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모래밭, 차별의 시선에 맞서 맞붙어 레슬링하다.
누런 모래밭, 두 인도 소녀가 서로 맞붙어 레슬링을 벌인다. 모래판은 조금만 발을 구르고 움직여도 금방 먼지가 인다. 그 위에서 소녀들은 서로 뒹굴고 엎어지며 먼지를 마시고 온몸이 모래투성이가 되도록 레슬링 기술을 익혀나간다. 두 소녀의 이름은 기타와 바비타 자매로, ‘여자가 무슨 레슬링이야? 살림이나 배워서 빨리 시집가야지.’ 와 같은 인도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에 맞서 한판을 벌이는 중이다.
인도에서 여자는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살림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조혼풍습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좌절되던 사회에서, 자매는 마을 사람들의 놀림과 멸시의 시선 속에서도 꿋꿋이 아버지에게 레슬링을 배운다. 어쩌면 그들이 서 있는 모래 연습장은 자매가 디디고 있는 발판이면서 동시에 여성을 차별하는 인도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당갈(दंगल)은 레슬링 경기 대회라는 뜻의 힌디어로, 기타와 바비타 자매가 뛰는 레슬링 경기장, 혹은 레슬링 경기 그 자체를 의미한다.
<당갈>은 우리에게 영화 <세 얼간이>의 주인공으로 익숙한 아미르 칸이 제작하고 주연한 작품으로 인도에서 개봉 당시 흥행수익 1위를 달성했다. 한국 개봉에 앞서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바 있는데, 당시 영화제 관객들의 요청에 추가 상영을 두 번이나 할 정도로 열렬한 반응을 끌어냈다. 관객들을 열광하도록 만든 영화의 힘은 실화에 기초한 데서 나온다. <당갈>은 마하비르 싱 포갓이라는 전직 레슬러 출신 아버지가 자신의 딸인 기타와 바비타를 레슬링 선수로 키워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기타와 바비타 자매가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휩쓸어온 이후 수천 명의 인도 소녀들이 레슬링을 시작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는 거친 격투 경기인 레슬링에서 국가 대표가 된 기타와 바비타 자매와, 두 자매를 훈련시킨 아버지에게 주목해 스포츠 장르의 극적인 구성으로 엮어낸다. <당갈> 속 아버지는 딸들에게 매우 거칠고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자매들은 처음엔 독재자 아버지라며 투덜거리지만, 자신들을 물건 팔 듯 조혼시키지 않고 아버지의 꿈을 이뤄주길 바라는 깊은 뜻을 알고 난 후 묵묵히 훈련에 임한다.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유사한 경우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박세리와 아버지 박준철, 또 장미란-장호철 부녀를 한국의 기타와 마하비르 부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박준철은 박세리의 체력단련을 위해 중3 때부터 매일 새벽 4, 5차례씩 아파트 15층 계단을 올랐다가 뒷걸음으로 내려오도록 했는데, 영화 속 아버지가 자매에게 매일 새벽 트럭을 몰고 뒤를 쫓으며 조깅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이후 박준철은 당시 딸에게 원망을 많이 들었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아버지들이 품고 있는 속 깊은 사랑이 자녀들을 더욱 굳세게 성장시키는 것일 거다.
영화 <당갈>은 여성에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과거보다 한 발 진일보한 모습으로 여성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세상 풍파 속 패배감에 젖어든 이들에게 당당히 모래판으로 나와 한 판 붙어보자는 용기를 불어넣는다.
사진제공 월트 디즈니 컴퍼니, 아미르 칸 프로덕션, UTV모션픽쳐스, 미로스페이스,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