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공허함이 느껴질 때
전에 시나리오 교육원을 다닐 때 한 친구가 그랬었다.
"친구들이랑 잘 놀고 집으로 돌아갈 때 지하철에 타면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뭔가 공허하더라고요. 그 공허함을 한번 써보고 싶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랬다. 친구들이랑 술 먹고 막차(가끔은 첫차)를 타고 돌아갈 때면 타인이 가득한 그 공간이 낯설었다. 갑자기 혼자가 된 것 같아서 어색하고 그 친구 말대로 공허함이 들었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어서 지하철을 타면 친구와 문자를 하거나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날이 많았다. 그 친구의 말을 들으니 그 차갑고도 어색한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건 공허함이었다.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만 하며 지하철에 앉아있는 모습이. 지금의 우리는 스마트폰을 보며 생각을 온라인 콘텐츠에 넘겨주고 있다. 지금 나조차도 지하철에서 브런치를 쓰고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이제는 혼자가 좋다. 지하철에 혼자 올라타도 그 차가운 감정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또 생각할 시간에 새로운 정보와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게 나쁘지 않다.
지금의 우리는 감정적으로 참 강한 것 같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고, 또 새로운 설렘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반대로 말하면 우리는 이제 쉽게 질린다는 것이다. 사람이든 생각이든. 누군가에게서 분리되는 감각이 무뎌지면 상처가 크지 않지만 그만큼 '나(혹은 너)'는 누군가에게 쉽게 잊히는 존재가 된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 모르겠다.
쉽게 잊혀진다
작년에 파리에서 지낼 때 나는 오전 수업이 끝나면 느긋하게 센강을 걸어 오르세에 가서 그림을 보곤 했다. 은혜로운 학생증 덕분에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오랑주리 미술관 등 모든 곳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세계적인 명소니까 꼭 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갔는데 나중에는 정말 가고 싶어서 가게 되었다. 조용하고 그림밖에 없는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림을 보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림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하고 그 그림이 불러온 내 추억들을 천천히 감상하기도 했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친구와 영화도 보고 레스토랑에 가서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그냥 보냈다. 가끔 혼자 공원에서 그냥 앉아서 분수를 구경하기도 했다. 그 낯선 여유와 다시 하게 된 사색이 너무 낯설었다. 그렇지만 5개월이 흘렀을 때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다시 나의 고국으로 돌아가 그 문화에 익숙해지기 싫었다. 나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고 정확히 5개월이 흐른 지금 한국에 다시 익숙해졌다. 와이파이는커녕 데이터도 되지 않아 그저 가만히 있어야 했던 파리 지하철이 아니라 넓고 친구들과 시시각각 카톡을 할 수 있는 한국의 지하철에 있다. 나는 다시 그때의 생각과 여유를 잃었다. 너무나 빠르게 대체되는 새로운 생각과 감정들을 감당하기가 벅차기 때문일까. 너무나 쉽게 잊혀진다. 생각은 머릿속에 머무를 틈이 없다.
오늘은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 시간도 넘게 지하철을 탄다 던 그 친구. 아직도 그녀는 사람들과 헤어진 후에 공허함을 느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