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생각
얼마 전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프랑스인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며 그녀는 내게 셋이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취업준비를 핑계로 집에서 놀던 나는 프랑스인 친구라는 말에 신나서 약속 날짜를 잡았다.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온 지 이제 6개월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리운 나라다. 그 프랑스인은 H대학의 불문과 교수였는데 정치와 경제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그와 이야기를 하던 중 브렉시트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36살이라는 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국 국민의 선택을 지지했다. 이기적이라며 영국을 비난할 줄 알았는데 그는 영국 국민들의 결정을 존중했고 심지어 부러워했다.
"적어도 영국은 국민들은 EU에 의사표현은 할 수 있었잖아. 비록 처음이자 마지막 의사표현이지만"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는 교육 수준이 높고, 나이도 젊은데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인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동안 언론은 저소득층, 낮은 교육 수준, 시골, 노인의 범주의 영국 국민들이 브렉시트를 찬성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서 나도 당연히 브렉시트는 비합리적이며 영국인들은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소위 무식한 꼰대들 때문에 영국이 망하게 될 거라(혹은 된 거라) 믿었다. 그렇기에 그 프랑스인의 대답은 낯설었다. 그는 내게 EU 체제에 대해 설명했다. EU를 설명하는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Undemocratic(비민주적인)이었다.
" EU에서 내가 뽑은 사람은 올랑드뿐이야. EU는 100% 국민투표로 이루어진 정치기관이 아니지. EU라는 국회에 나의 목소리는 오직 20% 정도만 반영되었어. 나머지 80%는 전혀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야. EU는 유럽이라는 하나의 국가를 표방하면서 유럽 국민의 민주적인 의사 반영에는 관심이 없는 거지. "
그의 말에 따르면 브렉시트 투표는 EU 가입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국 국민들이 EU에 직접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영국인들이 유럽 시민으로서 처음으로 EU에 직접 전달한 민주적인 행동인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니 국민투표를 제안했던 총리의 정치쇼도 높은 국민투표율도 이해가 갔다. 영국 국민들은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EU가 정말 국가라면 내(영국 시민이자 EU 국민인) 목소리를 들어줘!'
"나는 젊은 층,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브렉시트를 반대한다고 들었거든. 사실 그래서 브렉시트는 비합리적인 건 줄 알았어."
"언론은 정부의 말을 반영하는 편이야. 정부는 당연히 EU에 잔류하고 싶어 하고"
"왜? 왜 잔류하고 싶어 하는데?"
"EU에 있으면 기업이나 고소득자들에게 좋아. 그리고 정부 입장에서 정치를 하기엔 그들과 친한 게 편하지. 얼론이 브렉시트 지지자를 늙고,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으로 은근히 몰아가고 있어."
실제로 런던 거주민들과 고소득자들의 반대가 심했고, 브렉시트 이후 런던 부동산 가격이 떨어졌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했다.
"나는 전형적인 유럽 시민이야. 아빠는 프랑스인이고 엄마는 오스트리아인이거든. 우리 어머니는 쉥겐조약(유럽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 약속) 이전에도 국경을 자주 넘나드셨어. 단지 국경에서 여권을 보여주면 5분 만에 검사가 끝나고 국경을 넘어갈 수 있었다는 거야. 나이가 있는 분들은 EU가 출범하기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 둘 다 살아봤고 그들은 비교할 수 있어. 그래서 그들은 EU이전의 세상이 와도 영국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 거지. 유럽은 유럽이야. 쪼개려고 해도 쪼개질 수 없고 또 마음대로 통합하려 해도 통합될 수 없어. EU라는 기구가 없어도 수천 년 동안 유럽은 교역을 했고 협상을 해왔어. EU는 고작 20여 년 존재한 기구야. 유럽의 유대관계는 EU가 없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아. 그리고 사실 EU에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어. EU는 누가 만드는 건데? 누구를 위해서? 전 유럽 시민을 대상으로 EU가 단 한 번이라도 투표라는 것을 해본 적이 있어? 전 유럽 시민의 의사를 반영한 결정 말이야"
듣고 보니 그랬다. 유럽이란 수천 년 동안 그대로 있었고 항상 서로 싸우면서도 교역을 하며 잘 지내왔다. 연방국가를 표방한 것은 고작 20년 정도이다. 연방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유럽 시민이라는 의식뿐만 아니라 그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언로가 필요하지 않을까? 국민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EU는 그저 각국 수장들이 모인 경제협정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협정 기구가 난민 유입과 유로 화통 힙을 결정하는 정치적 정책을 강요하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그리고 사실 젊은 층은 EU 이전의 세상을 경험해 보지 않았어 그렇기 때문에 EU 이전의 세상을 비교해 볼 수가 없어. 너무 자신만의 의견이 옳다는 태도를 버려야 해. 고소득자이고 젊고 교육 수준이 높으면 더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근거는 어디 있어? 그런 논리라면 장애인과 학사학위가 없는 시민의 투표권은 모두 박탈해야 해. 아주 위험한 발상이야.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상대를 무식하고 부족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건."
맞는 말이다. 민주주의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할 수 있는 체제다. 그리고 이 체계가 있기에 49%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51%를 존중해야한다.
그들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들이 국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