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에서 詩가 피어날 때, 영화 <패터슨>
-Paterson 中-
매일 아침 7시, 일상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학교에 가거나 회사에 출근하고, 오전 일과를 마치면 점심 먹고 오후 일과, 끝나면 또 가야할 곳들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집에 오면 뻗은 듯이 잠에 빠지고 몇 시간 후에는 다시 아침. 일상은 큰 틀의 반복이기에 때로는 지루하고 권태에 빠진다. 이런 평범한 일상 대신 영화 속 주인공처럼 특별한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기도 하는데, 재밌게도 오히려 평범한 일상을 그린 스토리의 영화가 있다.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에 나오는 패터슨이 그 주인공이다.
미국 뉴저지주의 패터슨이라는 도시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패터슨’이라는 버스운전 기사가 살고 있다. 영화는 월요일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그의 일주일을 비춰주는데, 우리네 일상처럼 하루의 시작은 아내와 잠들어있는 침대에서 알람시계 없이도 잠이 깨는 패터슨이다. 그는 시리얼을 먹고, 아내가 싸준 도시락 가방을 들고 걸어서 버스회사로 출근해 버스 운행을 한다. 점심 시간에는 폭포가 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고, 퇴근하면 아내와 저녁을 먹은 후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산책길에 동네 바에 들러 맥주 한잔을 하고 돌아와서 잠이 드는 것이 일과다.
단순한 그의 생활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가 시를 쓰는 아마추어 시인이라는 점이다, 아니 생활시인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패터슨에게 시를 쓰는 글감은 수집하는 성냥개비일 때도 있고, 아내가 될 때도 있다. 출근길에 길을 걸으며 시상을 떠올리고,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고쳐 쓰는 과정이 스크린에 활자로 타이핑 된다. 약간 안타까운 것은, 영시의 참맛을 느끼려면 영시 특유의 운율- 행마다 같은 모음으로 끝난다든지, 같은 자음이 들어간다든지-을 살려야 하는데 한글 번역 자막으로 접하니 패터슨의 시가 주는 느낌을 100% 전달받기가 쉽지 않았던 부분이다.
시가 주는 예술의 묘미 만큼 재미있는 장면은 패터슨의 아내, 로라의 모습이다. 패터슨이 밖에서 일하는 동안 로라도 열심히 예술 활동을 벌인다. 흑백의 기하학적인 패턴을 사용해 벽지, 샤워커튼, 컵케익 장식, 심지어 귤껍질에까지 창작활동을 펼친다. 패터슨과 로라는 서로의 예술 활동에 조용한 지지자가 되어 준다.
어느 날 고요한 패터슨의 일상에 파문이 이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외출한 사이 애완견 넬리가 비밀노트를 물어뜯어 놓은 것이다. 과연 온순한 패터슨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드디어 화를 내나 싶었던 기대를 배반하고 그저 조용히 집을 나가 공원벤치에 앉는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한 오사카 출신 시인에게서 빈 노트 한권을 선물로 받는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아끼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에 관한 대화 끝에 패터슨은 나지막이 “아-하!” 라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아마도 빈 노트에 다시 쓰여질 패터슨의 일상이자 새로운 시들이 기다린다는 깨달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아끼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는 산부인과 의사로 평생 일하면서도 시를 썼던 ‘원조’ 생활 시인이다. 예술은 일반적인 삶과는 동떨어진 것이라 여겼던 고정관념을 패터슨은 조용히 바꾼다.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이나 권태에 불평하는 우리에게 일러주는 듯하다. 그 일상도 감사한 것이고,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시간 속에 작은 특별함을 찾으라고.
비록 적어두었던 시들이 갈기갈기 찢어졌어도, 다시 써나가면 되는 것이다. 내일이면 다시 우리의 일상이 시작되듯이.
글 NEWLOOKS
사진제공 | K5 International, Le Pacte, Animal Kingdom, Inkjet Productions, 그린나래미디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