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생각
앞서 브렉시트 이야기를 했던 프랑스 친구는 유럽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의 자부심이 살짝 위험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건 그가 '언어'를 평가할 때부터 였다. 우리는 영어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는 영어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영어는 비즈니스와 무역을 위해서 사용되는 언어잖아. 이건 마치 하나의 도구 같아. 아름답지 않아."
영어가 전 세계적 공용어이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했지만 위대한 언어는 아니라고 했다.
"예전에 귀족들은 성경, 의학, 철학, 문학들을 알기 위해서 프랑스어나 라틴어를 배워야 했어. 그래서 이 두 언어는 교양 수준을 나타내게 되었지. 이 언어를 잘 알아야만 예술과 학문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그는 미국에서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미국에서 열린 공용어 선택 투표를 이야기하며 영어의 지위가 급속도로 높아진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글로벌시대에 접어들면서 다국적 비즈니스와 무역이 중요해 졌고 그흐름을 따라 영어가 퍼진 것이란 입장을 고수했다. 맞는말 같았지만 그의 생각이 불편했다. 그는 절대 거만하지 않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나는 그의 발언이 프랑스어에 대한 자부심으로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반문했다. 영어에도 유럽의 언어처럼 문화가 담겨있지 않냐고.
"과거엔 프랑스어와 라틴어가 학문과 예술을 담은 언어였다는 너의 말은 공감해. 하지만 지금의 영어도 학문과 예술을 담고 있어. 뛰어난 대학들이 미국에 있고 전 세계인재들이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또 영어로 논문을 쓰잖아. 영어로 학문이 연구되고 공유되고 있어. 영어는 학문적인 언어야. 게다가 대중문화의 등장으로 수많은 연극과 시나리오 문학 또한 영어로 출판되는 걸 보면 예술성도 갖고 있어. 비즈니스와 무역에 주로 쓰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단순히 툴(도구)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그는 미온적이지만 이 말에 동의했다. 그는 온화한 태도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는 신사적인 태도와 분명한 자기주장으로 대화를 이끌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쩐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아마 자부심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었을지 모른다.
프랑스어가 더 뛰어나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그의 태도가 불편했다. 또 자신의 문화에 대해 자부심 가득한 모습이 낯설었다. 하지만 사실 당당하게 프랑스어의 기원과 뛰어난 이유를 말하는 그를 보며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사람은 타인을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스스로를 낮추라고 교육을 받는다. 우리 한국의 대화 문화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담고 있다. 나도 나의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타문화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낯간지러워 자랑을 해본적이 없다.
대화 매너를 곰곰히 생각하다보니 근본적인 질문이 생겼다. 왜 타인의 자부심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걸까? 타인의 뛰어난 모습을 인정하기가 왜 힘든 걸까? 사실 그날 그의 말을 들으면서 그를 부러워했다. 당당하게 자국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그의 모습은 빛나 보였다. 딜레마다. 듣는이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동시에 나의 가치를 올릴 수 있다
불편한 마음과 부러운 마음
자부심이 주는 인간관계의 이 딜레마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