 늦었잖아. 빈손으로 다니지 말래서 송림동으로 꽈배기 맛집 찾아가는데 네비가 말을 안 들어서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다 늦었어.” 인상을 팍 썼다. 외숙모네 사촌동생이 같이 제를 올리는데 난 민망했다. 말이 커지고 지지 않으려는 동생들 때문에 말 문을 닫은 거다.
갖은 아픔을 밤에 내 작은딸한테 풀다가 결코 사달이 났다. 이 아이가 여고 때 우울증 치료를 받고 강화도로 수련회를 갔는데 무섭다고 오라고 했다. 해가 지고 차 없이는 안되니 동생이 재가한 분한테 연락을 취했다. 얼른 같이 가자고 하시더라. 담임분한테 허락을 받고 진땀이 났던 나는 감사해서 기름값이라도 하시라고 십만 원을 드리고 늦저녁엔 고기를 사드렸다.
내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도 둘째동생이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도 바쁜데 우리 차를 왜 쓰냐. 내일 아침 업체 들어가야 하는데!” 괴성이 터져댔다. 내 아이가 아프다는데 그리고 차는 이미 강화도로 쪽인데 내가 이런 호의도 못 받나. 나를 아쉬울 때만 이용해 먹고 아주 못 된 동생네 덕에 아이를 잘 데리고 왔다.
얼마 후 둘째네는 파산을 했다. 사업에 빚이 물리면서 둘은 헤어지고 동생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나 오만 원만 빌려줘. 우리 애들이 안 줘. 수급자 신청하는데 서류가 필요해. 돈이 없어.” “마지막이다.” 운서역으로 불러내서 오십만 원을 줬다. 수급자 신청이 금방 됐는지 집을 줄여서 이사를 간다더니 나 보고도 얼른 동생 회사를 나오란다. 그렇잖아도 남동생의 24시간 업무 자리가, 내가 담당이었던 수면 부채였던 자리가 부도를 맞았다. 나도 나와야 할 참이었는데 이달 말까지는 마감을 쳐줘야 하지 않겠는가.
5살 밑의 남동생이 운영하는 물류 회사에서 나는 직원으로 10여 년 동안 2인분 이상의 과중업무에 시달렸는데 주파 트였던 업체가 부도를 냈다. 대표 동생은 막냇동생이 소송 걸라는 비용 3천5백만 원을 입금해 주자 1주일을 잠수탔고 난 책임감 때문에 꼬박이 기어서 나와 현기증을 디딤으로 남은 책임감을 다했다.
“지금 당장 나오지 못해? 내 덕으로 거래처 생겨서 회사 차린 거잖아. 얼른 나와 빨리. 왜 거기 앉아있어. 에잇 끊어! 앞으로 전화하지 마.” 이 말을 바쁘게 하더니 바로 수신거부를 걸어놓더라. 참 어이가 없네. 기가 막히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했으며 나는 배알이 없이 커피 스푼에서 밥주걱만큼의 구멍으로 점점 가슴에서 후려 파졌다.
어려서부터 양보 없이 내 것 내 것 찾고 욕심 많던 한 살 터울인 네게 나는 돈이 남아 돌아서 베풂 한 것이겠는가. 말 언쟁도 못해보고 단숨에 절연을 당했네. 찍 소리도 못해보고서……
궁금해? 물음?
우리는 초상집에서 큰 소릴 내며 심지어 엉켜 붙어 다툼하다가 내쫓김 당하는 광경도 간혹 보게 된다. 뭔 잘못인지 대충은 알겠는데 쫓김 당한 이는 면목은 없지만 진정 잘못을 인정하면서 삼가 고인 앞에 절을 올리려고 참관하러 온 것일까? 궁금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